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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드윈 Mar 15. 2024

4년 만의 한국방문기 - 6

You make me feel alright.


  한국에 와서 감명 깊게 들었던 노래가 있습니다. 짙은의 ‘Feel Alright’이라는 노래이지요. 밴쿠버에 있을 때도 가사가 좋아서 자주 들었던 노래인데, 이곳에서 들으니 색다른 느낌이더라구요.


 이날은 딱히 일정이 없어서 느지막이, 밤늦게 서면으로 갔습니다. 요샌 한국에도 혼자 술을 마시러 가도 눈치 안 준다길래 한 번 혼자 시간을 보내보고 싶었거든요.


 혼술을 하고 싶다고 친구에게 물어보니 친구가 한 군데를 추천해줬습니다. 가보고 싶었는데 못 가본 곳이 있다고. 그 이자카야에 갔습니다. 꼬지를 이것저것 시키고 하이볼에 레몬사와를 마셨습니다.


 밴쿠버에서도 혼술을 자주 하는데 밖에서 혼자서 술을 마시는 건 처음이라 술이 알딸딸하게 취하더라구요. 이어폰을 한쪽에만 끼고 노래를 들으면서 꼬지를 먹으면서 술을 마셨습니다.


 그때 그 노래가 듣고 싶더라구요. ‘Feel Alright’. 노래를 틀었습니다. 한쪽 귀로만 들리는 노래가 좀 아쉽더라구요. 노래를 귀로 들을 때도 있지만 몸 전체로 들을 때, 느껴지는 감정이나 감성이 또 다른데.


 대학생 때, 그땐 한참 영화니 소설이니 노래니 그런 것에 빠져있어서 마음 맞는 친구들과 호프집 한 군데를 단골로 만들어서 듣고 싶은 노래를 사장님께 틀어달라고 부탁하고, 그 노래를 들으면서 술을 많이 마셨었거든요.


 어쨌든 이자카야는 조용했고, 한쪽 귀로 들리는 노래도 이날의 저를 감상에 빠지게 하기엔 충분했습니다. 좀 아쉽지만 ‘고단한 하루에 끝에서 있을 때. You make me feel alright. You make me feel alright. 시간의 틈에서 머물 수 있도록.’이라는 가사가 마음속에 들어왔으니까요.


 밴쿠버에서 이 노래를 들을 땐 하느님을 생각했습니다. 고단한 하루에 끝에서 있을 때 당신이 나를 괜찮게, 편안하게 만들어준다고.


 밴쿠버에서도 전 좋은 친구들이 많습니다. 이젠 친구라기보단 가족 같은 놈들도 있고, 제가 오래 사귄 여자친구와 헤어졌다는 말에 여자친구와 술을 마시다가 우버를 타고 한달음에 달려와준 친구도 있고, ‘내가 여기 와서 이렇게 본받을만한 사람을 만났네 ‘라는 생각이 드는 선생이자 나침반 같은 친구도 있습니다.


 전 감정을 표출하는 것을 잘 하지 못하고 좋아하지 않아서 왠만큼 힘든 일이 있어도 내색을 잘하지 않습니다. 우울하고 힘든 이야기는 혼자 삭히는 게 낫다고 생각을 해서요. 그래서 너무 힘든 일이 있어서 무너질까 아슬아슬할 때는 좋은 친구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때 친구들이 너무 고마웠고 ‘인생 그래도 잘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고, 또 감사하고 고맙게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이 노래를 들었을 때 친구들의 모습과, 그 모습 속에 비치는 그분이 떠올랐습니다. 당신의 상처받은 자식들을 돌봐줄 수 없으니 직접 오시는 것을 대신해 좋은 친구들을 제게 보내서 절 위로해 주시는군요, 하면서요.


 하지만 한국에서 듣는, 최소한 이날 들었던 이 노래의 감상은 좀 달랐습니다.


 ‘아, 내가 한동안 가족의 품을 잊고 지냈구나. 나를 진정으로 편안케 만들어주는 건 가족이었구나. 그곳엔 가족이 없었기에, 절대적으로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나의 편이 되어줄 가족이 없었기에 이 노래를 들었을 때 제일 먼저 하느님을 떠올렸구나. 그분의 자비로움과 사랑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건 아니지만, 언제나 그분은 나를 위로해 주시지만. 그 보다 더 직접적이고 커다란 가족의 품이 진정으로 나를 평안케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밴쿠버에서도 절 믿어주는 많은 사람들이 있지요. 하지만 그 사람들이 절 믿어준다 하더라도, 제 부모님이나 동생처럼 진한 핏줄로 이어진 절대적인 믿음을 주지 못하지요. 아니, 주더라 하더라도 제게 그만큼 와닿지도 제가 그렇게 생각하기가 힘들다는 표현이 좀 더 맞을 거 같네요.


 오랜만에 가족과 시간을 보내면서 한동안 잊고 지냈던 가족 안에서의 평안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You make me feel alright.


 다시 돌아간다면 아마 이 만큼의 평온을 못 느끼지 않을까? 하는 걱정과 불안감이 들었습니다. 제가 나름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던 것도 그런 완전한 평온을 느낄 수 없었기에 그분께 의지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이볼 두 잔, 레몬 사와 두 잔을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좀 울적해지기도 했고 취하기도 꽤 취해서 술을 더 마셨다간 집에 가는 길이 피곤해질 것 같았거든요.


 가는 길에 편의점에 잠시 들러 맥주 두 캔을 샀습니다. 혹시나 아버지가 깨어계시면 한 잔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요.


 설렘반, 기대반으로 집에 도착했는데 불은 모두 꺼져 있더라구요. 주무시는 부모님을 깨울까 조심스레 제 방에 들어왔습니다. 옷을 갈아입고 불은 끄고, 책상 스탠드 불만 켜놓은 채 맥주를 혼자 마셨습니다.


 밖에서 먹는 술은 좋고, 이제 감정적으로 제 집이 된 밴쿠버의 제 방에서 혼자 마시는 술은 더 좋죠. 하지만 부모님의 품에서, 그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마시는 술은 뭐랄까, 편안하고 따듯했습니다.


 이제 내 방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한국의 그 방. 생각보다 많이 변하지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낯설었던 그 방이 다시 제 방이라고 느껴졌습니다.


 You make me feel alright.


 아무런 연관도 없는 사람이 만든 노래가, 평소 때 가사가 귀에 잘 들어오지 않고 그냥 듣던 그 노래가, 갑자기 제 삶 속으로 들어와 저를 위로해 주는 마법 같은 순간이 있지요.


 You make me feel alright.


  지금 이 순간만큼은 오늘 제가 느낀 모든 것이 당신의 뜻이 아닌, 부모님의 사랑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그 또한 당신의 또 다른 모습이란 걸 알지만 곤히 잠드신 부모님의 평안하신 얼굴에서, 적어도 이날만큼은 당신의 모습이 읽히지가 않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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