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두는 뭘 요구할 때 집요한 면이 있다. 특히 우유를 마시고 싶을 때. 엄마가 줄 때까지 계속 '우유! 우유!' 하면서 계속 그 단어를 말한다. 참고로 호두는 소식좌로, 밥보다는 우유다. 배가 고프면 우유를 찾는다. 내가 우유 대신 밥을 먹게 하려고 지연 작전을 벌인 적이 많아서 그런지 우유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아마도 본인의 요구가 바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경험이 쌓여서 더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어느 날도 아침부터 하도 우유를 달라고 하길래 나는 그동안 우유에 대해 노이로제가 걸려버려서 (건강과 식습관을 위해 우유를 줄여야 한다는 강박?)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알겠어. 줄게. 그러니까 한 번만 얘기해."
그러곤 우유를 주고 그렇게 지나갔다. 그런데 며칠 전, 아침 루틴으로 아이에게 유산균을 먹이고 물을 한 컵 따라주었으나 호두는 컵에 입도 대지 않았다. 공복에 물을 마시게 하려고 나는 말했다.
"물 한 잔 마셔."
내 할 일을 위해 잠시 돌아서 있다가 다시 컵을 봤는데, 물이 그대로였다. 그래서 나는 한번 더 호두에게 말했다.
"호두야, 물 마셨어? 이거 마셔야지."
그랬더니 돌아온 대답은...
"알았어. 그러니까 한 번만 얘기해."
"..."
되로 주고 말로 받았다. 그 멘트가 썩 유쾌하게 들리지는 않던데, 아이도 지난번 내 말에 상처를 받고 기억해두었나 보다. 문득 예쁜 게 말을 하지 못하는 엄마로서 미안함이 밀려왔다. 그래서 아이에게 사과를 하고 넘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두야, 그때 엄마가 한 번만 얘기하라고 해서 미안해. 엄마는 '알았다'는 뜻이었는데 호두가 계속 우유를 얘기해서 그렇게 말한 거야. 이제는 예쁘게 이야기할게."
무뚝뚝한 돌직구 화법을 구사하는 나. 거울 치료를 받은 느낌이었다. 아이가 상처받지 않도록 말을 함부로 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었다.
그러고 나서 며칠이 지났을까? 집에 호두 외삼촌이 놀러 왔다. 그리고 둘은 식탁에 앉아 귤을 까먹고 있었다. 호두가 정성스럽게 귤껍질 하나하나를 다 까고 막 먹으려던 찰나, 장난기 많은 삼촌은 호두에게 귤 하나를 달라고 했다. 그러자 호두 왈,
"가만히 좀 있어봐."
"..."
어휴. 이것도 여태까지 임팩트 있던 말 중 하나였나 보다. 다 기억하고 있다가 이렇게 써먹다니... 진짜 애 앞에서 말 함부로 하지 말아야겠다. 따라 하는 것은 둘째 치고, 어른의 말 한마디가 아이에게 얼마나 큰 비수로 꽂혔을지 아찔해졌다고나 할까. 톡톡히 거울 치료를 받는 요즘이다. 그저 엄마는 유구무언. 그동안의 언행에 대해서 미안하고 또 반성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