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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 소나무 Apr 14. 2023

결혼식은 환상

(2화) 발가락 사이 모래알

결혼준비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결혼이라는 것 자체가 막연했다. 주변에 결혼한 친구들을 보면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나에게 결혼은 너무 추상적이고 막연한 것이었다. 결혼을 준비하기로 결정했을 때만 해도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할 뿐이었다. 나보다 앞서 결혼한 친구들이 주변에 없었다면 아마 한참을 헤맸을 것이다.


결혼이 막연했던 이유 중에 하나는 결혼에 대한 막연한 환상 때문일 것이다. 내가 결혼식을 준비하며 집착했던 것들이 몇 가지 있었는데, 첫째로는 5월의 신부가 되고 싶다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부케는 무조건 핑크색 작약으로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제일 중요했던 점은 ‘의미’ 있는 결혼식이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사실 나는 예전에 예식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었다. 신부 대기실에서 신부들의 드레스 정리를 도와주는 일이었는데, 신부대기실에서 하루에 최소 4~5명의 신부들을 마주해야 했다. 그야말로 한 시간에 한 번씩 신부들이 바뀌었다. 다른 점이라곤 예식장으로 향하는 로비에 놓인 포토테이블의 신랑신부 사진이 바뀐다는 것뿐이었다. 내가 이때 느낀 점은 ‘예식장은 거대한 공장이구나’ 하는 것이었다. 어쩌면 인생에서 두고두고 가장 아름답게 기억될 순간인 결혼식을 단 한 시간 만에 의례적으로 짜인 틀에 맞춰 진행한다는 사실이 당시엔 상당히 충격이었다. 왜냐하면 나에게 결혼식이란 신성한 의식 중 하나로 모든 게 의미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결혼식이 통과의례 중 하나로, 해야 하니까 하는 이벤트가 되는 것이 싫었다.


나는 결혼식 테마로 ‘감동'이 있는 결혼식으로 정했다. 그래서 우리의 연애사가 잘 녹아 있는 학교 동문회관으로 결혼식 장소를 정했다. 과 CC였던 우리에게 가장 의미가 있는 장소일 것 같아서였다. 물론 부모님들이 선호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결정적으로 단독홀이었기 때문에 우리가 예식을 하는 그 시간에 이 장소는 오직 우리만을 위한 공간이었다.


청첩장 문구도 몇 달을 고민해 내가 직접 만들었다. 결혼식 순서는 주례대신 혼인서약서를 작성했고 축사는 아빠에게 부탁했다. 또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을 전하기 위해 축가 전엔 깜짝 이벤트로 부모님의 젊은 시절 사진과 우리의 어린 시절 사진을 담은, 부모님께 보내는 편지영상을 제작했다. 축가도 신나는 음악 대신 잔잔하고 가사가 예쁜 곡으로 골랐다. 결혼식에 쓰일 노래들도 몇 달을 고민하며 직접 골랐고 결혼식의 분위기를 좌우할 재즈밴드도 섭외했다. 아빠와 손을 잡고 결혼식장에 입장하는 연습도 여러 번 진행했다. 결혼식 준비 내내 나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은 없었다. 세심하게 하나하나 체크하며 파워 J의 면모를 여지없이 드러냈다.




결혼식날은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날씨마저도 완벽하길 바랐다. 결혼식 당일을 상상하면,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 아침, 창문 사이로 햇빛이 들어와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하게 해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햇살을 맞으며 기분 좋게 메이크업샵으로 향하고 싶었다. 결혼준비 내내 해왔던 공주놀이의 마지막이자 절정인 오늘만큼은 내가 고른 드레스에 완벽히 어울리는 주인공이 되고 싶었다. 평소 사진을 잘 찍지 못하는 나도 연예인 뺨치게 사진이 잘 나오길 바랐다.


하지만 현실은, 결혼식 3일 전 계단을 내려오다 발목을 접질려 반깁스를 해야 했고, 결혼식을 위해 준비해 놓았던 새하얀 구두는 무용지물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물론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1년 5월에 진행된 결혼식이라 하객들이 모두 마스크를 착용해야 했다. 이런 건 내 평생 결혼식에 대해 온갖 상상해 보았을 때, 그 어떤 시나리오에도 없던 일이었다.  



대망의 결혼식날

 

친구들에게 결혼식날 어땠냐고 물어보면 열명 중 아홉 명은 ‘정신이 없어서 기억이 잘 안 난다’고 한다. 그땐 이해하지 못했다. 얼마나 정신없길래 그 중요한 순간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걸까 하고 말이다. 그런데 정말 그랬다. 결혼식날은 카오스 그 자체였다.


일단 내가 늘 상상해 왔던 대로 나는 창문 사이로 비추는 햇빛에 눈을 떴다. 햇살을 맞으며 기분 좋게 메이크업샵으로 향했다. 하지만 본격적인 정신없음은 여기서부터 시작이었다. 나의 예식시간은 3시였지만 메이크업 예약시간은 9시였다. 내가 메이크업 샵에 도착했을 때 이미 그곳엔 수많은 신부들이 준비를 마친 후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아마 황금시간대인 12시나 1시 예식 예정인 신부들인 것 같았다. 그들이 빠져나가가기 전까지 우리는 무한 대기 상태였다.


이제 간신히 메이크업을 좀 받기 시작하니까 포토그래퍼 분들이 샵에 도착했다. '아차차.. 내가 왜 스냅사진을 메이크업샵에서부터 시작한다고 했을까’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포토그래퍼분들은 열정적으로 사진을 찍어 주시기 시작했다. 우선 메이크업 샵으로 배달된 부케와 우리의 결혼반지가 어디 있는지 물어보셨다. 사실 나도 어디 있는지 몰랐다. 부케가 메이크업샵에 도착했다는 문자만을 받은 터였기 때문에 정확히 어디에 놓여있는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건 이날의 서막일 뿐이었다. 이날 내내 나에게 온갖 질문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하지만 대부분은 지금처럼 바로 대답할 수 없는 질문 투성이었다.


헤어와 메이크업이 끝나고 드레스를 갈아입자마자 쉴 새 없는 사진 포즈요청이 들어왔다. 어색하게 포즈를 취하고 표정을 지으며 간신히 메이크업샵에서의 스냅촬영을 맞췄다. 사진을 찍다가 시간이 조금 지체됐지만 교통체증이 없는 시간이었기에 애써 조급함을 감춘 채 예식장으로 이동했다. 메이크업샵은 청담이었고 예식장은 신촌이라 이동 거리가 만만치 않았다. 거기에 예상치 못한 교통체증도 시작됐다. 아침에 쨍쨍하던 날씨는 어느새 조금씩 어두워지고 있었다. 일기예보를 보니 하필 우리가 예식을 시작하는 3시부터 비예보가 예정돼 있었다. 맙소사. 역시 중요한 날에는 어디든 비구름을 몰고 다니는 나였다. 나는 어둑해지는 하늘을 보며 혹시라도 예식 전에 비가 내려 하객들이 오는데 불편을 겪진 않을까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우리는 예식장에 도착했고 도착하자마자 다시 카메라 셔터 세례가 이어졌다. 열정적인 포토그래퍼 분들이었다. 이에 더해 결혼식 영상 촬영을 맡아 주실 감독님도 그 무리에 합류했다. 예식장 직원들은 우리를 마중 나와 이것저것 안내를 시작했고 예식에 관한 사항들을 체크하셨는데 드레스 관리를 맡은 이모님도 계속해서 이것저것 지시하시는 통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신부대기실에 도착하자마자 차 타고 이동하는 사이 조금 비뚤어진 드레스를 고쳐 입었다. 그러곤  포토그래퍼분들의 요청으로 다시 사진 촬영을 이어갔다. 휴대폰과 시계가 없으니 지금이 몇 시인지 예식까지 몇 분이나 남은 건지 도통 계산이 되지 않았다. 사진을 찍는 중간중간 일찍 도착한 하객들과 잠깐의 눈인사만을 교환할 수 있었고 가방순이 친구들에게 가방의 위치를 간신히 말해줄 수 있었다. 또, 예식 진행을 위한 여러 질문들이 다시 나에게 쏟아졌고 내 영혼은 점점 저 멀리 가출해 버리고, 내 몸 만이 이 물리적인 세계에 갇혀 있는 것 같았다.


사진을 찍다 보니 어느새 꽤 많은 하객들이 눈에 띄었다. 알고 보니 예식 시작 30분 전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때까지 아직도 신부대기실에서 하객을 맞이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객을 맞이해야 하는데 계속해서 사진만을 찍고 있으니 갑작스럽게 현타가 왔다. 물론 포토그래퍼 분들이야 어색하기 그지없는 모델을 대상으로 에이컷을 찾지 못해 계속해서 셔터를 누르며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시는 거였겠지만, 우리에겐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하객을 맞이해야 했다. 소중한 시간을 내서 우리를 축하해 주러 참석해 준 사람들이었다.


결국 남편이 이제 그만 찍자고 약간의 언성을 높였고 그제야 우린 하객을 맞이하러 이동할 수 있었다. 이미 시간은 지체될 대로 지체됐고 내가 의도한 건 아니지만 신부대기실엔 기다란 줄이 생기고 말았다. 기다려준 친구들에게 미안했고 줄지 않는 줄을 보며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했다. 그래서 사진도 한, 두 차례밖에 찍지 못했고 이야기를 나눌 시간도 없었다. 그렇게 나는 예식이 시작하기 직전까지 신부대기실을 방문한 지인들과 촬영하기 바빴다. 심지어 한 친구는 신부대기실 줄이 너무 길어 사진 찍기를 포기하고 예식장에 바로 들어갔다는데, 그래서 나는 이날 이 친구가 내 결혼식에 참석했었는지도 몰랐다. 나중에 단체 사진 속에 그녀의 모습을 보고서야 내 친구가 왔었구나 알 수 있었다. 얼마나 정신이 없었으면 바로 옆에 있던 친구도 알아채지 못했을까. 내가 상상했던 신부대기실에서의 분위기와는 완전히 달랐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과 대화할 시간도 없이 사진 찍기에만 바빴던 이 상황은 내가 예전에 아르바이트했던 예식장과 자꾸만 오버랩됐다.




신랑&신부 입장 


3시가 됐다. 이제는 입장을 위해 버진로드 앞으로 가야 한다.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아버지의 얼굴을 보니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표정이었다. 나는 애써 웃으며 아빠의 긴장을 풀어주려 노력했다. 그 와중에 나는 드레스와 부케를 잡은 손이 아파왔는데, 비즈가 가득해 이미 무거운 드레스와 더불어 내가 그토록 원했던 작약 부케의 묵직함이 더해지니 한 손으로 잡고 버티기 버거울 정도의 무게가 되어버렸다. 나의 손이 조금이라도 더 작았다면 아마도 이 무게를 지탱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신랑 입장이 시작됐고 경건한 결혼식이 시작됐다. 아빠와 이 감동스러운 순간을 느끼려고 하던 도중, 드레스를 정리해 주는 이모님의 한 마디가 이 순간을 방해했다. ‘버진로드에 초가 많으니 드레스 안 닿게 조심히 걸으라’는 당부였다. 이미 식장에 들어가기 전부터 수차례 언급해 숙지하고 있는데 왜 하필 이 순간 이모님은 나의 감정선을 흐트러 놓는 것인가. 역시 이모님들은 나를 위해 이 자리에 존재하는 게 아닌, 드레스를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었다.

  


신부입장 곡이 연주됐고 아빠와 나는 한발, 한발 연습한 대로 속도를 맞춰 걸으려고 노력했다. 어두운 예식장 사이로 포인트 조명이 우리에게만 비추고 하객들 모두가 우리를 보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결혼식에 가면 항상 궁금했다. 버진로드에 입장하는 이 순간, 다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말이다. 그런데 싱겁게도, 그 순간 내 머릿속엔 오직 걷다가 넘어지면 안 된다는 생각과 부케와 드레스를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버진로드 끝에 닿아 남편은 우리 앞으로 마중을 나왔고 아빠는 나의 손을 남편에게 건네줬다.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내 마음속 어디에 있었는지도 모를 감정이 복받쳐 올라왔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도 못하고, 상상해보지 못한 느낌이었다. 아버지의 손을 놓고 남편의 손을 잡는 그 찰나의 순간 느꼈던 이 감정을 나는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슬프기도 감격스럽기도 한 경이로운 감정이었다. 나는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아, 망했구나..’

아빠와 손을 맞잡고 걷는 버진로드. 출처: SOL


평소에 눈물이 나면 콧물도 자동반사로 흐르는 까닭에 나는 순식간에 코찔찔이 신부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바로 진행된 다음 순서는 아버님께서 성혼선언문을 읽어주시는 성스러운 시간이었지만 나는 물처럼 흐르는 콧물을 훌쩍거리며 들이켜기 바빴다. 결국 나는 이모님께 휴지를 요청했고 가까스로 흘러나오는 콧물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나는 성혼선언문의 순간이 기억나지 않는다. 이 무슨 황당한 일이란 말인가. 혼인을 선포하는 성스러운 순간에 콧물 닦느라 여념이 없는 신부라니. 이후 진행된 혼인서약서도 간신히 읽어냈다. 다행히 혼인서약서를 읽으며 나는 이성의 끈을 부여잡았고 이후에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덕담을 하는 아빠의 눈을 쳐다볼 수 없었다. 눈을 마주치면 다시 눈물이 찔끔 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멈췄던 눈물은 양가 부모님께 인사하는 순간 다시 터지고 말았다.


사실 우리 엄마는 결혼식 내내 고개를 숙인 채 계속 울고 계셨는데 감정을 컨트롤하기 어려워 보였다. 인사를 건네고 엄마와 포옹하는 순간 엄마는 마치 이 순간이 마지막이라도 되는 양, 쉽게 나를 놓지 못하셨다. 한 번의 포옹이 끝나고 엄마는 다시 한번 나를 꼭 끌어안았다. 엄마의 감정이 전이된 탓인지 한번 터진 울음은 쉽사리 잦아들지 않았다. 결혼식 끝나고 친구들에게 들은 이야기이지만, 신부 측에 앉아있던 나의 지인들 대부분이 아빠의 덕담시간과 이 순간에 다들 눈물이 터졌다고 했다.


드디어 모든 순간이 끝나고 신부신랑 행진곡이 흘러나왔다. 친구들 결혼식에 가면 가장 웅장해지는 축복으로 가득한 순간이었다. 이때 나는 신랑에게 딱 한마디를 건넸다. ‘드디어 끝났다’였다. 결혼식이 끝나니까 마치 오랫동안 괴롭혀온 거대한 프로젝트가 끝난 듯 마음을 짓누르던 체증이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드디어 결혼을 했다는 설렘보다는 드디어 끝났다는 안도감이 더 크게 몰려왔다. 인생의 거대한 산맥 하나를 넘은 느낌이었다. 어려운 퀘스트를 하나 깬 느낌. 이제야 비로소 알게 됐다. 그래서 다들 결혼식 때 어땠냐고 물어보면 ‘정신없어서 기억이 안 난다’고 하는구나 하고 말이다.

결혼식에 관한 환상. 출처: SOL




최대한 변수가 없도록 철저하게 준비했다고 생각했는데 결혼식은 생각보다 이성적인 영역보다는 감정적인 영역에 더 가까웠던 것 같다. 어쩌면 내가 테마를 ‘감동적인’ 결혼식으로 잘못 잡은 탓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뿌듯했던 건 많은 친구들이 나에게 정말 의미 있는 결혼식이었다고 말해주었다는 사실이었다. 옆에서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을 다 보았던 가까운 친구는 네가 열심히 준비한 만큼 그 감동이 그대로 전해지는 결혼식이었다고 말해주었다. 그거면 충분했다. 지난 일 년간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 놓이며 최선을 다해 고민한 결과가 내가 목표했던 결혼식에 조금이라도 가깝다면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참 예민하고 극성인 신부였던 것 같다. 내가 결혼식에 대해 거의 2년이 지난 이 시점에 글을 쓰는 이유는 결혼식을 조금이라도 객관적인 시선으로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막상 그날의 기억을 상기하며 글을 쓰다 보니 예상보다는 감정적으로 치우친 점이 없지 않아 있는 것 같다. 그래도 결혼식 자체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자면, 결혼식은 인생에서 큰 이벤트 중 하나인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상상만큼 환상적인 순간은 아니란 것이다. 내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될 줄 알았지만, 막상 나의 기억 속에 남은 건 그날 내가 느꼈던 여러 감정들의 흔적뿐이다. 그래도 매년 결혼기념일이 다가오면 다시 한번씩 꺼내 보게 되는 결혼식 사진과 영상들을 보고 있자면 어느새 내 입꼬리는 올라간다. 2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벌써 내 결혼식 영상이 촌스러워 보이는 건 왜일까. 어느덧 2년이나 흘렀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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