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hloura Nov 25. 2022

에세이는 액자다

-다시 글을 쓰자    

 

퇴사를 하겠다고 몇 년 동안 이리저리 방황할 때 글을 쓰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렇게 글쓰기를 취미 삼으면서 연명하듯 회사를 버텼다. 4년 만에 연애를 시작했을 때에도 남자 친구의 귀여운 모습과 아끼는 마음을 글로 남기고 싶었다. 사랑하는 조카가 태어났을 때에도 처음 느껴보는 이 벅찬 감정을 글로 쓰고 싶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바탕 감정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고 가 버리면 글로 남겨두고 싶다는 마음도 같이 사라져 버렸다.     


그러다 얼마 전 나 혼자 정체성 소동(브런치 이전글 :다시 시작하는 브런치 참고)을 겪고 나서는 이번엔 진짜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또 한 번 슬쩍 고개를 내밀었다. 마음을 단단히 먹긴 했는데 아무래도 막막했다. 에세이를 쓰기엔 어렵고 일단 아무 글이나 써보자 해서 자리를 고쳐 앉아 노트북을 켰다. 흰 바탕에 깜빡이는 커서를 보고 있자니 내 머릿속도 같이 끔뻑거린다. 안 되겠다 싶어서 노트북 대신 노트를 펼쳤다. 둥둥 떠다니는 잡생각을 붙잡아 글로 썼다. 싸질렀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아무 말이나 썼다. 그게 몇 장을 넘어가자 글이 조금 편해졌다.     



꾸준함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지만 그래도 방귀가 잦으면 똥 된다는데 계속하다 보면 뭔가 길이 보이지 않을까. 3년 가까이 방황을 하면서도 흔적을 남겨두었더라면 좋았을걸. 아직도 길을 못 찾고 이리 쿵 저리 쿵 부딪히며 비틀거린다. 일단 써보자. 쿵쿵거리며 머리 박은 흔적을 뒤돌아보면 길이 보일지 모른다. 혼자 생각만 해선 아는 세계가 너무 작아서 생각의 확장이 안될 테지. 너무 당연한 이야기인가. 책 읽기를 같이 시작해야겠다. 독서는 너무 즐겁고 행복한데 왜 이리 책 펼치기가 힘들까. 미스터리다.



일기처럼 아무렇게나 쓴 글이 몇 장을 넘기고 나서는 유튜브에 댓글로 감상문을 쓰기 시작했다. 그동안은 유튜브를 봐도 흔적 하나 남기지 않으며 살아왔지만 처음이 어렵지 한번 시작하니 할 말이 많아졌다. 이렇게 하찮을 정도로 작게 시작한 글쓰기가 어느 정도 지속되자 다시 욕심이 났다.     


-더 잘 쓰고 싶다.     


수필 쓰기의 저자이자 수필가인 이정림이 말하길 우리의 평범한 삶을 의미화하는 문학이 수필이라고 한다. 이만큼 멋진 설명이 또 있을까. 오늘 누구를 만나서 뭘 먹었고 같이 뭘 했고 어디엘 갔다.라는 식의 나열에서 사소한 어느 하나라도 끄집어내어 의미를 부여하는 것. 그건 마치 어린아이의 스케치북에 그려진 그림 한 장을 뜯어내어 액자에 걸어놓은 것과 같다. 스치듯 보면 그게 그거인 것 같아도 액자 속에 걸린 그림을 마주하면 그동안 못 보았던 의미를 찾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매일 같은 일상을 사는 것처럼 보여도 에세이라는 액자를 통해 바라본 내 일상은 매일 특별하고 의미가 있다. 에세이는 그런 힘이 있다.          

작가의 이전글 앞산 산행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