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이 그 '야당'이 아니네?!
오랜만에 남편과 시간이 맞아서 영화를 보게 됐다. 그동안 육아 때문에 도저히 영화관에 갈 수 없었는데, 마침 평일 아이 등원 후 여유가 생긴 것이다. 마침 너무나 보고 싶었던 <야당>이 아직 극장에서 개봉 중이길래 우리는 서둘러 예매를 하고 영화관으로 갔다.
팝콘을 사고 영화가 시작되기 전까지도 '야당'이 우리가 아는 그 야당인줄 알았다. 정치권에서 여당의 반대말. 한창 선거철이니 만큼 더더욱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야당이란, 마약 수사에서 존재하는 특수한 역할을 지칭하는 은어였다.
야당: 수사기관에 마약 범죄에 대한 정보 제공을 하는 정보원
(출처: 영화 <야당> 자문위원 코멘터리)
실제로 마약 조직의 비밀 정보를 알고 있는 '야당'이 수사 기관에 정보를 제공하고 범죄자 검거에 일조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보통 야당은 전직 마약사범이자 마약 조직의 조직원이다.) 마약 범죄의 특성상 범죄가 은밀하게 이뤄지는 탓에 기밀 정보가 수사 및 검거에 꼭 필요하기 때문에 이들의 활동을 필요로 한다. 야당은 고급 정보를 검찰에 제공하여 범죄자 검거에 협력하는 대가로 '수사 협조 확인서'를 받고, 검거된 자의 형량을 1/2로 줄일 수 있다. 우리나라 형사재판 절차에서 유일하게 존재하는 플리바게닝(plea bargaining;사전형량조정제도)으로,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조항을 근거로 한다.
1. 영화 속 대한민국의 민낯
더 이상 마약 청정국가가 아닌 대한민국. 말로만 듣던 일들이 영화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클럽 깊숙한 곳 가벽 뒤 룸에서, 아니 일상 곳곳에서 이 범죄는 만연하게 침투해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연루된 자들 역시 우리가 아는 그대로다. 고위층의 자제, 연예인, 그리고 기타. 특히 거물 정치인의 아들이 비리 검사의 힘을 등에 업고 미꾸라지처럼 법을 빠져나가는 장면이 분노를 일게 만들었다. 일명 법꾸라지. 정말 언제라도 뉴스에 나올법한 일들이었다.
2. 구멍 없는 연기
유해진, 강하늘, 박해준의 조합이란! 연기파 배우들의 살벌한 연기가 눈을 호강하게 만들었다. 유해진 배우는 열정 넘치는 검사에서 타락한 부패 검사로 그 변모를 실감 나게 보여줬고, 강하늘 배우는 자신만만한 야당으로서 찰진 연기를 그려냈다. 박해준 배우는 잘생긴 경찰이자 정의감 넘치는 모습이 어찌나 찰떡이던지. 거기다 조연들의 연기도 아주 훌륭했다. 정치계 거물급 인사의 아들 역을 맡은 배우는 약에 취한 눈빛을 너무 잘 보여줬다. 게슴츠레하지만 가끔은 섬뜩하게, 그리고 세상을 안하무인으로 보는 역겨운 눈빛 연기가 예술이었다.
원치 않게 중독자가 된 여배우 역할을 한 채원빈 님의 연기도 인상적이었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무표정 연기에서 사회에 대한 분노가 그라데이션되어 나타났다. 특히 박해준 배우와의 투샷씬에서, 박해준 배우의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에 위축되지 않고 본인만의 눈빛을 강렬하게 내뿜는 장면이 너무 멋있었다. 앞으로의 필모그래피가 기대되는 배우다.
이들의 연기 차력쇼를 보고 있자니 영화를 보고 있는 그 시간 자체가 황홀했다. 인기 배우를 앞세우고도 연기력 때문에 무색해진 영화들이 너무 많았기에... 그에 비해 <야당>이라는 영화는 정말 "배우 믿고 보는 영화"라 해도 손색이 없었다. (참고로 요즘 아주 핫한 '제니 엄마' 김금순 님도 출연하셨다.)
3. 중독에 대한 경각심
자극적인 소재인 만큼 잔인하고 선정적인 장면이 많았다.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이다.) 그래서 한편으론 영화를 보고 따라 하려는 사람이 있지는 않을지 우려가 됐다. 심지어 중독자가 치유되는 서사로 인해, 범죄의 과정이 미화되지 않길 진심으로 바랐다. 혹 누군가는 이 영화를 보고 '잠깐 즐겼다가 빠져나와도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강하늘 배우는, 이런 우려 불식시키기 위해서 중독자가 단약을 해도 남게 되는 후유증을 연기에 꼭 넣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영화 후반부에 말을 더듬는 설정을 추가했다. 대사를 할 때마다 말을 더듬으며 연기를 한 것이다. 부디 영화를 보고 대중들이 이 범죄에 대해 경각심을 크게 가져줬으면 한다. 특히 미성년자들이 호기심을 갖고 잘못된 길로 들어서지 않길.
마무리: 총평
킬링타임으로 아주 좋은 영화였다. 사회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 특히 중독의 위험성에 대해서 크게 경각심을 느꼈다. 그리고 정재계와 검찰의 커넥션, 부패한 공조직과 언론에 불신이 더 커졌다고 해야 할까? 영화보다 더한 현실이니까.
아무래도 마약에 관한 처벌 수준이 더 높아져야 할 것 같다. 지금처럼 솜방망이 처벌이 계속된다면 그 누구도 이것을 큰 범죄라고 여기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쉽지 않겠지만 법률 개정, 검경의 수사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승리하는 주자가 꼭 개선을 해주길 바란다.
혹시 이 영화를 관람하고자 하는 분이 계시다면 꼭 마지막 구관희 검사(유해진 역)의 모습을 잘 관찰해 주시길! 모든 걸 잃은 구 검사의 등에 바퀴벌레가 기어 다닌다. 바퀴벌레는 부패와 타락을 상징하겠지만 그 외에도 다른 의미심장한 뜻이 있다. 이 영화가 주는 경각심과 일맥상통하는 킬링 포인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