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탐험과 여행 사이
옐로스톤 국립공원에는 무려 500개 이상의 활동 중인 간헌철(geysers)이 존재한다. 전 세계에 존재하는 간헐천(Geyser)의 약 60% 정도가 바로 이 옐로스톤에 있다고 한다. 덕분에 옐로스톤하면 떠오르는 유명한 이미지 중 하나가 바로 이 간헐천에서 솟구친 물이 하늘 높이 분출하는 장관일 것이다.
솟아라 물기둥
옐로스톤 국립공원을 방문하면 꼭 해야 하는 필수 코스가 있다. 바로 올드 페이스풀(Old Faithful)에서 분출 장면을 보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다른 관광지보다 올드 페이스풀이 있는 곳은 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비교적 깨끗한 화장실과 기념품을 살 수 있는 가게, 식당, 호텔까지 규모가 제법 컸다.
사실 올드 페이스풀의 첫인상은 그랜드 프리스매틱 스프링(Grand Prismatic Spring)만큼 강렬하진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물이 분출되는 그 잠깐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시간은 그저 분출구를 통해 나오는 수증기를 바라보는 것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분출을 기다리는 수많은 사람들은 간헐천이 터질 때 그 모습을 잘 담아내기 위한 최적의 장소를 찾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사실 올드페이스풀 비지터 센터에 방문하면 예측시간이 적혀있다. 1시간에서 1시간 30분 정도 간격으로 분출되는데 지난 30년간 분출 사이의 간격이 약 30분 정도만 느려졌을 뿐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간헐천의 분출을 규칙적으로 예측하는 것은 흔치 않다고 하는데 올드페이스풀은 예외인 것이다. 덕분에 관광객들은 정해진 시간에 관람할 수 있는 쇼처럼 지구가 만들어낸 분수쇼를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다. 그래서 올드 페이스풀이 가장 유명한 간헐천이 된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우리는 운이 좋게도 방문하자마자 간헐천이 분출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기다리지 않고 바로 봐서 좋았지만 분출 시간에 도착한 탓에 가장 전망 좋은 곳에서 보지는 못했다. 전에 다큐멘터리 같은 곳에서 이 분출 모습을 본 적이 있었는데 실제로 보니 생각보다 물기둥이 엄청나게 높진 않았다. 웅장한 느낌을 기대했지만 그날의 분출은 기대만큼은 아니었다.
올드 페이스풀을 보고 난 후 우리는 트레일을 따라 모닝글로리를 보기 위해 걷기 시작했다. 옐로스톤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장소 중 하나답게 길이 잘 정비되어 있어 걷는데 무리가 없었다. 다만 그늘이 없어 땡볕을 걸어가야 했기에 조금 힘이 들긴 했다. 트레일을 따라 걷다 보면 크고 작은 간헐천들이 계속 나왔다. 안타깝게도 올드 페이스풀 외에 다른 간헐천이 분출하는 건 볼 수 없었다. 그래도 기억에 남는 간헐천 중에는 캐슬 가이저(Castle geyser)가 있었다.
성곽 같은 모양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여졌구나 알 수 있는 곳이었다. 캐슬 가이저에서 물기둥이 솟아 나오는 곳은 본래 원뿔 모양으로 수천 년 전에 만들어졌다. 이 간헐천은 평균적으로 14시간마다 물을 분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기둥은 약 24m(75 ft)에 달할 수 있으며, 증기가 뿜어져 나오고 칙칙 거리는 소음이 30-50분가량 지속되다가 20분간 물기둥의 분출이 지속된다고 알려져 있다. 다만 수증기 없이 몇 분간 물만 흘러나오는 경미한 분출이 발생한다면, 다음에 발생할 거대한 분출은 언제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다고 한다.
물기둥이 나오는 원뿔 모양의 중심부는 과거에는 호열성박테리아로 이뤄진 거대한 군집이 존재했다고 한다. 수백만 개의 미생물이 주변환경과 상호작용하며 생명과정으로 가득 찬 복잡한 커뮤니티를 형성했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곳을 찾은 한 관광객에 의해 이 부분이 떨어져 나가면서 영구적인 손상을 입었다고 한다. 이에 더 이상 이곳에서 호열성 박테리아는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관광객의 무지한 행동으로 인해 과학자들은 새로운 세계를 관찰할 기회를 잃어버린 것이다.
관광객이 변화시킨 자연의 색
관광객에 의해 과거의 모습을 잃은 곳은 또 한 곳 존재한다. 바로 모닝글로리풀(morning glory pool)이다. 이곳에서 올드페이스풀 다음으로 유명한 것이 모닝글로리풀(morning glory pool)이다. 이곳 역시 과거에는 지금 보는 색과는 완전히 다른 색이었다고 한다.
모닝글로리 풀은 사실 사파이어 색에 가까웠다. 이름 또한 1880년대 보랏빛이 감도는 파란 꽃의 이름을 따서 명명됐다고 한다. 실제로 19세기 찍힌 이곳의 사진을 보면 모닝글로리 풀은 호수 전체가 푸른빛을 띠었고 지금보다 더 투명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20세기 후반에 이르게 되면서 모닝글로리는 오렌지, 노란색 녹색 등 다양한 색을 얻게 됐다.
누가 호수의 색을 변화시켰을까
미국 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이러한 색 변화는 방문객들이 호수에 던진 쓰레기, 동전, 돌 등에 따른 결과라고 한다. 사람들이 던진 쓰레기가 열수 분출구를 막아 열수의 흐름에 영향을 주었고 그 결과 수온이 낮아지면서 호수의 생태계 밸런스가 깨졌고 특정한 미생물이 번성하기 시작하면서 색이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관광객들이 자연보호에 대한 개념이 생겨나기 전 했던 무지한 행동으로 인해 자연 고유의 색을 잃어버린 안타까운 장소가 아닐 수 없다.
사실 나는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일부 장소에서 사람들이 남긴 흔적들을 많이 보았다. 쓰레기에서부터 바람에 날아가 떨어진 모자까지. 이 모습을 보니 옐로스톤 국립공원도 요세미티 국립공원처럼 관광객을 제한해야 하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너무 아름다운 이곳이 오랫동안 변지 않는 모습을 간직했으면 한다. 모닝글로리의 변화된 색 또한 아름답긴 하지만 지구가 만들어낸 그 빛깔을 그대로 간직했다면 얼마나 더 아름다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모닝글로리풀은 트레일 가장 안쪽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이곳까지 보고 다시 돌아 나오려면 1시간 30분-2시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됐다. 그 덕분에 우린 트레일을 마치고 다시 올드페이스풀로 돌아왔을 때 올드 페이스풀이 다시 분출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두 번째 분출은 예측시간보다 20분이나 늦게 터진 것이라고 했는데 덕분에 우린 한 번도 기다리지 않고 두 번이나 물기둥이 솟구치는 걸 바로 감상할 수 있었다. 이번 여행의 작은 행운이었다고나 할까.
물기둥은 왜 솟는 걸까?
간헐천을 보고 있을 때 가족단위의 관광객들이 주변에 많았다. 그중 아이가 부모님에게 묻는 가장 많은 질문 중 하나는 바로 '어떻게 물이 이렇게 솟아오르는 걸까'하는 것이었다.
간헐천은 온천(hot spring)이나 화산지대에서 볼 수 있는 지질학적 구조로 지표면으로부터 연결되는 관을 통해 지하에 고여있던 물이 열 에너지를 받아 주기적으로 물과 수증기를 급격하게 분출하는 현상이다.
간헐천 시스템의 가장 깊은 곳에서 순환하는 물은 지표에서 물의 끓는점(199°F/93°C)을 넘을 만큼 뜨겁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지표면에서 물의 끓는 온도는 1 기압일 경우 100°C(212°F)이다. 하지만 옐로스톤의 간헐천이 위치한 곳은 고도가 더 높고 기압이 더 낮기 때문에 물이 약 93°C(199°F)에서 끓는다고 한다.
이 말은 즉 열원을 가지고 있는 옐로스톤의 지하온도는 물을 기화시킬 만큼 충분히 뜨겁다는 소리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압력은 깊이에 따라 증가하고 옐로스톤의 온천의 경우 물의 무게까지 더해져 그 압력은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덕분에 물의 끓는점은 더 높아지고 이로 인해 옐로스톤의 간헐천 시스템은 지하의 높은 온도에도 불구하고 지하수가 끓어 넘치진 않게되는 것이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공급되는 열로 인해 물의 부피가 증가하면서(밀도가 감소) 물을 점차 상승시킨다. 지속적인 열 공급은 물의 일부를 기화시키고 증기를 만들어 내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 증기들은 지표 근처의 제한적인 배관시스템에 의해 갇히게 되고, 이에 배관시스템의 압력은 자연스레 증가하게 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임계점에 도달하게 되면, 압력을 받고 있던 기체들이 지표로 물을 끌어올리며 물을 분출구로 쏟아지게 만들다. 간헐천의 분출이 시작되는 것이다. 물은 간헐천의 배관 시스템으로 물이 다시 들어가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배출되고 열과 압력을 점차 감소시킨다. 그러다가 물을 저장하고 있던 저장소가 고갈되거나 시스템이 냉각되면서 분출은 중단된다.
https://www.nps.gov/yell/learn/nature/hydrothermal-features.htm
왜 어떤 간헐천은 예측가능한 걸까
그렇다면 왜 어떤 간헐천은 예측할 수 있는 반면, 다른 간헐천들은 주기를 알 수 없는 걸까?
간헐천이 주기적으로 분출하는 이유는 1846년 독일 화학자 로베르트 분젠(Robert Bunsen)의 주장으로 설명이 가능한데 그는 간헐천 내부의 압력과 온도를 최초로 측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측정값을 바탕으로 그는 표면에서 물이 끓기 시작하면 분출이 시작돼 과열된 물기둥 내의 압력이 감소하면서 물의 끓어오름이 표면에서부터 지하로 전파되며 분출이 지속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앞에서 설명했듯이 압력이 높으면 끓는점도 함께 높아지지만 압력이 줄어들면 물은 상대적으로 더 낮은 온도에서도 끓을 수 있기 때문이다.
UC 버클리(UC Berkeley)의 화산학자 마이클 망가(Michael Manga)의 연구 역시 이와 비슷한 설명을 보여준다. 대부분의 간헐천에는 기포(steam bubbles)를 가두는 구조가 존재하고 지하에서 주입되는 증기들은 이곳에 축적된다고 한다. 이곳에서 증기가 방출되기 시작하면 간헐천은 분출할 준비가 되는 것인데, 빠져나온 증기가 물기둥을 끓는점까지 가열시킨다. 그러면 물의 최상위층이 먼저 끓기 시작한다. 이후 나머지 물기둥도 끓어오르며 분출이 지속된다. 땅에서 분출되며 나오는 물기둥의 부피 중 절반 이상이 증기이지만 질량 대부분은 액체 상태의 물이라고 한다. Michael Manga는 "멀리서 보이는 물기둥의 대부분은 공기 중에서 물방울로 응축되는 증기"라고 설명한다.
과학자들이 간헐천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바로 간헐천이 연구하기 훨씬 어려운 화산 폭발에 관한 통찰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과학적 중요성을 제외하더라도 지구가 만들어낸 분수쇼는 그 자체로 충분히 관람할 가치가 있다. 자연이 만들어낸 모든 멋진 풍경은 바로 이 옐로스톤 국립공원에 존재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