아직 바람은 차지만 햇살 아래는 무척 따스하다. 그렇게 봄기운이 퍼지고 있는지 집 앞 자목련은 반나절 만에 그새 얼굴을 더 내밀었다.
봄을 따라 찾아오는 꽃들에게 향하는 내 관심을 알고리즘도 알아챈 듯하다. 인스타그램은 자꾸 꽃병 광고를 내게 노출시켜 줬다. 모양이 독특해서 살까 말까 번번이 망설였던 그 화병. 구매 유혹을 잘 넘겨왔었다. 그러다 아이 독감으로 지쳐있던 내 마음은 충동구매를 용인해 버렸다. 그리고 총알배송으로 그 화병을 손에 쥐었다.
허나 총이 있는데 총알이 장전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나는 생화가 필요했다. 마침 오늘은 동네 장터가 열리는 날! 생화 다발을 저렴하게 판매하시는 아주머니가 오시는 날이다. 나는 하원을 마치고 아이와 부리나케 그 점포로 달려갔다.
무슨 꽃이 날 기다리고 있을지 두근거리는 마음에 발걸음이 가벼웠다. 그런데 가는 길에 사방을 둘러보니, 이미 많은 분들이 신문지 뭉치를 들고 내 방향으로 걸어오고 계셨다. 그렇다. 그 꽃 판매자분께서는 꽃을 신문지에 둘둘 말아서 주시기 때문이었다. 마치 꽃 도매상가에서처럼 말이다.
꽃을 벌써 사들고 오시는 분들을 보니 내 마음은 더더욱 조급해져만 갔다. 발걸음을 재촉해 생화 판매 장에 가니 역시나 꽃은 이미 동이 나있었다. 심지어 남은 꽃들 중 대부분은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그저 아쉬움뿐이었다. 그래도 고르고 골라 그나마 컨디션이 좋고 꽃봉오리가 몽글몽글한 꽃을 샀다. 그건 바로 아이가 사자고 한 장미였다.
마침 1+1 행사 중이라는 주인아주머니. 내가 고른 작은 장미에 큰 장미 한 다발을 더 얹어주셨다. 흔한 빨간 장미도 아니고, 뻔한 분홍 컬러도 아닌 자줏빛 진분홍이 마음에 들었다. 아이도 본인이 고른 장미를 집으로 데려갈 수 있어서 신나 했다.
집에 온 나는 도착하자마자 잎을 정리하고 길이를 다듬어 화병에 꽂았다. 역시 장미는 새로 산 화병에 딱 들어맞아서 뿌듯했고 바뀐 집안 분위기에 기분전환이 절로 됐다.
그렇지만 사람 욕심은 끝이 없다고 했던가. 꽃 가게 앞에서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프리지아 생각이 간절했다. 봄꽃으로는 너무 흔해서 사지 않아도 된다고 넘겼던 그 꽃. 막상 장미만, 그것도 한 가지 색으로만 사 오고 보니 프리지아의 그 노오란 생기발랄함이 그리워졌다. 게다가 그 가게 꽃 중에서 프리지아가 가장 싱싱한 상품이었다는 점. 그 사실이 나를 더욱 후회막심하도록 했다.
겨우 마음을 달래고 사온 꽃을 집안 곳곳에 두었다. 내 책상에도 봄이 와서 설레던 와중에 박완서 선생님의 책을 펼쳤다. 그런데 이런 우연의 일치란?! 마침 해당 페이지엔 박완서 선생님이 선물로 받으신 장미 이야기가 등장했다.
거의 절묘하다고밖에 표현할 길 없는 꽃봉오리가 반쯤 벌어진 듯도 반쯤 오므라진 듯도 싶게 필락 말락 했다. 그때가 바로 그 장미의 미와 순수의 절정의 순간이었다. (...) 나는 순수하게 행복했다.
- 박완서, <사랑이 무게로 안 느끼게>
장미 꽃봉오리의 모양에 감탄하며 행복감을 느끼신 박완서 선생님. 딱 지금의 내 마음이었다. 덕분에 나는 프리지아에 대한 갈망을 쉽게 잊을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 집에 온 장미를 온전히 즐길 수 있게 됐다.
"미와 순수의 절정의 순간"에 잠시 머무르는 꽃봉오리들. 비단 오늘 산 장미뿐만 아니라 이 봄에 필 모든 꽃들에게 해당되는 순간일 것이다. 나는 그 경이로움을 포착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려 한다. 일단 미세먼지 없는 하늘이 허락하는 한 아이 손을 잡고 봄길을 거닐어야겠다.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순수를 관찰할 수 있는 기회이자 기쁨을 충분히 누려야겠다. 모든 것들이 만개하기 전에 말이다. 그리고 아이도 너무 커버리기 전에.
꽃을 사서 집에 생기를 주고 안팎으로 봄맞이를 하는 일. 이 역시 우리들만의 '봄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더불어 아이의 추억 속에도 한 페이지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