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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일리 Aug 21. 2024

화장실에 휴지가 없었다


갑자기 급한 신호가 와서 화장실로 들두둥!



휴지가 없었다. 다행히(?) 거실에 30개월 된 호두가 놀고 있길래 나는 '잘 됐다' 싶어서 아이에게 휴지 좀 가져다 달라고 부탁을 했다.


"응. 알겠어~~"


휴 다행이다. 잘 알아들었나 보다. 하지만 그건 내 생각이었다. 아이는 누워서 뒹굴뒹굴하더니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는 한 번 더 간곡히 말했다.


"엄마 휴지 좀 갖다 줘~~."


이번에도 역시나 알겠다는 능글능글한 대답만 있을 뿐, 호두는 좀처럼 일어날 생각이 없었다. 그랬다. 이 녀석은 애초부터 엄마 똥줄 타는 광경을 보려고 작정을 한 것이었다. 나는 다급함이 점점 밀려지만, 장난이 길어질까 봐 최대한 별일 없다는 듯이 침착하게 말했다.


"엄마 나가려면 휴지 있어야 돼~~ 거기 앞에 있는 휴지 좀 갖다 줘."


그럼에도 돌아오는 대답은...


"응? 뭐라고요?"


갑자기 안 들리는 척 발연기를 시작한 녀석. 이 능청스러움은 도대체 어디서 배운 것이란 말인가?! 나는 속이 까맣게 타 들어갔다. 그리고 엄마의 다급함을 확신한 호두는 점점 더 재밌어하면서 밀당을 즐겼다. 내가 더 간절하게 요청하니 호두는 딴청을 피웠다.




그러다 급기야는


이게 무슨 소리지?



아오!! 결국 나는 백기를 흔들며 사정사정하여 아이를 일으켰다. 재밌어 죽겠단다.


결국 코 앞에 휴지가 있건만 (알면서도 모르는 척) 오지게 찾아다닌 호두는 오랜 끝에 휴지를 내게 건네주었다. 나는 가까스로 화장실에서 나올 수 있었다. 화장실에 휴지가 없을 때 아이에게 가져오라고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순진했다.



장난꾸러기(이하 장꾸)로 말할 것 같으면, 한창 말문이 트였을 무렵이었다. 갑자기 '엄마!'하고 부르더니 내가 대답하자 이렇게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키득키득)"


고작 만 1세의 말장난이라니. 이때부터 장꾸 본능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는 점점 더 진화 중이다. 남편은 나를 닮았다고 하는데 나는 모르겠다. 나는 장난 잘 안치는데?


아무튼 장꾸와의 밀당은 오늘도 계속된다. 전투력을 장전하고 하루를 시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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