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발가락 사이 모래알
'발가락 사이 모래알'의 첫 번째 챕터는 미국의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시작한 2년간의 신혼생활에 관한 내용이었다. 두 번째 챕터는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만났던 소중했던 인연들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모국어가 다르고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언어는 서로가 서툰 영어뿐이었지만, 나는 내 인생에서 절대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친구들을 만났다. 진실된 친구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 그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얼마나 행복한 순간이었는지 나는 그들과 함께 보내는 그 순간에도 이미 지금이 내 인생에 얼마나 행복한 순간인지 자각할 수 있었다. 그 시간들을 멈출 수만 있다면 멈추고 싶었다.
인연
나는 여행을 다닐 때 우연히 만나는 마주치는 사람들과 만남과 헤어짐을 할 때 이런 상상을 해보곤 했다. 옷기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하는데 이 크고 넓은 지구에서 이 시간 이곳에서 나와 만난 게 된 저 사람과 나는 어떤 우연들과 선택들이 겹쳐서 만나게 된 걸까 하고 말이다. 그런 생각이 들 때면 그 인연과의 짧은 만남이 늘 더 애틋하게 느껴지곤 했다.
이러한 생각은 미국에 와서도 마찬가지였다. 새롭게 만나게 된 사람들과 어쩌다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하다 보면 각자의 삶에 있었던 복잡한 사정들과 상황들이 결국엔 이곳에서 우리를 만나게 했다. 한국에만 살았으면 만나보지도 못했을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던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파라과이, 과테말라, 멕시코에서 온 친구들을 만났다. 가까운 나라 중국에도 14억 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이 친구를, 그것도 한국과 중국과는 멀리 떨어진 미국땅에서 만나게 됐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이곳에서 만난 미국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50개나 되는 주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이 사우스캐롤라이나, 컬럼비아(Columbia)란 조그마한 도시에서 우리가 만나게 됐으니 말이다.
운명론을 말하고 싶은 건 아니다. 가수 이선희의 노래 '그중에 그대를 만나' 속 가삿말처럼 별처럼 수많은 사람들들 중에 서로를 만났다는 사실이 가끔은 내게 기적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맺은 관계들이 너무 소중하다.
두 개의 기둥
누군가는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면 친구들과의 관계도 예전과 같지 않을 것이며 서서히 멀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내겐 남편과 가족이 이루는 '사랑'이란 커다란 기둥과 비등한 '우정'이란 기둥이 하나 더 존재한다. 이 두 기둥이 나의 삶을 견고하고 완전하게 해 준다고 믿는다. 그만큼 내겐 가족만큼이나 친구들의 존재 역시 소중하다.
그래서인가. 때론 인간관계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진한다. 한국에서 살 땐 이미 내 주변엔 30년간 만들어진 견고한 관계의 친구들이 있었다. 하지만 미국에 와서 나는 내 주변의 모든 인연들을 새롭게 설계하고 나만의 편안한 지대(comportable zone)를 구축해야 했다. 어떤 친구들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한눈에 나의 친구가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어떤 친구들은 친구가 되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했다. 어떤 친구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친구가 될 수 없었다. 사람 사이의 관계가 늘 노력만으론 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만난 인연들은 내게 '초심자의 행운'과도 같은 것이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배경도 문화도 다르지만 우리는 쉽게 서로에게 문을 열어주었고 곁을 내줬다. 때론 서로의 영혼이 통한다는 느낌마저 들곤 했다. 타지였기에 가족만큼 끈끈한 우정을 만들 수 있었고 이들이 없었다면 지난 2년간의 나의 삶은 외로움과 공허함만 가득했을 것이다.
만남과 헤어짐
올해 5월, 나는 사우스캐롤라이나를 떠나 텍사스로 이사를 해야 했다. 이건 우리의 원래 계획엔 없던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나와 친구들은 예상치 못한 이별을 해야 했다. 이 이별은 지금까지 내가 겪었던 어떤 이별보다도 힘이 들었다. 한국에서야 친구가 이사를 가더라도 길어봤자 몇 시간이면 닿을 거리이며 만날 수 있는 횟수가 줄어들 뿐이지만 미국에서 친구들과의 이별은 다음이 언제가 될지 기약할 수 없는 이별이었다. 땅덩어리가 워낙 크기 때문에 타주로의 이사는 거의 다른 나라로 이사를 가는 정도의 느낌이었다.
이별의 방식은 친구들 마다 천차만별이었다. 지금부터 서서히 멀어지는 방식을 택한 친구는 내가 이사를 결정했던 작년 10월부터 만날 때마다 눈물이 글썽거렸고 눈빛이 애틋해졌다. 떠나기 전까지 더 많은 추억을 쌓기로 결정한 친구들은 거의 매일을 나와 붙어있다시피 했다. 이러한 이별이 어릴 때부터 잦았던 미국인 친구들은 조금은 쿨한 반응이었다. 만남이 있다면 이별도 있고 언젠간 또 만나게 될 것이란 반응이었다.
친구들과 헤어짐을 하던 지난 4월은 더 이상 감정을 쏟아낼 수 없을 만큼 모든 감정적 에너지를 소진해 버렸다. 한 친구는 내게 "너와 하는 이 이별은 내가 전 남자친구와 헤어질 때와 비슷한 느낌이야"라고까지 말했다. 심장이 물리적으로 아플 정도로 가슴 한편이 시큰해지는 이별이었다.
친구들과 함께했던 지난 2년간의 앨범들을 가끔 꺼내보곤 한다. 그때 나의 표정이 얼마나 해맑았는지 얼마나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었는지를 보며 나는 그 시간들을 자주 추억하곤 한다. 내 인생의 소중했던 기억들이 희미해지기 전에 기록하고 싶었다. 또, 나처럼 타지에서 새로운 인연들을 만들어야 하는 독자들이 있다면 나의 이야기가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본다. 타지에서 친구를 만들기 위해 첫발을 내딛기란 생각보다 많은 용기가 필요하고 나와 결이 잘 맞는 친구를 찾기 위해선 생각보다 시행착오가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