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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드윈 Feb 23. 2024

4년 만의 한국방문기 - 4

부산으로, 진짜 내 고향으로.



 한국에서의 이튿날 해가 밝았습니다. 말이 2일 차지, 사실상 1일 차의 연장선상입니다. 전날 새벽 3~4시까지 술을 마시다가 잤으니까요.


 평소땐 술을 아무리 늦게까지 마셔도 7~8시에 잠이 자동으로 깨는데 너무 피곤해서 그런가 10시쯤에 잠에서 깼습니다. 일어났는데도 눈이 팽팽 돌고 술냄새가 진동을 하는 게 아직도 취해있는 상태였습니다.


 복통에 두통에 구토증상까지. 점심 전까지 명동으로 넘어가서 명동성당 구경도 하고 종묘 구경도 하고 우레옥 가서 평양냉면도 먹겠다는 굳은 의지는 사라진 지 오래였습니다.


 동생이 시켜준 순대국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결국 술병이 나서 그날 일정은 캔슬됐습니다. 오후 5시까지 침대에 누워 끙끙대다가 힘들게 서울역으로 향했습니다. 서울역으로 향하는 도중에 부모님께 연락이 왔습니다.


 “오늘 사천에서 사촌형 네 부부가 너 보려고 부산으로 온다고 하는데 괜찮냐?"라고 물어보시더라고요. 사천에서 저 때문에 온다는데, 차마 거절할 수가 없어서 괜찮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불행 중 다행인지. 택시를 타고 서울역으로 갔는데 택시기사님 운전이 거칠어서 속이 메스꺼웠거든요. 구역질을 속으로 참으면서 겨우 버텼습니다.


 그날따라 차도도 번잡하고, 롯데 백화점과 신세계 백화점에 크리스마스 겸 연말 점등식이 있어서 인파가 엄청나게 몰려있더군요. 택시가 차도에서 움직이질 못하고, 기사님도 차선을 이리저리 변경하면서 운전을 하시는 터라 정말 죽는 줄 알았습니다.


 속이 너무 안 좋아서 택시 안에서 구역질을 꾹꾹 누르며 참았습니다. 서울역에 도착하자마자 화장실로 달려가 속을 한 번 게워내니 그제야 좀 살 것 같더라고요. 편의점에서 숙취해소제 하고 보리차를 마셨습니다. 그렇게 하고 나니 정신이 좀 돌아오는 것 같았습니다.


 시간에 맞춰 ktx를 타고 제 자리에 앉자마자 죽은 듯이 잠을 잤습니다. 덕분에 부산에 도착했을 땐 컨디션이 조금 돌아와 있었고요.




 부모님은 부산역에 마중 나와주셨었습니다. 4년 만에 보는 부모님은 여전하셨습니다. 그동안 자주 영상통화로 얼굴을 봬서 그런지, ‘많이 늙으셨다’ 같은 생각은 안 들더라고요. 전에도 한 번 이야기했었지만 제 주변엔 이민 1세대 분들이 많아서 자주 하시는 이야기가


 “결혼하기 전에는 시간이 되면 부모님 자주 뵈러 가라.”하시고 한국을 가게 되면 “너 생각보다 막상 뵈면 부모님이 너무 늙으셔서 너 마음이 아플 거다.”하는 말씀을 매번 하십니다.


 저도 그런 생각이 들고, 괜히 울적해질까 봐 마음에 준비를 조금 하고 부모님을 뵀는데 생각보다 너무 젊어 보이시고 잘 지내셨던 것 같아 저도 마음이 좀 놓였습니다.


 “너무너무 오랜만인데 하나도 안 변했네, 살이 좀 빠졌네? 거기서 많이 힘들었어?" 하면서 저를 안아주시는 어머니의 품이 좀 낯설기도 하고 따뜻하기도 했습니다.


 아버지는 "캐리어 빨리 실어라. 너희 형님하고 형수 식당에서 기다리겠다. 빨리 가자." 하시면서도 제가 반갑기도 하고 오랜만에 본 게 좋으셨는지 표정은 아주 밝고 좋아 보였습니다. 캐리어를 트렁크에 넣고 아버지를 한 번 안아드렸습니다. "아우, 시간 없다. 빨리 가자." 하시더라고요. 부산 남자들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사촌형님이 예약한 식당은 광안리에 있는 한 고깃집이었습니다. '아, 고기 말고 해장국 같은 거 먹고 싶은데...'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지만 어쩌겠습니까. 거기 뷰도 좋고 고기도 잘하는 곳이라는데,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아서 "어제는 소고기 먹어서 오늘은 돼지 먹고 싶었는데 잘 됐네요." 하면서 광안리로 향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부모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어제 술이 떡이 되도록 먹었다는 이야기는 빼고요. 괜히 그런 이야기를 해서 잔소리를 듣긴 싫었거든요. 그냥 밴쿠버 친구 커플 만나서 좋은 식당에서 좋은 시간 많이 보냈다,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넘어갔습니다.




 다행히 예약 장소까지 너무 늦지 않게 도착했습니다. 사촌형님하고 형수님이 먼저 도착해서 앉아 계시더라고요. 광안대교와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좋은 룸을 잡아 놓으셔서, '역시 S 형님은 달라...'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형님과 형수님은 정말 오랜만에 뵀습니다. 외할머니께서 제가 군대를 전역한 다음 해에 돌아가셨고 그때 장례식장에서 본 게 마지막이었으니 거의 10년 만에 만난 거거든요. 그런데 이상한 게 그냥 그때 모습 그대로더라고요. 팔에 용하고 호랑이 두르고 있는 거 말고는.


 가족들이야 영상통화라도 자주 하니 그렇다 쳐도 10년 동안 얼굴 한 번 못 본 사촌형님네도 달라진 게 없이 제가 기억하는 모습 그대로라니.


 워낙 호탕하신 성격의 사촌형님이라

 "캐나다에서 왔는데 먹고 싶은 거 다 시켜. 오늘은 형이 쏠게. 고모, 고모부도 드시고 싶은 거 가격보지 말고 그냥 시키세요." 하시길래 전 돼지고기를 시켰습니다. 그런데 기분 나빠하시더라고요.

 "나 너 생각보다 돈 많이 벌어. 돼지 말고 소 시켜."

 "소고기 거기서 많이 먹어가지고, 한국식 돼지고기 먹고 싶은데. 삼겹살 목살 말고 딴 부위는 거기서 먹기 힘들거든."

 "그럼 먼저 소고기 먹고 그다음에 돼지 먹자." 하면서 소고기를 먼저 시키더라고요.


 저희가 간 곳도 꽤 괜찮은 식당인지 직원분이 와서 직접 고기를 다 구워주시더라고요. 그리고 좀 신기했던 게 형님이 고기 구워주시는 분께 팁으로 3만 원 정도 주시면서 "실장님, 잘 부탁드립니다." 하시길래 '아, 여기도 이런 식의 팁 문화가 있구나. 어제 서울에서도 저렇게 돈을 미리 드렸어야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확실히 회사생활을 오래 한 형님이라 좀 다르긴 하더라고요.


 고기가 익고, 저희 접시에 고기가 올라오니 형님이 소주를 열었습니다. 소맥 마실래, 소주 마실래 하시길래 그냥 소주 먹겠다고 했습니다. 어제 과음해서 섞어서 먹으면 힘들 거 같다고 하니까, 그럼 알아서 적당히 마시라고 하더라고요.


 다 같이 건배하고 소주를 반쯤 마시고 내려놨습니다. 그러니까 형님이 웃으면서


 "고모, 인마 이거 캐나다 사람 다 됐네요. 어른들하고 마시는 데 소주를 깔아서 마시네." 하시더라고요. 농담인 거 아는데, '아 그렇지... 한국에서 이게 예의가 아니었지...' 싶어서 남은 거 다 마시고 형님한테 술도 따라줬습니다.


 술 따르는 것도 방식이 있더라고요. 술병에 붙은 라벨을 손으로 가리고 따라 줘야 된다던가. 술병 끝이 잔에 닿으면 안 된다던가. 대학 다닐 때 그런 이야기를 들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요 몇 년 동안 대부분 친구들이나 나이차이가 별로 안 나는 사람들과 먹다 보니 한국식 술자리 예절을 잘 모릅니다.


 형님도 농담이라고 천천히 마시라고, 그냥 이런 거 알아 놓으면 나쁠 거 없다고 그런 술자리 매너를 가르쳐주러 다라고요. 전 술 먹고 개 되는 것만 아니면 술을 자작하든 술을 깔든 취해서 테이블에서 자든 상관없긴 하지만, 듣다 보니 그런 이야기도 재밌었습니다.


 어쨌든 술이 한두 잔 들어가니 생각보다 잘 받더라고요. '오늘 더 마실 수 있겠다.'싶어서 그때부터 평소처럼 마셨습니다. 소고기도 시키고, 돼지고기도 잔뜩 시키고 찌개 같은 것도 시켰습니다. 술도 엄청 마셔서 그런가 중간에 숙취해소제도 주시더라고요.


 어제 무리하기도 했고, 술도 꽤 마셔서 금방 취했습니다. 그때부터는 술을 천천히 마시면서 사촌형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밴쿠버 생활에 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었죠. 사촌동생을 밴쿠버로 1년 정도 유학 보내볼 생각인데 어떻냐, 돈은 얼마나 드냐, 거기 유학 가려면 어떻게 해야 되나? 등등.


 제가 유학생으로 밴쿠버 생활을 시작해서 정확하겐 잘 모르지만 "돈은 꽤 들 거다. 학비 빼고 순수 생활비만 거의 한 달에 $2,500~3,000 정도 생각해야 될 거 같은데."하고 이야기해 줬습니다.


 한국은 전세가 있는데 여긴 무조건 월세개념입니다. 근데 그 월세가 엄청 비싸요. 요샌 스카이트레인이라고 도시철도가 깔려있는 근처 동네면 방 하나 빌리는데 $1,500~1,800 정도 합니다. 원룸이 아니라 2개의 방 중에 하나 빌리는데요. 그런 집은 대부분 거실에도 한 분이 주무시고, 덴이라고 창고 같은 방이 있는데 그곳에도 한 분이 주무시겠죠.


 홈스테이도 잘 돼있는 걸로 아는데 홈스테이에서 살아본 사람들은 대부분 별로라고 하더라고요. 남의 가정집의 규칙을 지키는 것도 까다롭고 홈스테이 하시는 분들이 대부분 필리피노여서 음식도 입에 잘 안 맞는다고.


 아무래도 혼자 살거나 한국사람들하고 같이 사는 게 좋을 텐데 혼자 살려면 너무 비싸고, 한국사람들하고 같이 사는 것도 케바케여서 룸메이트 잘 못 만나면 골치 아프거든요.




 형님은 생각보다 돈이 좀 들어가겠네. 하더니 술이나 더 먹자고 하셔서 술을 더 마셨습니다.


 아마 유학 이야기 때문이겠죠. 그냥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하다가 정신 차려보니까, 외국 생활이 참 쉽지 않다는 이야기를 제가 하고 있더라고요.


 처음에 도착했을 때, 일 구하러 다닐 때, 일 시작하고 나서. 그때 서러웠고 살아남으려고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혼자 주절주절 했습니다.


 지금이야 웃으면서 추억인 양 말하는 이야기지만, 그때 당시에는 엄청 힘들었거든요. 영어도 잘 못해, 경력도 없어. 이력서를 이메일로 넣으면 보지도 않는다고 해서 구글맵으로 랩을 검색해서 50군데 넘게 직접 가서 이력서를 뿌렸는데 면접기회조차 없었었거든요. 그렇게 고생해서 취직을 했지만 취직이 끝이 아니더라고요. 일 배우느라 몇 년 동안 신나게 굴렀죠.  


 여하튼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형님이 그러더라고요.


 "나는 네가 왜 캐나다 갔는지, 말도 안 통하는 거기 가서 이 악물고 왜 살려고 하는지 알지. 벗어나고 싶어서 그랬던 거 아냐?"

 "잘 모르겠는데. 내가 뭐에서 벗어나고 싶었을까?"

 "고모, 고모부하고 말도 안 통하고 집에 가면 뭐 해주는 것도 없는 거 같아서 짜증 나고. 그래서 기를 쓰고 집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거지. 그런 거 아냐? 내가 봤을 땐 그거야. 왜냐면 나도 그랬거든."

 하고 형님이 소맥을 시원하게 한잔 비우더라고요.


 여태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는데 듣고 나서 생각해 보니 ’어…?‘하면서 한동안 잊고 지냈던 그때의 기억들이 떠올랐습니다.


 한국에 있었을 때는 부모님께 경제적으로 지원을 거의 받지 못했거든요. 집 재정상황이 어떤지 뻔히 보이는데 대학비를 달라고 하기 미안해서 방학 때는 공장에서 2교대 아르바이트하면서 학비내고, 용돈 쓰고. 방학되면 다시 공장 들어가서 돈 벌고.


 그땐 방학 때마다 2교대 공장을 다니는 게 '내가 대학을 다니려면 그렇게 당연히 해야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동시에 '부모님께 더 이상 신세 지고 싶지 않다. 그래야 나중에 ‘나한테서 뭔가를 바라지 말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하지.‘라는 생각도 했었던 것 같습니다.


 '군대 전역하고 나서는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겠다.'라고 마음먹었던 것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랬었습니다. 혹시나 부모님께서 제게 잔소리를 하시려 하면 그렇게 이야기하려고요. 혹시나 부모님이 제게 부담이 된다면 그렇게 이야기를 하려고요.


 나쁘고 못된 마음이지만 그땐 그런 생각을 했었던 것이 떠올랐습니다.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띵하더라고요.


 ‘이 형이 내 마음을 어떻게 알았을까?' 그때부터 사촌형님이 좀 달라 보이더라고요. 부모님은 형수 님하고 이야기하신다고 저희 이야기는 못 들으셨던 거 같은데, '그런 이유도 있었구나. 한동안 잊고 지냈었는데, 대학생땐 그렇게 생각했었지.’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뒤로는 혹시나 부모님이 듣고 상처받으실까 봐 개인적 이야기보단 한동안 못 본 친척들 이야기를 했습니다.


 집안 사정상 전 친가나 외가 쪽 친척들을 보는 걸 별로 안 좋아해서 만날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잘 살고 있나 궁금하긴 하더라고요. 잘 지내는 사람도 있고, 잘 못 지내는 사람도 있고. 그렇구나, 볼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다들 잘 지냈으면 좋겠네.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형님하고 형수님은 다음 날 일정이 있어서 사천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해서 자리를 일어났던 것 같네요. 둘 다 술이 너무 취해서 악수하고, 서로 포옹하고. 2차 가자는 거 사천으로 바로 돌아가야 된다고 어머니와 형수님이 뜯어말려서 겨우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자동차 안에서 기절하듯 잠에 빠졌습니다. 차에 내리자마자 찬 바람이 몸속으로 들어왔습니다. 동시에 익숙하고도 어색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좁은 골목길과 가파른 도로. 엉성하게 지어진 집들, 낡아서 벗겨진 페인트와 온갖 광고지와 스티커들. 길거리를 제 집인 양 활보하는 고양이와 개, 벽에 붙을락 말락 딱 붙여서 주차해 놓은 자동차들. 정돈되어 있지 않은 거리, 어색하지만 익숙한 곳. 제가 살았던 동네였습니다.


 "여긴 하나도 안 변했네요. 그대로네."

 "많이 변했지. 이제 저기에 동사무소도 없고, 여기 밑에 슈퍼마켓도 망해서 딴 걸로 바뀌었고."

 "참 이상하네요. 사람들도 그렇고 동네도 그렇고. 4년 전하고 바뀐 게 하나도 없는 것 같네요."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네 가족이 집으로 향했습니다. 늦은 시간에 캐리어를 드르륵 거리면서 끌고 가기 미안해서 캐리어는 트렁크에 두고 집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저희 동네는 고도가 높습니다. '산복도로'라는 곳에 위치하고 있죠. 그래서 군시절 때나, 밴쿠버에 살 때 부산에 물난리가 나면 "야, 너희 집 괜찮은지 연락해야 되는 거 아냐?"라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그런 말 들을 때마다 "우리 집은 산 중턱에 있어서 물난리가 날 수가 없으니까 걱정 안 해도 된다."라고 반 농담으로 이야기했습니다. 나중에 부모님께 들어보니 그 정도로 심각한 폭우가 내리면 대피하라고 전화가 온다고 하더라고요. 산사태가 날 수도 있다고...


 저희 동네는 부산역을 기준으로 30분 정도 등산하는 기분으로 올라와야 되는데, 동네 입구에서 집까지 가려면 계단을 타고 한참 더 올라가야 됩니다. 옛날엔 중국집에서 음식을 시키면 배달원이 '거기까지 배달 못 간다.'라고 해서 철가방을 동네 입구에서 받아서 저나 동생이 집까지 가지고 올라갈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사실상 산에서 사는 거나 거의 마찬가지입니다. 여름엔 산바람이 불어서 시원하지만 겨울엔 살인적인 찬바람이 불어서 보일러를 틀어놔도 방이 데워지질 않지요.


 집에 도착하니 힘들어서 등이 축축하더라고요. 점퍼는 벗어서 한쪽 팔에 들고 올라왔는데도요. 집도 여전했습니다. 좀 서글프기도 하고요. 뭐랄까. '내가 옛날에 이런 데서 살았었지? 밴쿠버 사는 친구들이 이 집 보면 충격받을 거야.'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오래되고 낡은, 그런 집입니다.


 따뜻한 물도 잘 안 나오고 바닥도 울퉁불퉁, 도배지도 거의 다 벗겨지고 천장도 내려앉은 곳이 많죠. 집에 도착해서 짐을 대충 풀고 샤워를 했습니다. 따뜻한 물이 나오다 말다, 나오다 말 다해서 샤워를 하다가 얼어 죽을 뻔했네요.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제 방에 들어갔습니다. 그새 많이 바뀌긴 했지만 책장은 그대로였습니다.


 민음사, 문학동네 세계전집과 제가 좋아했던 작가들의 작품. 제가 마지막으로 한국에 왔을 때 기억하고 있던 그대로였습니다. '학생 때 참 책 읽는 것 좋아했었는데, 그때 내가 좀 그립네. 열정이 넘쳤었는데.'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책장에 꽂힌 책들을 찬찬히 보고 있자니 그 시절에 그런 책들을 읽은 제가 솔직히 기특했습니다. 동시에 '그때 책만 읽지 말고 독후감 같은 걸 짧게라도 좀 남겨놓을걸.' 하는 후회도 들더라고요. 예전엔 책이나 영화를 보고 나면 무슨 내용인지 기억이 다 났는데 요샌 슬슬 기억이 잊히더라고요. 내용도 그렇고, 보고 나서 들었던 생각들도 그렇고.


 후줄근한 방이지만 나름 좋은 책들로 가득 찬 제 책장이 보수동의 '책방 골목'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요샌 옛날처럼 헌책방이 거의 다 없어지고 카페로 바뀌었다고 들었습니다만, 제가 중고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골목에 책방과 헌책방이 가득했거든요.


 그런 감성에 젖어서 단편소설 같은 거 하나 읽고 잘까? 하다가 "피곤할 텐데 빨리 자라."는 아버지의 잔소리에 그냥 자기로 했습니다.


 오랜만이더라고요. 전기장판을 틀어놔서 등은 따뜻한데 얼굴이 시린 우리 집. 또 창문이 덜덜 떨릴 정도로 부는 산바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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