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흔히 말하는 '보부상' 스타일이다.
현대적 의미의 '보부상'이라 함은,
가방에 이것저것 바리바리 싸들고 다니는 사람을 뜻한다.
한때 손바닥 사이즈의 미니백이 유행하면서 그에 맞춰 간단한 소지품만을 넣고 다녀야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트렌드에도 빅백을 고수했었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쓸지 몰라서 가방에 다 때려(?) 넣고 다녀야 안심이 됐기 때문이다. 숄더백을 자주 이용해서 그런지 한쪽 어깨가 주저앉은 이후로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에코백만 주야장천 가지고 다녔다. 에코백은 가벼우면서도 수납력이 좋아서 보부상에게 안성맞춤이었다.
출산 후 아이와 외출하기 위해 짐을 쌀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보통 돌 전후 아기와 외출을 할 때 많은 짐이 필요한 것이 당연하지만 나는 더 심했던 것 같다. 심플하게 생각해서 물건을 챙기면 되는데 나는 경우의 수를 너무 많이 따졌기 때문이다.
여벌 옷, (에어컨이나 추울 때 필요한) 카디건이나 담요
분유, 분유물, 보온병
(이유식 하는 시기라면) 이유식 용품, 빨대컵, 우유, 간식
기저귀, 가제수건, 큰 수건, 물티슈
모자, (시선을 끌) 장난감 등등
가까운 곳에 잠깐 나갈 때는 가방 한 개, 한나절은 두 개, 그리고 1박 2일 여행은 캐리어에 가방 7~8개? 장 시간 외출할수록 보따리들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한때 결벽증도 발동하는 바람에 분유 포트에 아기 낮잠이불 세트까지 싸갔더라는 흑역사가 있다. 그러다 다행히 호두가 분유를 떼고, 이유식기도 졸업을 하며 짐이 한결 가벼워졌다. 이제는 가방 한 개를 꽉 채울 정도면 외출 가능이다.
몇 주 전, 남편은 모임을 위해 아이와 둘이서 인근 바다로 놀러를 갔다. 남편과 세 친구가 모여 '아빠 어디 가?' 모임을 결성했기 때문이다. 아빠들이 각자 아이를 데리고 모여서 한나절 놀고 오는 일정이다. 이렇게 아빠 넷, 아이 넷이 만나 키즈카페나 공원, 글램핑장 등에서 시간을 보내고 온다.
그런데 바다에서 노는 일정이라면, 물놀이와 그 후 씻는 것까지 챙겨야 했기에 짐이 꽤 많아졌다. 나름 줄이고 줄여 보았지만 그래도 가방이 4개였다. 그래도 넣을 건 다 넣었다는 뿌듯함을 느끼며 아이와 남편을 보냈다. 나중에 들어보니 남편 친구들이 짐들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한 달 살기 하러 왔어?
그 말을 듣고 머쓱해졌다^^;; 그래도 뼛속까지 보부상인지라 그게 최선이었음을 나는 안다. 그러던 차에 갑자기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한 콘텐츠가 나에게 딱 떴다. 그 계정은 보부상이지만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한 유튜버가 운영하는 것이었다. 운영자는 외출을 할 때 작은 가방에 미니 아이템들을 꽉 채워 나가는 것을 보여준다. 어찌 보면 단순한 콘셉트인데 미니백에 별거별거 다 들어간다는 점이 쾌감을 주었다. 공간의 한계를 뛰어넘었달까?
이 채널 콘텐츠를 접하지 못하신 분들은 어떤 점이 쾌감을 주는지 잘 와닿지 않으실 수도 있다. 자세히 설명드리자면 이런 식이다. 보통 가방에 쿠션팩트나 립스틱을 넣고 다니는데, 이 운영자는 이 모든 것들이 휴대용 미니 사이즈다. 처음 보는 신기한 제품들이 많다. 핸드크림이나 보습 로션처럼 용기가 큰 것은 작은 사이즈의 휴대용 용기를 따로 구매해서 소분을 한다. 그리고 휴지 같은 것도 딱 몇 장만 꺼내서 작은 케이스에 넣어 가방에 수납한다. 이 모든 과정이 콤팩트한 사이즈로 딱딱 정리되어 칼각으로 미니백에 꽂힐 때에 희열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마치 테트리스를 하듯이 빈 공간이 발생하지 않게 가방에 꽉 들어찬다. 결론은 없는 게 없는 미니백이라는 것이다.
너무 개인적인 취향일까? 그래도 나 같은 구독자들이 많은지 댓글창을 보면 온통 가방에 들어간 제품을 물어보는 댓글들로 가득하다. 하도 사람들이 많이 물어봐서 댓글을 다 달 수 없었던 운영자는 물건들을 정리해서 한 웹페이지에 리스트를 올려놓았다. 기존에 타계정 '왓츠 인 마이 백(What's in my bag)' 콘텐츠들을 보면, 자신이 가방에 넣고 다니는 물건들을 보여주면서 제품 광고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그런 (유료 광고 포함) 홍보 영상은 잘 보지 않았던 나다. 그런데 이 운영자는 정말 본인이, 어떤 필요에 의해 이 물건을 사용하고 있는지 그 스토리를 보여준다. 그 스토리 위에 어떤 방식으로 가방에 수납할 것인지에 대한 방법론까지 알려주어서 진솔함이 있다. 그래서 더욱 빠져들게 된다.
이 매력을 못 잃어서 같은 영상을 몇 번씩 돌려볼 때가 있다. 평소에 유튜브를 잘 보지 않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이 계정주가 빨리 다음 영상을 올려주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내가 이렇게 유튜버에 팬심을 가질 줄이야?! 이제 더 나아가 본 것을 토대로 내 가방이나 아이 짐을 쌀 때 유용하게 적용해보려 한다. 미니 아이템과 소분 용기를 십분 활용하는 것이 핵심이다. 특히 나도 기회가 되면 '아기랑 외출할 때 기저귀 가방 싸기 (Pack with me)' 영상을 찍어보고 싶기도 하다. 효율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콤팩트하게 챙겨봐야겠다. 무겁고 뚱뚱했던 가방은 이제 안녕! "Simple is the best"이므로 심플하게 외출해 보자. '한 달 살기' 오명도 벗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