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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드윈 Apr 05. 2024

8화 - 한국에서 만난 반가운 이름, 류이치 사카모토


 아마 영화 소개글에서 몇 번 이야기를 했던 것 같긴 한데 저는 '류이치 사카모토'를 정말 좋아합니다. 류이치 선생님의 음악이 제가 좋아하는 슬로우 템포에 울적한 느낌이 있어서 그건 것도 있지만, 뭐랄까 선생님은 자신의 음악에 '빈 공간'을 항상 남겨두시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 빈 공간에 우리를 초대해서 자신의 노래에 청자의 생각을 넣을 수 있게 배려해 두셨다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선생님의 노래를 정말 좋아합니다. 술 한 잔 마시고 취기가 얼큰하게 올라오면 헤드셋으로 선생님의 노래를 들으면 그것만큼 좋은 해장도 없지요.


 물론 술을 마실 때만 선생님의 노래를 듣는 건 아닙니다. 전 글을 쓰거나 책을 읽을 때 잔잔한 노래를 듣는 걸 좋아해서 그때도 선생님의 노래를 많이 듣습니다.


 그전엔 뉴에이지나 연주곡, 클래식까지 들어봤는데 뭔가 '꽉 차있는 음악'은 머리보단 귀에 집중을 하게 되니까 제가 하고 있는 일을 방해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하지만 선생님의 음악은 왠지 모르게 그 멜로디 속에서 제가 움직이는 느낌이 듭니다. 아마 제가 류이치 선생님의 노래 속에서 느끼는, 설명하기 힘든 '빈 공간' 덕분이겠지요. 그래서 글을 쓰거나 책을 읽을 땐 선생님의 음악을 많이 듣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분의 팬이 돼버렸네요.




 영화 보는 걸 좋아하니까 한국에 온 김에 특이한 영화나 옛날 영화를 영화관에서 보고 싶었습니다. 밴쿠버에도 옛날 영화를 특별상영 해주긴 합니다만, 일이 바쁘고 옛날 영화를 틀어주는 영화관은 제가 사는 곳에서 멀어서 잘 안 가게 되더라고요.


 여하튼 오랜만에 동생과 영화나 보러 갈까 했는데 생각보다 영화가 다양하지 않더라고요. '서울의 봄'아니면 '노량'이었는데 그런 영화를 굳이 시간 내서 보러 가고 싶진 않았습니다.


  예전엔 해운대 쪽에 '영화의 전당'에서는 특별상영으로 신기한 영화나 옛날 명작 영화도 꽤 많이 상영했던 것 같았는데 제 기억의 문제인지 영화 산업이 많이 위축돼서 그런지, 대형 극장이나 영화의 전당이나 상영 중인 영화가 비슷비슷하더라고요. 좀 아쉬웠습니다.



 뭐가 있을까, 하고 스크롤하다가 '류이치 사카모토 OPUS'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뒤도 안 돌아보고 바로 다음날 아침 9시 20분 티켓을 예매했죠.


 아침 일찍 일어나서 남포동으로 향했습니다. 아침엔 한가하더라고요. 영화관에 가서 팝콘 하나, 콜라 큰 거 하나 사고 관으로 입장했습니다. 저희 형제를 포함해서 8~9명 정도 같이 영화를 봤습니다.


 그중에 한 분은 시작하자마자 신발 벗고 주무시고(...), 커플이 있었는데 처음엔 집중해서 보다가 남자분은 중간에 나가서 다시 안 들어오시더라고요. 남은 분들은 가족이었는데 영화 시작하고 30분 정도 되니까 부모님들은 나가서 다시 들어오시지 않았습니다.


 사실 전 '영화'라고 생각해서 인터뷰나 생전 푸티지 영상 같은 것이 나오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아닐까? 했는데 1시간 30분 동안 주야장천 대사도 없이 피아노 연주만 하시는 공연 영상이라는 생각은 못했습니다. 저도 적잖이 당황스럽긴 했는데 끝나고 나니 오히려 '내가 생각했던 다큐멘터리보다 이게 훨씬 좋은데?'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영화관 시설이 좋진 않아서 음향시설이나 환경(노량인지 서울의 봄인지 모르겠는데 그 영화 사운드가 간간히 영화관 안으로 흘러들어와서 쾅쾅하는 소리가 슬쩍슬쩍 났거든요)이 별로였습니다.


 하지만 적당한 시설과 큰 스크린으로 류이치 선생님의 음악을 온전히 감상할 수 있는 기회는 다시 찾아오지 않을 것 같아서 아주아주 만족했습니다. Set list도 제가 좋아하는 노래가 웬만한 건 다 들어가 있어서 그걸로도 대만족이었고요.


 제가 수십 번, 아니 백번가까이 들었을 류이치 선생님의 'Merry Christmas Mr. Lawrence', 'Solitude', 'Opus', 'Aqua'가 나왔을 땐 전율이 돋고 특히 'Solitude'가 나올 땐 거의 황홀한 지경이었습니다.


 워낙 '토니 타키타니'를 재밌게 봤고 거기에 수록된 음악이라 그런가, 영화의 내용이 머릿속에 떠올라 반쯤 홀린 듯이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개인적으로 'Flower'라고 류이치 선생님의 노래 중에서 특이하게 가사가 들어가 있는 곡이 있는데 그 노래가 없는 게 조금 아쉬웠습니다. 가사가 아주 예뻐서 제가 좋아하기도 하지만 멜로디도 정말 아름답거든요.





 영화 크레딧이 올라와도 감정이 아직 남아있어서 자리에 조금 더 앉아있었습니다. 전 주로 영화가 끝나면 바로 자리를 뜨는 편입니다. 아주아주 재미있는 영화를 보고 나면 여운을 더 느끼고 싶어서 앉아있긴 합니다만, 최근에 그런 경험을 언제 했는지 기억이 잘 안 나네요.


 마블 영화는 크레딧 중간이나 끝에 쿠키 영상을 넣어놔서 강제로 앉아있었지만, 대부분 영화관에서 보는 영화들은 제 취향이 아니거든요. 친구들과 같이 보러 가다 보니 꿀꿀하고 지루한, 소위말하는 '아트 영화'를 보러 갈 일이 거의 없어서요.


 예전에 한 영화 사이트에서 "크레딧을 끝까지 보는 것이 진정한 시네필의 자세이자 영화를 찍은 사람들에게 보일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다."라는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그 이야기엔 동의하지 않습니다. 비싼 돈 주고, 시간 내서 영화를 보러 온 것 자체로 예의는 충분히 지켰다고 생각하거든요. 크레딧을 끝까지 보는 것이 시네필의 자세가 아니라 크레딧을 끝까지 보게 만들 정도로 영화를 잘 만드는 것이 영화인들이 관객들에게 보일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잘 만든 영화는 크레딧이 올라가는 도중에 영화관에 불이 들어오고 사람들이 나가고 직원들이 청소를 하러 들어오는 어수선한 상황에서도 관객들을 끝까지 자리를 뜨지 못하게, 크레딧이 막을 내릴 때까지 붙잡아두는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래간만에 이 영화가 그런 힘을 제게 느끼게 해 줬습니다. 그래서, 아주 좋았습니다. 기왕이면 크레딧 끝까지 기다리고 싶었는데 동생이 배고프다고 빨리 나가자길래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영화관을 나가면서 동생한테 "영화가 너무 좋았다. 인터뷰나 작업하실 때 영상 같은 것들이 있는 다큐영환 줄 알았거든. 근데 공연 영상이라서 좀 당황하긴 했는데, 오히려 다큐보다 더 좋은데?"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동생은 류이치 사카모토를 잘 모르다 보니 "솔직하게 좀 지루하긴 했는데 형 옆에서 풀집 중하면서 보는 거 보니까 나도 안 졸고 끝까지 다 봤어. 노래 좋더라." 하면서 밥이나 먹고 집에 가자고 하더라고요. 근처에 유명한 식당이 있다고.




 남포동 안에 '돌고래'라는 곳이었습니다. 순두부찌개하고 낙지볶음을 파는 곳이라던데 가격도 싸고 맛도 좋아서 한국 사람들도 많지만 관광객들도 많이 오는 곳이라더라고요.


 과연 12시 전에 도착했는데도 벌써 라인업이 있었습니다. 2층에 있었는데 계단을 올라서 입구에 서니 벌써 식당 안은 꽉 차있고 라인업이 있더라고요. 많이 기다려야되나 걱정을 조금 했는데 생각보단 회전율이 좋은지 몇 분 기다리니까 저희 차례가 왔습니다.


 메뉴는 순두부, 된장찌개하고 낙지볶음이 있었던 거 같았습니다. 저희는 순두부하나하고 낙지볶음을 시켰습니다. 여기가 맛도 맛이지만 가격이 아주 싼게 특징이라고 들었습니다. 과연 순두부찌개가 단돈 6천 원이고, 낙지볶음이 만원이라니. 요새 한국에서도 만원 이하로 한끼를 때우는게 힘들다고 들었는데 가격이 싸긴 싸더라고요.


 여하튼 음식이 나오고 맛있게 먹었습니다. 기대를 좀 많이 해서 그런가 솔직히 줄 서서 먹을 만한 맛집인가, 하는 생각은 안 들었는데 가격대비 양도 푸짐하고 맛도 좋았습니다.


 남포동에 혹시 올 일이 있으면 한 번 먹어볼 만한 음식점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식당은 짝퉁시장과 구제시장안에 있으니 그쪽을 구경하다가 식당에 들려서 밥 먹기 괜찮더라고요. 물론 자갈치가 바로 근처에 있으니 관광객들에겐 큰 메리트가 있을거란 생각은 안 들었습니다. 부산에 오면 자갈치에 있는 해산물을 먹어야지, 굳이 순두부찌개 먹으면서 배 채우기 좀 아쉽잖아요?


 동생은 아버지께서 소개해줘서 알게 된 식당이라고 하더라고요. 아버지께서 젊었을 때도 있었던 곳이었고 그땐 훨씬 더 싸서 여기서 밥 먹고, 퇴근하면 친구들하고 모여서 소주 한 잔 하던 곳이라고.


 그런 줄 알았으면 아버지 하고 같이 올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께선 저희가 본 영화를 같이 보셨다면 "돈 주고 뭐 이런 지루한 걸 보노. 난 나가있을란다." 하시면서 바로 나가시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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