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발가락 사이 모래알
얼마 전 하와이 마우이에 큰 산불이나 전 세계 사람들에게 충격을 줬다. 뉴스 댓글 중에는 ‘10년 전 신혼여행으로 다녀왔었는데 추억이 사라진 것 같아 안타깝다’, 혹은 ‘신혼여행 때 갔었던 마우이 라하이나 지역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니’ 하는 글들이 많았다. 그만큼 하와이는 많은 이들에게 신혼여행지로 기억되는 곳이다.
나에게도 하와이는 신혼여행지로 기억된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내가 신혼여행을 갔을 당시는 코로나가 한창이던 시기였기 때문에 내가 머무를 수 있는 섬은 와이키키 해변이 있는 본섬 오아후뿐이었다는 것이다. 다른 섬으로 가기 위해서는 섬에 들어가기 전 코로나 검사를 해야 했고 본섬으로 나올 때 다시 한번 코로나 검사를 해야 했다. 당시 코로나 검사 한 번에 약 160불 정도 했던 것 감안할 때, 다른 섬을 방문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었다. 이에 다음을 기약하며 마우이 섬에 가보지 못했는데 산불로 재난 지역이 되며 과거의 모습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는 소식을 들으니 비통할 따름이다. 다신 과거의 모습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코로나 시국의 허니문
나는 내가 나의 신혼여행지를 고를 자유가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상황을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신혼여행은 내가 결혼식 보다도 더 기대하는, 일생에 단 한 번 뿐일지 모를 특별한 여행일 테니 말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21년도 5월에 결혼을 했다. 우리에게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당시 대부분의 신혼부부들이 선택했던, 1박에 100만 원이 넘는 럭셔리 숙소를 예약해 제주도로 가거나 자가격리가 없는 여행지를 선택하는 것이었다. 절망스러웠다.
여행을 좋아하는 남편과 결혼 이야기가 처음 나왔을 때 우리가 가장 먼저 했던 일은 신혼여행지를 찾아보는 것이었다. 내가 처음 원했던 신혼여행지는 푸른 바다가 드넓게 펼쳐져 있고 햇빛이 따사로운 휴양지, 몰디브였고 남편이 원했던 신혼여행지는 유럽인들이 휴양지로 많이 찾는다는 스페인의 마요르카였다. 수많은 유튜브 영상을 함께 보며 몰디브와 마요르카를 저울질하던 당시 우린 예상하지 못했다. 이 고민이 얼마나 부질없는 논의였는지 말이다.
결혼식 이야기가 구체화될 때쯤, 코로나19는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WHO에서는 팬데믹을 선언했다. 이로써 사실상 신혼여행을 해외로 떠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졌다. 20년도에 결혼한 친구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신혼여행을 제주도로 떠나기 시작했다. 수요가 급증하자 제주도의 유명호텔들은 1박 숙박비로 100만 원이 넘는 가격을 제시했고 이 마저도 자리가 없어 수개월 전부터 예약을 해야 했다. 신혼여행을 제주도로 가는데 숙소만큼은 럭셔리한 곳으로 가고 싶다는 신혼부부들의 심리가 발동했기 때문일 것이다.
부모님 시절 가장 핫했던 신혼여행의 성지가 2020년과 21년, 가장 떠오르는 허니문의 성지라니 억울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친구들끼리 농담 삼아 나중에 태어날 아이가 엄마아빠는 돈이 없어서 신혼여행을 해외로 못 가고 제주도로 간 거냐고 묻는 거 아니냐며 웃픈 농담을 주고받았다. 왜 이렇게 우리 세대는 운이 없는 거냐고 말이다.
신혼여행지를 마음대로 고를 수 없다는 이 현실을 받아들이기 까진 꽤 시간이 걸렸다. 결혼식을 몇 개월 앞두고, 시부모님께서 다녀오셨던 그 호텔을 예약했다. 숙박비만 몇백만 원이 나오는 상황이었다. 남편과 나는 다시 한번 심각한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값을 지불하고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가는 것이 맞을까 하는 고민이었다. 남편은 넌지시 나에게 신혼여행을 미룰까 제의해왔지만, 나에게 미뤄진 신혼여행은 더 이상 신혼여행이 아니었다. 그저 여행일 뿐이었지.
실의에 빠진 나를 위해 남편은 입국 가능한 나라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남편이 구글링 했을 당시 코로나 검사 후 입국이 가능하며 자가격리가 짧은 국가로는 아이슬란드가 있었다. 특별한 신혼여행지를 찾고 있던 우리에게 이는 굉장히 매력적인 옵션 중 하나였다. 물론 얼마 안 가 아이슬란드의 자가격리 기간은 일주일로 늘어나 우리의 옵션에서 사라졌다. 잠시 뿐이지만 아이슬란드로 신혼여행을 가는 달콤한 상상을 해보았다. 결혼식이 다가오면서 남편의 검색 빈도는 점점 더 늘어났다. 시시각각 상황이 달라지던 시대였으니 말이다.
우리가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스페인은 상황이 매우 나빴다. 스페인으로 신혼여행을 떠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워져 갔다. 그러던 중 남편이 새로운 정보를 입수했다. 코로나 음성 증명서가 있으면 하와이는 입국 후 자가격리가 필요 없다는 것이었다. 이는 우리에게 거의 유일한 옵션이었다. 유일한 문제점이라고 하자면 평소 신혼여행으로 가장 가고 싶지 않았던 곳이 나에겐 바로 '하와이'였다는 점이었다. 이유는 명확했다. 남들이 다 가는 흔한 장소로 신혼여행을 가고 싶지 않다는 나의 허영심 때문이었다. 남들이 가지 않는 특별한 곳으로 신혼여행을 가고 싶었던 나의 욕심에서 비롯된 마음이었다.
하지만 당시 상황에서 나에게 주어진 옵션은 제주도 or 하와이 단 두 개뿐이었기에 난 후자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러니한 점은 당시 하와이는 오히려 관광객이 줄어 숙박비가 곤두박질치던 시기였기에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가는 비용과 하와이로 신혼여행을 가는 비용이 크게 차이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이에 우리 부부는 하와이로 신혼여행을 가는 것을 택했다.
가자, 하와이로!
21년도 5월 당시, 해외입국자는 무조건 2주간 자가격리가 의무였다. 이에 많은 신혼부부들이 해외로 신혼여행을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혼 후 공부를 위해 미국으로 가야 했던 우리 부부에게는 감사하게도 2주간 자가격리를 할 수 있는 시간적, 상황적 여유가 있었다. 남편은 석사 졸업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었고 나 역시 결혼식을 전후로 일을 그만두게 된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결혼식 다음날, 우리는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매번 방문할 때마다 붐비던 인천공항은 마치 아포칼립스 영화 속 장면처럼 텅 비어져 있었다.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로 사람이 없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다신 없을 유일무이한 경험이었다.
하이와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 승객도 단 몇 명뿐이었다. 코로나 시국에 신혼여행을 갈 때 유일하게 좋았던 점은 사람이 붐비지 않는 비행기를 이용했다 정도인 것 같다. 이용객이 적어 강제로 비행기 스케줄이 변경되는 바람에 하와이에 거의 10일 이상을 머무르게 됐다는 점이 함정이었지만 말이다.
상상과 달랐던 하와이
하와이에 도착한 우리는 잠시 황당하였다. 상상했던 것과 달리 관광객이 많았기 때문이다. 코로나 시대에 제주도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붐볐던 관광지였던 것처럼, 하와이도 상황이 다르지 않았다. 해외여행이 막힌 수많은 미국인들이 하와이로 몰렸기 때문이다. 문제는, 렌터카였다. 하와이는 특성상 차가 없이 다니기 힘든 여행지인데 섬에 차가 수요에 비해 턱없이 모잘랐다. 코로나가 발발하고 관광업이 타격을 맞자 많은 렌터카 업체에서 차를 팔아버려 그 수가 부족해졌다고 한다.
몇 개월 전 예약해 놓았던 빨간색 컨버터블 오픈카는 확보한 상태였지만 문제는 비행스케줄이 바뀌면서 늘어나버린 체류 기간이었다. 우리가 차 렌트를 예약한 기간은 5일뿐인데 그 이후에 추가로 차를 렌트하려고 하니 가격이 어마무시했다. 그 몇 달 사이에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라버린 것이다.
사실 이밖에도 차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다. 겉모습에 반해 빌렸던 빨간색 오픈카는 차체가 낮고 길어서 주차하거나 타고 내릴 때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으며, 트렁크가 없는 탓에 캐리어를 싣고 내리기에 아주 불편했다. 또한 이 차는 시동을 걸 때도 굉음을 내며 자신의 존재를 주변에 알리는 관종인 차였다. 안 그래도 코로나19 발발 후 관광객이 많이 줄어든 하와이에서 대놓고 '여기 관광객 있어요' 광고하는 꼴이 돼버렸다. 관광객은 범죄자들의 타깃이 될 확률이 높았기에 이는 굉장한 부담이었다. 코로나19 이후 미국 내에서 아시안 혐오 범죄가 증가하고 있던 상황이라 안 그래도 위축돼 있던 쫄보부부에게 이러한 관심은 상당히 신경 쓰였다.
일례로, 저녁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향하던 우리는 숙소 근처 가까운 편의점에 들러야 했다. 다음날 있을 투어를 위해 선크림을 꼭 사야만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차를 세우고 편의점으로 향하던 우리에게 한 남성이 다가왔다. 그는 노숙자처럼 보였는데 키가 190cm는 족히 넘어 보였고 30대 정도로 비교적 젊어 보였다.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다. 혹시 저 사람이 우리를 위협하고 강도짓을 하려는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서둘러 편의점에 들어갔다. 선크림을 집어 들고 계산을 한 우리는 잠시 고민했다. 이대로 나가도 위험한 상황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그때 편의점 문이 열리며 체격이 좋은 아시아인 남자가 들어왔다. 그 사람이 같은 아시안이라서 그랬는지 아니면 체격 좋은 남자였기에 무슨 일이 있으면 우리를 도와줄 거라고 생각해서인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그 틈을 타 차로 걸음을 재촉했다. 서둘러 시동을 거는 순간 '붕'하는 굉음이 적막을 뚫고 주변으로 퍼졌다. 나는 재빨리 고개를 돌려 그 노숙자가 우리 근처에 없는지 살폈다. 다행히 이날의 소동은 우리의 지나친 상상력 탓에 발생한 해프닝으로 마무리됐다. 하지만 이 차는 여행 내내 참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오픈카였지만 우리는 딱 한번 해안 도로를 드라이브하며 루프를 열어보았을 뿐이었다. 그 후 이 장치 어딘가 이상이 생긴 것인지 작동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린 렌터카를 반납하는 날까지 다신 루프를 열지 못했다.
내가 생각했던 건 이게 아냐
내가 신혼여행에 지나치게 기대했던 탓일까. 아니면 0순위였던 신혼여행지 장소가 아닌 차선으로 선택한 신혼여행지였기 때문일까. 지금 돌아보며 그때를 상상해 보면 힘든 기억뿐인 것 같다. 신혼여행이었지만 어떤 여행보다 고생을 많이 했던 여행이었고 만족스럽지 못한 여행이었던 것 같다. 물론, 당시 하와이로 신혼여행을 갈 수 있는 기회라도 있었던 것이 우리 부부에게 엄청난 행운이었다. 하지만, 사실 코로나 19만 발발하지 않았다면 이 기회에 이렇게까지 감사할 필요가 없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일까. 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부분들만 자꾸 발견하게 됐다. 그 유명한 와이키키 해변의 바닷물 색은 내가 생각했던 보다 뿌옇게 푸르렀고 육안으로 보는 것보다 사진으로 보는 게 더 예뻤다. 물이 맑다던 북쪽 지역의 해변들은 물이 맑은 대신 암초가 가득했다. 헬기투어를 하며 하늘에서 바라본 하와이는 아름다웠다. 문제는 투어시간이 너무 긴 탓에 나는 그 비싼 헬기투어를 하며 중간에 졸고야 말았다. 결혼식 준비로 지쳐있는 상태에 시차적응까지 해야 했던 탓에 체력이 떨어지고 있었다. 이 또한 신혼여행을 온전히 즐기지 못한 원인 중 하나였다.
결혼식이 끝나고 신혼여행지에 가면 먹고 자고 쉬기만 하면 될 줄 알았으나, 하와이는 바다만 보고 쉬기엔 할 수 있는 액티비티도 많았고 쇼핑몰도 많았고 평소 여행계획을 빡빡하게 짜는 우리 부부의 습성 덕분에 신혼여행은 휴양여행과는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여기에 더해, 우리에겐 아직 엄청난 미션이 남아있었다. 바로 가족들과 지인들의 답례품 쇼핑이었다. 덕분에 우리는 해변보다 쇼핑몰을 더 자주 가게됐고 어쩌면 이 때문에 하와이를 진정으로 느껴보지 못했던 것 같다. 이 또한 신혼여행이 가진 숙명과도 같은 과제이니 그저 즐기는 수밖에 없었다.
여행은 언제나 기대와 현실이 조금은 다르기 마련이지만, 신혼여행은 내가 가보았던 여행 중 그 차이가 가장 컸던 여행이었다. 다른 여행들은 그래도 그 안에서 나름의 의미를 찾으며 결국엔 좋은 모습들만 머리에 기억된 반면, 신혼여행은 그 자체가 가지는 의미가 너무 컸던 탓일까 실망스러운 기억들이 더 많이 생각난다. 결혼 10주년엔 우리가 신혼여행으로 가고 싶었던 마요르카를 꼭 가자고 남편에게 이야기했다. 이 꿈은 과연 실현될 수 있을까. 점점 더 현실이 이상보다 우위에 놓이는 시기에 접어드는 것 같다. 그때에만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놓쳐버린 기분이다. 다 지나갔음에도 괜스레 억울한 감정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