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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 소나무 Mar 14. 2023

발가락 사이 모래알

프로로그

하와이로 신혼여행을 갔을 때였다. 와이키키 해변을 걷다가 나와 근처의 대형 쇼핑몰로 향하고 있을 때였다. 문득 발가락 사이 모래알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걸을 때마다 모래의 작은 알갱이들이 발가락 표피와 맞닿으며 간질거리기도, 따갑기도 한 야릇한 느낌이 느껴졌다. 하지만 적당히 시원하게 부는 바람과 와이키키의 이국적인 분위기가 보이니 발가락 사이 모래알은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그때 문득 나는 또 엉뚱한 생각에 이르게 됐다. 여느 때와 같이 나의 맥락 없고 뜬금없는 대화가 시작됐다. “기니, 그런데 원래 발가락 사이 모래알이 어떨 때는 굉장히 거슬리고 불편하잖아, 근데 오늘은 발가락 사이 모래알은 하나도 귀찮지가 않아. 오히려 알알이 느껴지는 감촉이 좋다? 이상하지?”. 그러자 남편은 또 시작했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이를 무시하고 평소처럼,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러니까 내 말은, 발가락 사이 모래알이 상황에 따라서, 나의 기분에 따라서 내가 받아들여지는 감정이 달라진다는 거야”


가령, 해수욕장에서 물놀이를 하다가 허기가 져서 물밖로 나와 식당을 향할 때는 발에 붙은 그 모래는 정말 성가시다. 보통은 어서 씻어 내버리고 싶다. 그런데 하와이 같은 휴양지에서 고운 모래사장을 걷다가 발에 붙은 모래는 아무리 내가 아끼는 샌들에 달라붙어 있다고 하더라도 굳이 떼어내려고 애쓰지 않는다. 휴양지에서 여행을 즐기고 있는 그 순간 자체에 흠뻑 빠져 있으니 말이다.


내가 생각했을 때에는 결혼 생활과 미국 생활이 꼭 이 ‘발가락 사이 모래알’ 같다. 때로는 성가신 상황이지만 이내 생각을 고쳐먹고 나면 또 이만큼 상팔자인 나날들이 없다. 결혼 후 공부하는 남편을 따라온 미국. 그것도 한국에서는 거의 들어본 적 없는 ‘사우스캐롤라이나’.


이곳에 오게 된다는 것이 정해지고 난 후 내가 처음 이곳을 검색했을 때 나오는 사실은 대략 이러했다. 사우스캐롤라이나는 흑인노예의 역사가 깊은 곳으로 미국의 남북전쟁 때 첫 번째 전투 장소로 유명하다는 것. 흔히 ‘바이블 벨트(Bible belt)’라 불리는 미국 동남부에 위치해 있으며, 기독교 성향이 강해 보수적 색채가 짙은 곳이라는 것 말이다. 우리가 미국에 왔던 21년도에는 아직 코로나가 종식되기 전였기 때문에 아시안이 적은 이곳에서 혹시 인종차별을 당하는 건 아닐까 두려운 마음도 컸다. 무엇보다도 30년간 살아온 한국을 떠나, 가족도 친구도 없는 외국에서 살아보는 첫 경험이었으니, 모든 게 새롭고 낯설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보낸 2년은 나름 꿈같은 시간들이었다. ‘발가락 사이 모래알’처럼 때로는 성가셨지만 때로는 그 불편함 자체가 좋았다. 난생처음 겪는 미국살이와 더불어 결혼이라는 새로운 변화가 만들어낸 지난 2년. 사캐에서 만난 사람들과 낯섦의 연속이었던 나날들 속 나의 경험담과 감정들을 독자들과 나눠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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