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드윈 Mar 01. 2024

4년 만의 한국방문기 - 5

크리스마스든 석가탄신일이든 성자의 생신에 살생은 금물



 크리스마스이브였습니다. 내일은 뭐 하지, 하며 가족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크리스마스니까 전 아침에 일찍 일어나 성당에 가고 싶었는데 부모님과 동생은 가톨릭 신자가 아니다 보니 “네가 성당에 가는 건 좋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한국에 왔는데 시간을 내 줄순 없겠니?”하는 조심스러운 어머니의 질문에 차마 “그래도 성당 갈래요.”라고 대답하기가 죄송했습니다. 하느님께서 이해해 주실 거라 생각하고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부모님이 계속 낚시 이야기를 꺼내시길래 낚시 한 번 같이 가자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가 한국을 떠나 있는 동안 두 분께서 낚시하는 데 재미를 붙이셨더라고요. '물고기를 많이 잡으려면 해가 뜨기 전에 도착해서 낚싯대를 던져야 된다.'는 부모님에 말에 저와 동생은 일찍 잠을 청하고 부모님은 채비 준비를 하셨네요.


 외국에서 살다 보면 외국인들은 부산을 들어봤다, 가봤다 정도지 부산에 대해 잘 모르니까 그런 걸 잘 안 물어보는데 한국사람을 만나면 "부산 사람들 다 낚시할 줄 알고 회도 뜰 줄 아는 거 아냐?", "바닷가 옆에 사니까 수영도 엄청 잘하겠네?" 이런 질문을 많이 하더라고요.


 그런데 전 낚시 할 줄 모르고 회도 뜰 줄 모르고, 수영도 할 줄 모릅니다. 지금 살고 있는 동네에선 바다가 보이지만 그전에 살고 있던 동네에선 바다를 본 적이 없거든요. 가끔 다대포나 광안리 해수욕장 가면 바다를 볼까, 부산 사람이라고 맨날 바다 보고 사는 건 아니거든요.


 여하튼 부모님께 "채비 준비하시는 걸 도와드릴까요?" 하고 여쭤보니 "그냥 일찍 자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 주는 게 도와주는 거다." 하시길래 바로 잠에 들었습니다. 좋은 아들이 되는 길은 참 멀군요.




다음날 새벽 5시에 일어나 거제도로 향했습니다. 부모님 말로는 넣으면 물고기가 올라오는 포인트가 거제도에 있다고 하더라고요. 운전은 동생이 하고 거제도로 향했습니다.


  부산에서 거제도로 넘어갈 때 해저터널이 있다고 해서 "아, 유리로 돼있어서 바다 밖에 보이는 건가요?"하고 부모님께 여쭤봤다가 상식이 없는 사람 취급받았습니다. 반 농담으로 한 건데 여하튼 가족들이 같이 웃는 이야기가 돼서 기분이 나쁘지 않았네요. 아, 해저터널은 그냥 일반 터널하고 똑같습니다. 콘크리트로 만들어져서 해저터널인지, 그냥 산을 뚫어서 만든 터널인지 구별이 안 가더라고요.


 해저터널을 빠져나와서 한참을 더 달리니 큰 대교와 함께 예쁜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바다를 별로 안 좋아하지만 대교와 함께 보이는 바다 풍경이 굉장히 예쁘더라고요. 해가 슬슬 올라오면서 바다가 빨갛게 물드는 게, '일찍 일어나서 여기 오길 잘했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다와 조그마한 섬, 그리고 컨테이너를 실은 큰 배들이 생각보다 조화롭게 풍경을 꾸며주더라고요.


 바깥 풍경을 보면서 가족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낚시할 장소에 도착했습니다. 탁 트인 모래장이어서 모래장에서 보이는 바다풍경이 너무 예뻤습니다. 이런 맛에 사람들이 바다를 좋아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오랜만에 들었던 것 같네요.


 그런 풍경에 비해 모래장은 굉장히 지저분했습니다. 모래장에 모래보다 쓰레기가 더 많더라고요. 왜 이렇게 지저분하냐고 부모님께 여쭤보니 "올여름에 태풍이 와서 쓰레기들이 엄청 몰려온 데다가 바로 뒤에 민박이 모래장에 벤치도 놓고 파라솔도 놓고 잘 꾸며놨었는데 그게 다 부서지면서 이렇게 지저분해졌다."라고 하시더라고요.


 여하튼 저희가 앉아서 낚시할 자리는 대충 정리해 놓고 설렘반 기대반으로 낚싯대를 바다로 던졌습니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11시까지 낚시를 했는데 정말 입질 하나 없더군요. 처음엔 "오늘은 이상하네, 입질이 별로 없네."하고 부모님이 웃으면서 이야기를 하셨는데, 해가 중천에 뜨는데도 물고기를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언젠지 정확하게 기억이 안 나지만, 예전에 한국에 한 번 휴가를 받아서 왔을 때 부모님이 낚시 한 번 같이 가자고 하셔서 영도에 낚시를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땐 어머니가 고등어 한 두 마리 정도 잡으시고 저와 아버지는 꽝 쳤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번엔 4 사람 전부다 꽝이라니.


 낚시하면서 물고기 제일 늦게 잡는 사람이 통닭 사는 거다, 그다음으로 잡는 사람은 맥주 사는 거고. 하면서 내기도 하자고 했는데 네 명 다 한 마리도 못 잡았으니 내기는 물 건너갔죠.


 낚싯대는 그냥 바다에 던져두고 아버지께


 "어째 입질도 없네요. 크리스마슨데 살생하지 말라고 하느님이 물고기들 다 멀리 보내셨나 봅니다."

 "그런 게 어디있누. 그냥 오늘 안 잡히는 거지. 크리스마스 하고 물고기 잡는 거하고 무슨 상관이고."

 "아버지는 석가탄신일에 낚시 갑니까, 똑같은 거죠." 하니까 할 말이 없으셨는지 피식 웃으시면서

 "그래, 물고기들도 다 성당 가고 교회 갔는가 보다." 하시더라고요.


 물고기도 안 잡히고, 가족들하고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묘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전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이 무척 크지만 동시에 섭섭한 마음도 있었습니다. 어렸을 때 형편이 좋지 않아서 사랑은 많이 받았지만 물질적인 것을 받지는 못했었거든요.


 어렸을 땐 몰랐지만 점점 크기 시작하면서 그런 것들이 많이 섭섭했습니다. 이제야 하는 말이지만 부모님께서 “그렇게 해준 게 없는데도 안 비뚤어지고 말썽 안 부리고 잘 자라준 너희가 고맙다.”는 말씀을 많이 하시지만 그땐 솔직히 원망도 많이 하고 다른 친구들이 부럽기도 했거든요.


 그런데 요 며칠 동안 부모님과 이야기를 많이 하다 보니 섭섭한 마음보단 감사한 마음이 훨씬 더 커졌습니다. 이야기 한참 하시다가 미끼 갈아주러 간다며 낚싯대 걷으러 가는 아버지와 물고기 대신 미역이나 홍합이라도 조금 따가야겠다고 저 멀리 걸어가시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니 갑자기 기분이 이상해졌습니다.


 또 몇 주 뒤에는 다시 밴쿠버로 돌아가야 되는데 부모님을 두고 갈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괜히 약한 모습을 보이면 부모님께서 걱정하시거나 더 힘들어하실 것 같아 괜히 딴생각하면서, 밴쿠버에서 지내면서 재미있었던 이야기를 하면서 울적한 마음을 억지로 눌렀습니다.


 어쨌든 물고기가 한 마리도 안 잡히니 부모님도 재미가 없으셨는지 낚싯대를 다 걷고 목욕탕에나 가자고 하시더라고요. 저와 동생도 동의했습니다. 동생은 "배도 고픈데 그냥 여기서 라면이나 끓여 먹고 가지요." 하길래, 그래 이럴 때 아니면 바닷가에서 언제 라면 끓여 먹어보겠나 싶어서 저도 그러자고 했습니다.


 동생은 이런데서 라면 먹을 땐 김밥이 있어야 된다고 근처에 분식점 있던데 거기서 김밥을 사온다고 자리를 떴습니다. 한 이십분이면 오겠지, 싶어서 저희는 라면을 끓일 준비를 했습니다.


 버너를 놓고 어머니가 따오신 미역하고 홍합을 몇 조각 넣어서 라면을 끓였습니다. 근데 하필 라면이 제가 싫어하는 진라면 순한맛이였습니다. 하, 평소때라면 먹지 않을 라면인데 어쩌겠어, 하면서 아무 말 없이 라면을 끓였습니다. 라면이 거의 다 익어갈 때쯤 동생이 김밥을 들고 왔습니다.


 시장이 만찬이라고, 그렇게 맛있는 라면을 먹어본 게 얼마만인지. 김밥하고 같이 먹는 라면 맛이 꿀맛 이었습니다. 라면 국물을 어떻게 처리하지 걱정했는데 한 방울도 남김없이 싹싹 긁어먹었네요. 배도 부르고, 낚시대를 걷고 철수 준비를 했습니다. 새벽엔 추웠는데 이젠 따뜻하더라구요.




 낚시터에서 나와서 좁은 시골길을 달리다가 아버지께서 근처에 '매미성'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예전에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왔던, 절벽을 성처럼 꾸민 그 곳인데 전 관광지를 가는 걸 별로 안 좋아해서 "다음에 가시죠."했습니다. 나중에 보니까 안 가길 잘했더라구요. 매미성으로 향하는 차들이 얼마나 많은지.


 저런걸 보면 "아, 갔어야됬는데 지금이라도 차 돌리죠."해야되는데 극 I인지라 "어우 자동차들이 저렇게 많이 들어가는데 안 가길 잘했네요."하는 생각이 들었네요.


 고속도로에 차가 올라가고 아버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사는 이야기보단 "지금 저기 바다에 검은 색으로 뭔가 쳐놓은게 보이지? 저게 김 양식장이다.","저기 통통배가 가는 곳 보이지? 저건 보니까 김 양식장이 아니고 굴 양식장이네.", "저기 컨테이너 싣은 큰 배들 보이지? 쟤네가 들어올 때 주차를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따로 있는데..."등등.


 아버지께서 신나셨는지, 지식을 자랑하고 싶어셨는지 몰라도 그런 이야기를 엄청 하시더라구요. 저도 맞장구 쳐드리면서 심심하지 않게 거제도를 빠져나왔습니다. 거제에서 빠져나오고 나서 부산에 진입 후에는 부산 지리에 대해 이야기를 엄청 하시더라구요.


 저희 아버지께서는 운전경력은 그렇게 길지 않으신데 그것에 비해 아시는 것들이 참 많으십니다. 네비가 없어도 길을 기가 막히게 아시고 최소한 부산에선 모르는 동네가 없으시더라구요. "저쪽엔 옛날엔 공장들이 참 많았는데 지금은 아파트가 올라오고....","예전에 우리 살았던 구포 기억나나? 이쪽으로 빠져나가서 좌회전하면 구포 나오고 우회전하면 월촌이 나오는데 거기 다리가..."등등...


 솔직히 별 관심없는 이야기도 있었는데 신기한 이야기도 많이 들어서 집에 도착할 때까지 그런 이야기들을 하면서 신나게 왔습니다.



이전 05화 4년 만의 한국방문기 - 4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