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발가락 사이 모래알
우리의 신혼은 조금 특별했다. 미국에서 시작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결혼 준비를 하면서 남들이 하는 신혼집 구하기나 혼수를 마련하는 수고는 덜었지만 미국에 도착한 그 순간부터 이 모든 것은 시작이었다. 외국인 신분으로 우리 마음에 드는 집을 구하기란 쉽지 않았고 그마저도 12~15개월이 최대 계약 기간이었기에 우린 잦은 이사에 맞춰 살림을 꾸려야 했다. 그래도 미국이라는 낯선 환경에서 서로에겐 오직 둘 뿐이었기에 우리의 관계는 예전보다 단단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우리 둘의 관계만 놓고 보자면 지난 2년은 꿈같은 신혼생활이었다.
한 가지 해결될 수 없는 문제가 있다면 미국에서 나의 신분이 나의 생활을 매우 제한적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학생비자(F1)인 남편에게 얹힌 학생가족비자(F2)는 말 그대로 '시체비자'이다. 미국에서 합법적으로 일을 할 수도 없고, 일정 시간 이상 수업을 들을 수도 없다. 이 신분으로서 내 앞에 붙는 꼬리표는 '유학생 남편을 따라온 배우자' 정도일 뿐이었다.
사실 처음에는 합법적으로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조금은 기뻤다. 미국으로 오기 전 스타트업에서 밤낮없이 일하면서 생활이 피폐해지던 참이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열정만으로 입사한 회사였지만 열정만으로 감당하기엔 매일매일이 불안함의 연속이었다. 마음 편히 휴식이란 걸 언제 했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해지던 때였다.
꿈같은 시간들
지난 30여 년간 살면서 ‘행복하다’라는 생각을 이렇게 많이 떠올렸던 적은 없던 것 같다. 미국에 오고 나서야 비로소 나 스스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여유와 에너지가 생겼고, 나는 일상 속에서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행복하다’라는 감정을 알아볼 수 있었다.
학창 시절부터 직장인이 될 때까지 낮잠이란 행위는 게으름의 상징처럼 느껴졌었다. 간혹 낮잠이라도 자는 날엔 깨어난 후 밀려드는 죄책감과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후회로 마음이 무겁곤 했다. 하지만 이 생각은 미국에 와서 완전히 달라졌다.
창밖에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하늘은 온통 회색 빛인 그런 날은 낮잠 자기 최고로 좋은 날이다. 새로 깐 이불은 포근하게 내 몸을 감싸고 톡톡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는 자장가가 되어준다. 이른 오후, 잠깐 20분만 눈 붙이고 일어나야지 하며 침대에 누워 낮잠을 청했다. 20분 뒤 울리는 알람. 하지만 이 순간이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지속됐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이 순간 느껴지는 촉감과 청각에 집중한 채 그대로 더 누워있으면 안 되는 걸까. 지금 더 누워있는다고 잘못한 것도 없고, 누군가 강제로 날 일으키려는 것도 아닌데. 왜 낮잠을 자면서도 누군가에게 쫓기는 느낌이 드는 걸까? 그냥 지금 이대로 조금만 더 누워있자고 생각하는 순간 밀려드는 안도감과 행복감.
이때 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나 스스로에게 너무 엄격하진 말자고. 좀 내려놓아도 괜찮다고 말이다. 미국에 온 뒤 가장 먼저 얻은 깨달음이었다. 스스로에게 엄격한 것이 내겐 늘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무언가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으면 밀려드는 불안감. 이걸 느끼기 싫어서라도 늘 새로운 목표를 새우고 진행했다. 하지만 일상에서 조금 더 자주 행복을 느끼려면 때론 스스로를 좀 풀어주어야 할 때가 있다는 걸 이때 알았다. 낮잠 좀 자면 어때, 이런 날도 있는 거지.
목표가 네가 될 순 없어!
하지만 미국에서의 생활 속에서 나의 위치가 말 그대로 'Nothing'이란 생각은 종종 나의 자존감을 갉아먹었다. 인터내셔널 모임에 가서 친구를 사귀려고 하더라도 학생 신분이 아닌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처음에 다가와 인사를 건네다가도 이내 내가 학생이 아닌 그 모임에 참석한 학생의 배우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사람들의 태도는 달라졌다. 더 이상 나에게 궁금한 점도, 관심도 없었다.
남편은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차근차근 무언가를 이뤄가는 반면 나에겐 가시적으로 보이는 성과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나는 이 시간 동안 그동안 여유가 없어하지 못했던 자기개발에 힘썼다. 집 근처에서 진행하는 ESL 수업을 찾아 수강하고 평소 쓰지 못했던 장르의 글들을 써보고 스페인어 공부에 맛을 들였다. 그동안 읽지 못했던 책들도 마음껏 읽으며 나의 시간을 채워갔다.
하지만 이따금씩 드는 이 사회에 나는 더 이상 쓸모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생각은 나를 좀먹어갔다. 물론 세상에 모든 주부는 위대하다. 다만 내가 막상 전업주부가 돼버리니 그동안 애쓰며 열심히 살아왔던 나의 발자취가 한순간에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리는 듯했다. 그렇다고 내가 한 선택에 대해 후회하는 것은 아니다. 가족이라는 가치를 가장 우선순위에 두었고, 결혼 후에 떨어져 생활하는 건 나의 결혼관에 부합하지 않았다. 그래서 남편을 따라 미국에 오기로 선택했고 결혼 이후에 난 더 행복하다고 느꼈다.
남편은 내가 자신을 내조해 주는 일만 해도 대단한 일이라고 날 치켜세우며 내 자존감을 채워주려 노력하곤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곳에서 나의 목표가 남편이 될 순 없었다. 이 생활에서 내 목표가 남편이 되는 순간 나는 남편에게 1+1 같은 의존적인 존재가 돼버릴 테니 말이다. 이건 우리의 관계에도 좋지 않을 것 같았다. 내가 지금 남편을 내조하고 있는 일은 나의 수많은 역할 중 하나로 두어야 했다. 그 길이 나를 잃어버리지 않고 지킬 수 있는 방법이란 걸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에게 집착하기 싫었다. 이 관계가 예전 그대로 서로가 서로에게서 독립적이고 동등한 관계이길 바랐다. 내 커리어가 잠시 멈춰있다고 해서 나의 모든 개인적 성장이 멈춘 것은 아니니까.
그래서 나는 더욱더 매일매일을 잘 살아내야 했다. 나만의 생활루틴을 만들고 내가 성장할 수 있는 목표들을 만들어야 했다. 가령, 지금까지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새로운 직업군을 탐색하고 준비한다든지 아니면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포기했던 일들을 찾아내고 도전해야 했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무기는 넘치는 시간뿐이니 말이다. 하지만 때론 이러한 생각 자체가 나에게 강박처럼 다가온다. 이 또한 기회이니 이를 발판 삼아 무언가를 이뤄내야 한다는 강박.
이곳에서 만난 주변의 다른 F2 비자 소지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나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에서는 온전한 '나'였지만 남편을 따라온 미국에서는 내가 점점 사라지는 느낌, 그리고 이에 따른 자존감 하락과 우울감. 이러한 부정적인 감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만든 새로운 목표들과 이를 이뤄내야 한다는 강박, 그리고 불안감. 이런 걸 보면 가끔 한국인의 DNA엔 대체 뭐가 있길래 다들 강박과 불안에서 벗어나질 못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잠깐의 쉼도 허락되지 않는 민족, 그게 바로 우리 민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와 비슷한 처지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한 많은 이들이 그렇겠지만 내가 무너지지 않도록 나 자신을 잘 잡고 버티는 수 밖엔 없다. 씁쓸하지만, 이 또한 내가 한 선택에 대한 책임인 것이니. 그래서 나는 오늘도 마음을 다잡고 하루를 쓸모있게 보내기 위해 애를 쓴다. 언젠간 다시 사회에 쓸모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나의 시간이 오길 준비하며. 지금이 남편의 시간이라면 5년 뒤엔 나의 시간이 도래할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