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발가락 사이 모래알
지난해 6월 말, 남편과 라스베이거스로 여름휴가를 다녀왔다. 주로 동부만 여행 다녔던 우리 부부의 첫 번째 미서부 여행이었다. 이곳을 여행지로 선택했던 이유는 아이가 생기면 여행 가기 어려운 곳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작년 여름부터 2세 계획이 있던 우리에게 이 여행은 조금 더 특별할 것 같았다. 미국에 온 후 가깝게 지내고 있는 콜롬비안 친구가 “라스베이거스는 둘이 갔다가 셋이 돌아온다는 말이 있다”라고 응원까지 해준 터라 나는 한껏 부푼 마음을 안고 여행을 떠났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애기가 생기면 로맨틱할 것 같았다. 나중에 애기가 자라 자신이 어떻게 생겼는지 물어볼 땐 특별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침 여행을 가는 날짜가 딱 배란기와 맞아떨어졌기에 나는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한껏 들떠 있었다.
하지만 남편의 생각은 달랐다. 이번 여행은 우리가 원래 했던 임신계획보다 일러도 너무 이르다는 것이었다. 나보다 더 라스베이거스를 가고 싶어 했던 남편은 여행 자체에 집중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한 여름에 사막과 인접한 라스베이거스 여행을 간 덕분에 서부의 뜨거운 열기를 그대로 느끼고 왔다. 한낮에 거리를 20분 이상 걸으면 더위를 먹은 듯 현기증이 나고 몸에 힘이 없어졌다. 평소 여행 스타일이 엑셀 가득 계획표를 만들고 이를 충실히 따르는 편인데, 라스베이거스 여행 일정표를 보니 빡빡했다. 하필 여행을 위해 챙겨갔던 신발들은 모조리 왜 이렇게 불편하고 물집이 잡히는 건지. 숙소로 돌아가면 족욕부터 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정작 라스베이거스의 진짜 모습이 드러나는 밤엔 그 멋진 야경을 보면서도 전혀 로맨틱해질 수가 없었다. 이미 체력이 바닥나있었기 때문이다.
계획임신의 서막
배란일과 하루하루 가까워지면서 나는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나의 Mbti는 INFJ로 평소 완벽주의자 성향이 있는 데다가 이과생이라서 자꾸만 머릿속에서 임신을 위한 시뮬레이션이 작동하고 있었다. 곧 난자가 배란될 텐데, 난자는 배란되고 24시간 밖에 못 산다는데 어쩌나 하는 생각 때문에 계속 초조했다. 이에 자꾸만 남편에게 압박 아닌 압박을 주게 됐다. 여행 전부터 라스베이거스에서 임신하면 좋겠다고 해맑게 말하는 나에게 조금은 부담을 느끼고 있던 남편이었다. 배란일 하루 전 우리는 드디어 임신을 위한 첫 번째 시도를 하게 됐다. 이날은 모든 게 자연스러웠다. 끝내지 못한 과제가 있는 듯 계속 초조했던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다. 하지만 생리주기를 알려주는 어플에서 나의 배란일은 오늘이 아닌 내일이었기에 마음의 조급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음날, 남편의 컨디션을 체크하며 계속 기회를 엿봤다. 하지만 남편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여행 전까지 일이 많았던 탓에 체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였다. 거기에다가 라스베이거스의 더위는 평소에도 더위에 약한 남편을 더욱 취약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나는 이 날이 배란일이기에 머릿속에선 계속 ‘오늘이 빅 찬스다, 오늘 무조건 해야 한다’는 생각이 맴돌았다. 이는 당연히 은연중에 표출됐고 남편은 하루종일 스트레스를 받았다.
끝내 저녁이 되어 숙소에 온 후 사건이 터졌다. 로맨틱한 분위기를 잡으려 노력하는 나와 달리 남편은 조금은 화가 나 있는 듯 보였다. 이에 나는 속으로 예감했다. 라스베이거스에 왔다 가면서 셋이 되어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우리 부부는 차분히 대화를 시작했다. 나는 남편의 태도를 보며 조금은 섭섭한 마음이 들었기에 이야기를 시작했고 남편은 이제 임신 준비를 시작하는 초반부터 지나치게 조급해하는 나의 모습을 보면 중압감이 든다고 했다.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며 대화를 잘 마무리했지만 나는 이 사건으로 이미 임신 계획이 시작되고 있음을 직감했다. 임신을 준비하며 발생하는 남편과의 입장차이와 이를 조율해 가는 과정부터가 시작인 것 같았다. 남편 말 대로 이번 여행에서의 시도는 우리의 임신 계획의 프리뷰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시도할 필요까진 없었다. 하지만 계획하고 그 계획 안에서 통제권을 벗어나면 큰일 나는 줄 아는 나의 성격 때문에 우리의 임신 계획은 처음부터 순탄치 않았다.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계획임신을 하기로 한 이상, 빠른 시간 내에 임신이 되지 않으면 나는 아마 큰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란 것을. 그리고 이건 결국 우리의 2세 계획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말이다.
계획임신의 치명적 단점
나는 20대 때부터 항상 생각했다. 나중에 아기를 가지게 된다면 꼭 계획 임신을 할 것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결혼을 하고 우리의 임신 계획을 신혼 1년 후로 정했을 때부터 나는 임산부 영양제를 복용하기 시작했고 좋아하던 맥주도 끊으려고 노력했다. 물론 커피는 마지막까지 줄이는데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래도 조금씩 계속해서 노력했다. 건강한 몸을 만들어야 건강한 아기가 생길 줄 알았다. 나도 짐작하고 있었다. 벌써부터 극성 엄마의 기질이 보인다는 것을. 하지만 본래 모든지 미리 준비해 놓아야 마음이 놓이고 계획한 대로 이뤄져야만 하는 성격을 타고난 것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이를 바꾸긴 쉽지 않았다.
작년 여름의 라스베이거스 사건은 나에게 계획임신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이제 임신준비를 시작하자’고 마음먹는 순간 이미 스트레스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그 압박감은 내게 컸던 것 같다. 물론 남편에게도.
본래 아름다운 상상 속 임신은 사랑하는 두 사람이 자신들의 사랑을 나누다가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현상이지 않은가. 그런데 계획임신은 이 로맨틱한 행위를 임신의 수단으로 만들어버린다. 마치 목적지에 도착하려면 비행기나 버스와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필수적이지만 그 과정은 피곤하고 귀찮고 때론 지나치게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준다. 아름다워 보이지가 않는다. 이런 생각조차도 내겐 스트레스가 되겠지만 말이다. 역시 인생에서 결혼 보다도 더 큰 삶의 변화는 2세를 갖는 일이란 걸 이때 알게 된 것 같다.
그 이후 1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라스베이거스 이후에도 마이애미 베이비, 휴스턴 베이비, 홋카이도 베이비를 꿈꿔봤으나 우리에겐 여전히 아기가 찾아오지 않고 있다. 라스베이거스 사건 이후에도 매달 나는 기대했다가 실망했다가를 반복했고 주변 친구들의 임신소식을 들으면 마음이 더 조급해졌다. 왜 남들에게는 쉽게 일어나는 일들이 우리 부부에겐 쉽지 않은 걸까 납득되지 않았다. 미국에 있어서 병원 가는 게 쉽지 않았기에 답답한 마음은 더 깊어졌었다. 다행히 이번 여름 한국에 다녀올 수 있는 시간이 생겨 남편과 함께 병원에 다녀올 수 있었고 의사의 대답은 걱정과 달리 심플했다. 몸엔 둘 다 이상이 없으니 그냥 계속 쭉 노력하시면 된다는 거였다. 덕분에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최소한 몸에 기능적 문제가 있어서 임신이 안 되는 건 아니니 말이다. 그려면서도 한편으론, '문제가 없는데 대체 왜 안 생기는 거야?'란 생각도 들었다.
이 시도를 언제까지 계속 이어가야 하는지 예상할 수 없다는 것은 나를 힘들게 한다.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문제이고 그저 확률에 기대어 기다림밖엔 할 수 없다는 사실도 나를 무력하게 만든다. 노력만으론 결과를 얻어낼 수 없는 영역인 것 같아 힘이 빠진다.
매달 기대와 실망을 반복하는 것도 벌써 지겨워진다. 일 년이 지나고 나니 이제 이 감정도 조금은 무뎌지는 것 같긴 하다. 주변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받지 말고 편안하게 있다 보면 아기가 찾아올 것이라고 말하는데 그걸 누가 몰라서 안 하겠는가. 대체 어떻게 해야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기대하지 않고 초연하게 계획임신을 진행할 수 있는 걸까. 누군가 정답을 알고 있다면 내게 그 방법을 가르쳐 주길 바란다. 누군가 내게 계획임신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란 것을, 이러한 힘든 점이 있다는 걸 알려줬었더라면 어쩌면 난 지금 마음이 조금은 더 편안했을까. 나이가 들면서 점점 정답이 없는 문제들이 늘어나는 것 같다. 정답이라고 생각했던 것들도 사실은 정답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