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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드윈 Mar 31. 2024

4년 만의 한국방문기 - 7

비록 어색할지라도 아름다운 한국의 문화, 목욕탕

 

 이날은 부모님께서 목욕탕에 같이 가자고 하시더라고요. 밴쿠버에는 당연히 목욕탕 문화가 없습니다. 예전에 한인들이 많이 사는 동네에 찜질방이 생겼다고 이야기를 들었는데, 아직도 있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밴쿠버엔 한국식 목욕 문화는 없지만 사우나 문화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이 즐기고 저도 기회가 있으면 즐기긴 합니다만... 근데 때를 불리려고 하는 게 아니고 따뜻한 물에 들어가서 몸을 녹이는 약간 그런 느낌이거든요. 물론 맨 몸이 아니라 수영복을 입고 가야 하고요. 


 목욕탕이라... 모르는 사람들하고 옷을 다 벗고 같은 탕에 들어가려니까 영 찝찝했습니다.


 그래도 아버지가 같이 가자고 하시니, 알겠다고 했습니다. 부자가 같이 목욕탕 가서 아들이 아버지 등 밀어드리는 게 보기도 좋고, 또 좋은 문화라고 생각하거든요. 동네 목욕탕에 가려고 하니 이젠 동네 목욕탕은 사람이 없어서 뜨거운 물이 잘 안 나온다고 차를 타고 조금 나가자고 하시더라고요.





 목욕탕인 줄 알았는데 사실 찜질방이더라고요. 장소는 영도, 태종대 근처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엄청나게 크더라고요. 주차장이 무지 넓어서 고속도로 휴게소인 줄 알았습니다. 


 연말이라 그런가 사람들이 꽤 많았습니다. 온탕도 여러 종류가 있고, 오랜만에 한방탕이나 허브탕에 들어가 있으니까 몸이 쫙 풀리는 게 기분이 좋더라고요. 한국에 와서 바쁘게 돌아다니기도 했고 술을 하도 마셔서 그런가 피로가 풀리는 느낌이었습니다.


 모든 부모님들이 그럴 것 같습니다만, 저희 아버지는 목욕탕에서 때 미는 것에 진심이십니다. 저는 때 미는 걸 귀찮아해서 대충 밀고 찬물로 샤워하고 있으면 아버지가 다시 제 몸에 타월을 대시고, "때가 아직 이만큼 나오는데 벌써 나가려고 하냐."면서 핀잔을 주시고 했죠.


 이제 아버지도 연세가 드셔서 그런가 이번엔 그러지는 않으시더라고요. 아버지도 힘드셔서 당신 몸에 때 미는 것도 힘들어하셨습니다. 그 모습이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이번엔 제가 아버지 몸에 때를 밀어드렸습니다. 참, 기분이 묘하더라고요. 어렸을 땐 아버지가 참 커 보였었는데 지금은 작고 연약해 보이는 모습이, 세월이 이렇게 흘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연세가 이렇게 드셨는데도 아직 피부가 참 부드럽네요."

 

 그런 이야기를 하니까 멋 적게 웃으시더라고요. 등을 밀어드리는데, '이 몸으로 가정을 지키고, 또 처자식들 먹여 살리느라 당신하고 싶은 거 못하시면서 사셨겠구나. 힘드셨겠다.' 하는 생각이 드니까 안쓰럽기도 하고 감사하는 마음도 들었습니다.




 처음 밴쿠버에 도착했을 때, 먼저 자리 잡고 사시는 선배님들이 후배들 얼굴 보자고 집에 초대해 주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선배님들 아이들이 어렸습니다. 이제 유치원, 기껏해야 초등학교 저학년정도 되는 아이들이라 선배님들이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아이가 칭얼거리면 가서 달래주고, 아이들을 안고 식사를 하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이 나네요.


 그 모습을 보면서 아버지 생각이 참 많이 났습니다. 전 아버지와 친하게 지낸 편이었습니다. 경상도 남자들이 으레 그렇듯이 아버지와 평소땐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한 달에 두어 번 정도는 집에서 소주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곤 했거든요.


 아이들과 선배님들 보다보니 아버지 생각이 나고, '아마 나도 저 나 이땐 저렇게 아버지를 귀찮게 했었겠지? 아버지는 그런 나를 달래주면서 시간을 보내시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아버지가 참 보고 싶었습니다. 


 가까이 있으면 소중함을 못 느낀다는 말처럼, 저도 캐나다로 넘어와서 지내기 시작하면서 부모님, 특히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감사함, 그리고 동지애를 많이 느꼈습니다. 적은 월급으로 혼자 살면서 돈에 대한 압박감과 미래에 대한 불안을 처음 느껴봤거든요. 


 저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일을 시작하셨고, 지금 제 나이 때 아버지는 초등학교에 곧 입학할 아들이 두 명이나 있었는데 그때 얼마나 힘드셨을까. 술 드시고 담배 피우는 아버지가 싫었던 것 같은데 이제 제가 그때 아버지 나이가 되니 왜 그때 아버지가 그러셨는지,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어렴풋하게나마 알 것 같더라고요.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기분이 울적해져서 예전처럼 투정을 부리면서 집에 가자고 했습니다. 괜히 아버지와 가만히 같이 있다가는 눈물이 날 거 같았거든요. 아버지는 사우나에 들어가서 땀을 좀 빼고 가자고 하시더라고요. 


 목욕탕은 둘째치고 전 사우나는 진짜 싫어합니다. 들어가면 뜨겁기도 뜨겁거니와 숨이 잘 안쉬어지고 갑갑하더라고요. 나이를 먹어도 그건 그대로여서 전 들어가서 몇 초 앉아있다가 바로 나와서 냉탕에서 몸을 좀 식혔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몇 분 정도 앉아계시다가 물 한 잔 드시고, 몸 좀 식히시다가 다시 들어가시고, 그러다가 이젠 피곤하시다고 나가자고 하시더라고요.


 "너희 어머니는 목욕탕 가면 2~3시간은 있다가 오니까 우리는 주변이나 한 번 돌아보자. 옆에 태종대 있다."

 "그럼 태종대나 한 번 쓱 둘러보시죠. 어머니한테는 카톡 남겨놓을게요."


 하고 목욕탕 밖으로 나왔습니다.



                    


 태종대에 나이를 먹고 와본 건 처음이었습니다. 아마 어렸을 때 소풍이나 가족들끼리 와본적이 있겠지만 한국에 살 땐 여행 다니는 걸 별로 안 좋아했거든요. 한바퀴 도는데 1시간이면 된다고 하셔서 한번 슬쩍 돌아보기로 했습니다.


 태종대는 목욕탕에서 별로 멀지 않은 곳에 있었습니다. 태종대 주차장엔 자동차 극장도 있고, UN기념비 탑 같은 것도 있고. 생각보다 잘 꾸며 놓았더라고요. 아버지께서 분명히 미니버스같은게 돌아다닌다고 했는데 가는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그날은 투어버스가 쉬는 날이더라고요. 걸어서 한바퀴 돌면 두 시간 정도 걸리는 데 어떻게 할래? 하시길래 뭐 운동삼아 한 바퀴 돌죠. 하고 걸어보기로 했습니다.


 날씨가 나쁘지 않고 춥지도 않아서 걷기 좋았습니다. 다만 걷기엔 오르막길이 심하더라고요. 오르막길을 오르다보니 숨도 차고 힘이 들어서 입고있던 자켓을 벗고 들고 다녔네요.


 저희 아버지는 등산하시는 걸 좋아하셔서 예전엔 체력이 엄청 좋으셨었는데 이젠 연세도 있으시고, 요샌 바쁘셔서 운동도 못 하시다보니 오르막길을 오를때마다 힘들어하시더라고요. 옛날엔 아버지가 저를 밀어주시거나 막대기로 절 끌어주셨는데 이번엔 제가 아버지를 뒤에서 밀어드렸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중간쯤 돌았을 때 등대 꼭대기에 올라갈 수 있는 곳이 있다고 그러더라고요. 등대 내부를 볼 수 있다고 하셔서 가보자고 했는데 계단을 한참 올라가야 하는 곳이었습니다. 


 계단을 씩씩거리면서 올라가다보니 '등대지기는 체력 테스트를 본다던데 이래서 체력 테스트를 보는구나.'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아니, 체력이 없는 사람도 하루에 몇 번씩 여길 오르다보면 체력이 길어질 수 밖에 없겠는데?'하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습니다.



 막상 올라가니 거울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아주 좋았는데 올라간 수고로움에 비하면...다만 등대 밖으로 보이는 풍경에 대해 설명이 짤막짤막하게 붙어있는 것이 좋더라고요. 저 멀리 오륙도도 보이고, 해운대, 동백섬도 보이고. 아버지께선 신나서 해운대에 대해서, 오륙도에 대해서 설명을 엄청 하셨습니다.




 태종대를 돌면서 느꼈던 생각은 한국사람보다 외국사람이 더 많네? 였습니다. 제가 한국에 있었을 땐 외국인 보는게 쉽지 않았습니다. 집이 부산역 근처여서 그쪽 근처에 가면 여행객들이나 러시아 사람들이 좀 보이긴 했는데 다른 곳에선 외국인들을 본 기억이 거의 없었거든요. 


 요샌 관광지에 가면 한국사람들보다 외국인들이 훨씬 많더라고요. 그게 참 신기했습니다. 한국말보다 영어, 러시아어, 중국말이 더 많이 들리는게 '내가 한국에 있는건지 밴쿠버에 있는건지.'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또 어찌나 길고양이들이 많은지. 정말 한 두마리가 아니라 어림잡아서 30~40마리는 본 것 같았습니다. 중간중간에 고양이들 밥 주시는 분들도 계시던데 그런 분들은 고양이 5~6마리씩 끌고 다니시더라고요. 한국에선 길고양이들이 여러 문제를 많이 일으킨다고 들었는데 고양이도 문제긴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대책없이 고양이를 키우다가 무책임하게 고양이를 버리는 사람들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외국인들이 저마다의 언어로 고양이를 부르고 밥도 주고, 좀 친밀감이 있는 고양이들을 쓰다듬고 하는 모습이 굉장히 이색적이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보니 어머니께서 목욕 끝났다고 전화가 오시고, 때 마침 태종대 입구에 거의 도착해서 어머니를 태우러 다시 목욕탕으로 향했습니다. 태종대도 부산에 오시면 한 번 가볼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만, 혹시나 걸어서 돌아보실 생각이라면 밖에서 꼭 물이나 마실걸 사서 가는 걸 추천합니다. 태종대 안 쪽에 있는 슈퍼와 카페는 물가가 좀 쌔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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