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지연 Mar 19. 2019

다시 알을 깨고 나온다는 것

이제 막 시작하는 앙카라에서의 삶



2019년 2월 28일, 나의 터키 앙카라에서의 새로운 삶이 시작됐다.


이 곳에 오게 된 계기는 바야흐로 3년 전으로 앙카라대학교-고려대학교 협정으로 좋은 기회에 터키 히타이트 유적을 발굴에 참여하면서 처음 터키에 오게 되었다.


이 곳에 오기 전 나는 '고고학'을 전공한 학생이었다. 물론 지금도 고고학을 공부하는 학생이다.

스무 살 대학생 새내기 첫여름방학에도, 졸업 전 마지막 여름방학에도 나는 어김없이 발굴을 갔고 내 얼굴은 항상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이 오기 전까지는 구운 계란같이 거무스름하게 타있었다. 그렇게 스물한 살부터 졸업까지 매 여름마다 터키에 왔고, 나의 대학생활에서 터키는 지분이 꽤나 커져있었다.


처음부터 터키 고고학을 전공하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절대 아니다. 대학을 다니는 내내 수만 가지의 진로와 직업을 알아보고 (아, 수만은 아니고 꽤나 많이 ) 고민하고 전공도 살리면서 꽤나 괜찮은 일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렇게 4년을 꼬박 생각했고 내 결정은 좋아하는 걸 더 공부해보는 것이었다. 감사히도 부모님은 내 결정에 걱정 반 존중 반의 마음으로 이해해주셨다. 그래서 지금 나는 대한민국에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앙카라에서 터키 고고학을 공부하고 있다.



지금 바로 여기에서 모든 걸 새롭게 시작하고 있다. 대학 4년 동안 내가 원하는 것을 삶이 무엇인지 찾으려 애썼고 겨우 나만의 멋진 어른의 기준이 어렴풋이 생겼을 즈음 또다시 0부터 시작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쉽게 쉽게 혼자 해결하던 것들도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갈 수도, 할 수도, 살 수도 없을 때가 많다. 나는 터키어도 잘하지 못하고 아시아에서 온 작은 체구의 여자라서 길거리에서 혹은 버스에서 모든 눈들이 나에게로 쏠린다. (여자라서 작다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실제로 작음) 기분이 좋을 때는 연예인이 된 기분이라 낄낄대지만 보통 주로 불쾌한 기분이 들 때가 많다. 버스 카드를 충전하는 법, 지하철을 갈아타는 법, 맥주 파는 가게 등 사소한 것부터 하나씩 배워가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꽉 찬 독립심을 안고 터키에 왔는데 실상 혼자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은 많지 않다는 것에 꽤나 힘들 때도 있지만, 여름마다 우정을 다진 몇몇의 터키 친구들과 온 마음을 응원해주는 터키 교수님이 계셔서 외로울 때보다 든든할 때가 더 많다. 그래도 언젠가는 시간이 지나고 이 곳에 익숙해지면 신세 지지 않고 독립할 수 있겠지..?

2017년 여름, 든든한 큘테페 오빠들 :)


24년을 알을 깨고 나오려 발버둥 쳤는데 또다시 새로운 알에 들어가 있다. 다시 알을 깨고 나온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그래도 0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친구들, 좋은 선생님들 그리고 저 먼 한국에서 나를 응원하고 걱정해주는 가족, 친구들의 마음이 더해져 2부터 시작하는 마음이라 조금은 덜 조급하고 더 따뜻하다.


나랑 한번 잘해보자? 터키야?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 헤르만 헤세, < 데미안 > -




매거진의 이전글 얼렁뚱땅 아마스라 여행기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