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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조 Nov 11. 2024

어느 밤 자기 전 돈생각

쓸데없는 잡생각 모음. zip

1.

나는야 월급쟁이 K-직장인. 연봉은 딱 평균정도. 연차에 비해선 좀 적은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생활비에 월세에 저금에 효도도 할 만큼은 벌이가 된다.

이제 결혼할 때가 돼서 집을 알아보는데 그동안 옷, 가방, 외식에 썼던 돈이 너무 아까울 정도로 모아둔 돈에 비해 터무니없이 비쌌다. 아, 집값 안 떨어지나? 아니다. 부모님 집값은 안 떨어져야 되는데.



살면서 명품 가방은 딱 한 번 사봤고 옷은 SPA브랜드나 중국발 보세옷 위주로 잘 버텨왔는데

왜 나는 돈이 없을까? 유튜브 브이로그에 나오는 직장인 유튜버분들은 명품도 많고 오마카세도 다니고

해외여행도 턱턱 잘 다니는 것 같은데.

저분들은 도대체 연봉이 어느 정도길래 저렇게 쓸까? 저축은 얼마나 할까?

유튜브를 해야 되나?



2.

얼마 전 헤드헌터로부터 오퍼를 받아 좀 큰 기업에 경력직으로 지원서를 제출했다. 로또 사놓고 당첨되면 뭘 할지 상상하듯이 이력서를 제출하자마자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는 언제 퇴사하면 좋을지 달력을 봤다. 얼씨구. 입은 또 얼마나 근질거리던지 합격 발표나 받고 말할 것이지 바로 소문내버리는 가볍디 가벼운 내 주둥이. 결과는 어땠을까. 어떠긴 뭘 어때. 안 됐지 뭐.

메일 푸시 알림을 무심코 눌렀는데 제일 먼저 보이는 '안타깝지만'이란 단어.

난 이 단어가 제일 싫다.



그제야 하루 만에 만든, 아니, 3시간 만에 만든 포트폴리오와 예전에 써둔 경력 기술서를 그대로 복사 붙여 넣기 한 게 떠오른다. 양심적으론 불합격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했다. 스스로도 큰 기대 없이 제출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불합격 메일을 받으니 실망인 건지 기분이 나쁜 건지 불안함인지 모를 묘한 감정이 생겼다.

더 나아가 앞으로 내가 지금보다 더 나은 회사로 이직이나 할 수 있으려나 하는 불안감까지도 들었다.

아, 이래서 자기 전에는 쓸데없는 생각은 금물이다.

대단한 노력도 하지 않았으면서 좋은 결과를 기대했단 걸 머리로는 알지만 실망한 감정이 드는 내가

잠깐 좀 싫었다.



3.

올해로 28년째 내 침대 한편을 차지하고 있는 애착 강아지 인형이 있다. 그의 이름은 '빙고'. 성별은 남자고 달마시안이다. 아, 23년 된 친구도 있다. 그녀의 이름은 '머피', 시츄 곤듀님이다. 가끔 이 정도로 인간과 살았으면 주인이 돈 벌어 올 동안 집 청소는 해줘야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농담이다.

가끔 내 기준에 돈을 좀 썼다 하는 날엔 약간의 죄책감으로 그 녀석들을 껴안고 잠자리에 들면서 로또에 당첨되게 해달라고 간절히 빌며 잘 때가 있다. 근데 단 한 번도 숫자 하나 알려주는 법이 없다.

나빴다 너네,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4.

아, 이제 진짜 미니멀리스트로 살 거다. 이미 있는 물건만으로도 미니멀리스트 자격은 박탈이지만 이제부터라도 소비는 멈춰야지. 매달 세일 한다는 광고가 뜨면 쇼핑앱을 기웃거리다 꼭 하나씩 구매하곤 했는데 진짜 필요한 것 아니면 사지 말아야지. 작년엔 벗고 다녔니? 정리 안된 옷장을 좀 봐, 제발.

매달 카드값이 30~40만 원은 나오는 듯하다. 운동을 배우거나 뭔가 생산적인 것에 쓴 거면 아깝지도 않은데 잡화에 소비한 비중이 80%는 된다. 그럴 리 없겠지만 혹시나, 전산 시스템 오류로 인해 합계가 잘못 계산된 건가 확인차 내역을 보면 응, 내가 쓴 거 맞다. 아니, 몇 천 원짜리만 썼는데 왜 갑자기 40만 원이 되냐 이 말이야. '티끌 모아 태산'의 의인화가 바로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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