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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일리 Dec 27. 2024

기억해주세요.

영화 <하얼빈> 리뷰

연말이라 그런지 왠지 영화가 보고 싶었다. 영화관에 가고 싶었다고 하는 게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예매도 하지 않고, 남편과 즉흥적으로 동네 극장에 갔다.



마침 <하얼빈>이라는 영화가 막 개봉한 상태였다.


하얼빈, 소설 토지 속
주인공 길상이가 향한 곳!


가을에서부터 쭈욱 <토지>를 8권까지 읽어오며, 스토리에 푹 빠져있던 와중이다. 마침 주인공 '길상이'가 처와 자식을 버리고 의병 활동을 떠난 곳이 하얼빈이었다. 소설과 영화의 접점을 알고 있는 이상, 이 영화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배경 연도가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기본 정보를 보니 현빈, 이동욱, 조우진, 박정민 등등 연기파 배우들이 줄줄이 나오는 시대극이라... 살짝 뻔한 스멜이 느껴졌다. 국뽕 감성이든지, 핵노잼이든지, 둘 중 하나일 거라 생각했다. 그래도 일단 티켓을 사서 상영관에 들어간 우리. 팝콘은 필수로 챙겼다.




영화는 1908년 함경북도에서 독립군 부대와 일본군이 전투를 벌이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안중근(현빈)은 만국 공법에 따라 일본군들을 포로로 풀어주었다가 오히려 역습을 당한다. 그러다 겨우 목숨을 부지한 채 얼음이 낀 두만강을 건너 중국 땅으로 넘어간다.



하지만 이창섭(이동욱)을 비롯한 독립군 사이에서는 안중근을 둘러싸고 균열이 일어난다. 안중근의 인도주의적인 태도가 문제시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신뢰와 불신 사이에서 안중근과 우덕순(조우진), 김상현(박정민), 공부인(전여빈), 최재형(유재명), 이창섭 등은 블라디보스토크에 모인다. 그리고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은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총으로 저격해 암살에 성공한다.


 관전 포인트 1. 밀정을 찾아라!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기까지, 그들의 비밀 작전을 방해하는 이들이 존재했다. 특히 일본군이 심어 놓은 밀정이라는 존재.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가까이 있을 줄이야! 이토 히로부미 저격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기밀들이 번번이 새어 나간다.


소설 <토지>에서는 '김두수'라는 인물이 밀정인데, 그는 일본 순사 부장이란 타이틀까지 거머 줬었다. 그래서 누구나 김두수를 밀정으로 알고 있고 그를 경계하며 지낸다. 그런데 영화 속 밀정은 너무나도 태연하게 안중근의 곁에서 거사를 준비 중에 있었다. 밀정을 찾아내기 위해 기차 안에서 숨 막히는 추격이 이어진다. 그리고 안중근이 그의 존재를 확인하는 장면에서 현빈의 눈빛 연기를 잊지 못한다. 인정하기 싫지만 인정해야만 하는... 동지의 배신을 확인하며 눈물이 그렁그렇하는 표정이 압권이었다.


관전 포인트 2. 미(美)친 영상미


눈물에 관해 또 하나의 명장면이 떠오른다. 중재자이자 구심점 역할은 하는 최재형과 안중근이 비밀 거처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다. 안중근은 습격을 당해 사망한 동지들을 떠올리며 죄책감에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그의 모습은 어둠 속에 갇혀있다. 그 반대편에 있던 최재형은 창가에서 빛을 받고 서 있지만, 이내 그도 슬픔에 잠기며 어둠이 짙게 깔린 침대 위에 걸터앉는다.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최재형의 눈물만이 반짝이며 바닥으로 툭 떨어진다. 그리고 이 씬은 끝이 난다.


이 영화는 과거 회상 씬에서 흑백 처리가 된다. 그리고 생각보다 장면들이 다크해서 빛과 명암을 대비한 연출이 돋보였다. 하지만 입이 떡 벌어질만한 영상미가 돋보였던 장면이 따로 있다!



안중근과 공부인, 우덕순, 김상현 네 사람이 독립군에서 마적이 된 한 인물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이토 히로부미 암살에 쓸 폭약을 구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말에 올라타 만주 벌판과 (몽골) 사막을 질주한다. 그렇게 대자연 속에서 지치고 고된 여정이 그려지는데 영상미가 예술이다. 실제로 감독은 '이런 영화는 쉽게 찍으면 안 된다'면서 해외 로케이션 촬영을 고집했다고 한다.


독립군 영화를 촬영하면서 이들의 파란만장한 여정을 블루 스크린 앞에서 찍고 싶진 않았다. 실제 루트에 가깝게 촬영하면, 좀 더 그들의 마음에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우민호 감독 인터뷰 중에서)



우리나라 외에도 몽골과 라트비아 등 3개국에서 촬영된 영상들은 그 자체로 볼거리가 가득하다. 영화 제작비가 300억 원이었다고 하는데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물론 배우들 출연비 명목 만으로도 상당 부분이 쓰였겠지만?! 배우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마적 역할을 맡은 그 배우가 다 된 밥에 재를 뿌려놨다. 저렇게 멋진 배경을 뒤로하고 네 사람은 힘든 여정을 거쳐 폭약을 구하러 갔는데, 마적의 연기가 참... 갑자기 이질감이 드는 장면이 되고 말았다. 보면서 '뭐지?'라고 생각했었는데 이건 비단 나만의 생각은 아니었나 보다. 스포가 되지 않기 위해서 여기까지만 언급하겠다.


관전 포인트 3. 메시지이자 외침, 절규


과연 이 영화 또는 감독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나는 대사 속에서 그 메시지를 캐치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즉 안중근의 후손들이 독립군의 헌신과 노력을 잊지 말아 달라는 외침이었다.  


우리가 여기서 멈추면 아무도 기억을 못 하잖아요.


몇 번이고 '우리를 기억하지 못하면 어떡하냐'는 대사가 나온다. 심지어 어떤 인물은 울며 절규하며 대사를 이어나갔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 봤다. 당시 독립운동을 하면서 명성을 얻길 바라는 마음에서 싸우신 분들이 과연 있을까? 분명히 아니다. 그분들은 필시 무언가의 대가를 바랐던 것이 아니다. 그들을 움직였던 동인은 애국심 단 하나였다. 고로 영화 속 반복되는 대사는 바로 우리를 향해 겨눠지고 있었다. 독립운동과 대한민국의 되찾은 주권, 그리고 애국심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외침이자 절규.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이 평화가 어떻게 주어진 것인지 평생 가슴에 새기며 살아야 할 이유다.


"1909년 10월 26일,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은 하얼빈역에서 이등박문을 총으로 쏴 척결하였다."

(*이등박문: 이토 히로부미의 한국명)


영화 속 최재형의 마지막 대사다. 이토 히로부미 암살 소식이 전해진 뒤 최재형은 신문 기사를 발행하기 위해 기사 첫 줄을 이렇게 쓴 것이다. 당시 동포에게, 그리고 세계인들에게 소식을 알리기 위해서. 그리고 이 영화를 보고 있는 우리들에게 정확한 역사적 사실을 알려주며 잊지 말길 바라면서.




너무 인상 깊고 긴장감과 몰입감 넘치게 영화를 보고 나왔다. 아무래도 별 기대를 하지 않아서 재밌게 봤나 보다. 같이 본 남편은 별로였다는 후기를 남겼다. 너무 뻔했다나? 사실 역사적 팩트에 가미된 요소들이 밋밋한 면이 있다. 물론 나는 존잘 배우들의 비주얼로 보는 재미를 잘 챙겼던 것 같다.


가장 임팩트 있었던 연기자는 일본군 육군 장교 역할을 맡은 박훈 배우다. 카리스마와 연기가 너무나 강렬하고 선명해서 기억에 남는다. 처음에는 진짜 일본인인 줄 알았는데, 우리나라 사람이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

 


그리고 영화가 전반적으로 무거운 분위기로 흘러가는데 박정민 배우가 감초 연기를 잘했다고 생각한다. 너무 튀지도 과하지도 않게, 부드러운 브리지(bridge) 역할을 하며 다른 배우들 간의 간극을 잘 메워주었다. 역시는 역시다. 믿고 보는 박정민 배우랄까.


과연 나라면 그때 그 시절, 공포와 혼돈으로 뒤덮인 조선 땅에서, 나라를 위해 내 목숨과 가족을 버릴 수 있었을까? 과연 나는 가능했을지 계속 스스로에게 물어보게 된다. 그리고 그러지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뿐이다. 다시 한번 독립운동에 헌신해 주신 분들께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나중에 아이가 크면 반드시 정확한 역사적 사실을 알려주고 올바른 역사관을 심어주어야겠다. 왜곡된 역사관을 가진 사람은 잘못된 선택을 할 확률이 너무나 높아지기 때문이다.


연말연시를 맞아 역사적으로 의미 깊은 영화를 보게 되어서 괜히 마음이 웅장해진다. 아무래도 시국이 시국이니 만큼 생각도 많아졌다. 마냥 웃고 즐길 수는 없었지만 영화가 주는 메시지의 울림이 컸기에 나는 별점 4점을 주고 싶다. (마적 때문에 별 한 개는 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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