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먹고 집으로 돌아갈까 했는데 저녁에 약속이 따로 없고, 그냥 들어가긴 아쉬워서 서면으로 향했습니다. 동생은 피곤하다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전 서면에 내렸습니다. 이번 목적지는 서면보단 범내골 역과 가까운, '교보문고'에 가보기로 했습니다.
한국에 있을 땐 책을 참 많이 샀었습니다. 도서관을 자주 이용하기도 했지만 전 책을 읽을 때 좋은 구절이 있으면 밑줄을 긋거나 귀퉁이를 접어두는 버릇이 있어서 도서관에서 책을 읽을 땐 좀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용돈으로 술 사 먹는 것 아니면 책 사는데 많은 돈을 썼었습니다.
대학생일 때 출판사에서 세계문학전집이 많이 나왔을 때여서 책을 하나하나 사 모으는 맛이 좋았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중고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고전문학이나 세계문학전집을 읽으려면 '민음사 세계전집'말곤 선택권이 별로 없었는데 대학생이 되고 나서 '문학동네', '열린 책들' 같은 곳에서도 세계전집을 내기 시작했거든요.
그중에서 제 마음을 사로잡은 출판사는 문학동네였습니다. 민음사보다 훨씬 현대적이고 깔끔한 번역과 아주 예쁜 표지 때문에 민음사에 대한 사랑을 버리고 문학동네와 새로운 사랑을 시작했습니다. 문학동네 세계 전집이 하나씩 제 책장에 정리되는 모습이 너무너무 좋았었습니다.
책을 살 땐 할인폭이 큰 예스 24나 알라딘 같은 사이트를 애용하긴 했지만 가끔 약속이 있는데 시간이 애매하면 서점에서 시간을 때우곤 했거든요. 책을 읽다가 '괜찮은데?' 하는 생각이 들면 책을 사서 나오곤 했었습니다.
교보문고도 딱히 달라진 게 없더라고요. 마지막으로 한국에 왔었을 때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습니다. 하나 신기한 건 아직도 서점에 사람들이 굉장히 많더라고요.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길래 서점에 사람들이 이렇게 많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고 책상 빈자리를 찾아다녔는데 빈자리를 찾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무슨 책을 좀 읽어볼까? 하다가 신형철 님의 작품을 읽어보고 싶더라고요. pc로 신형철 님의 저서를 검색해 보니 '몰락의 에티카'말고는 재고가 다 있었습니다.
전 신형철 님의 팬입니다. 신형철 님의 팬이 된 계기는 당시 문학동네에서 운영하던 팟캐스트 덕분이었죠.
대학생 때는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움직이는 일이 많다 보니 귀가 심심했습니다. 그땐 유튜브가 없어서-아마 있긴 했어도 지금처럼 메이저 하진 않았거든요-들을 거라곤 노래 아니면 라디오 밖에 없었었습니다. 그러다 한 친구에게 팟캐스트에 네가 좋아할 만한 방송이 많으니 한 번 들어보라는 추천을 받았습니다.
팟캐스트를 들어보니 제가 좋아하는 카테고리에 좋은 방송들이 많더라고요. 영화 쪽에선 '딴지영진공', '배드테이스트' 문학 쪽에선 '이동진의 빨간 책방'과 '문학동네 채널 1'을 많이 들었었습니다.
그때 문학동네 채널 1의 진행을 신형철 님이 맡으셨었는데 좋은 책이나 영화를 많이 추천받았고, 그분의 문학이나 영화, 세상을 보는 시선이 너무 좋아서 몇 번씩 반복해서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직도 가끔 듣곤 하고요.
신형철 님의 저서는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만 읽어봤고 나머지는 기회가 없었는데 한국에 온 김에 다 읽어보자!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사기로 한 책은 '인생의 역사', '정확한 사랑의 실험' 그리고 '느낌의 공동체'였습니다.
그중에서 읽어보자고 찍은 건 느낌의 공동체였습니다. 신형철 님께서 추천해 준 시들이 아주 좋아서, 시 평론집 같아 보이는 저 책을 읽다가 괜찮은 시인이 있으면 시집도 한 권 사가려고요.
아니나 다를까, 책이 너무 좋더라고요. 선정한 시들도 너무 좋았고 몇몇 시들은 읽다가 눈물이 핑 돌정도로 감동적이고 좋은 것들이 많았습니다. 류이치 선생의 음악으로 가득 찬 감정이 시와 신형철 님의 문장으로 폭발하듯 쏟아져 나왔었죠.
전 시를 읽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소설이 시보단 호흡이 기니까 한 사건 혹은 인물의 이야기를 즐기기 위해선 시보다는 소설이 더 낫다고 생각을 했거든요.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시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짧다면 짧은 시 한 편에 시인의 감정을 이렇게 담아낼 수 있다니. 시들을 읽으면서 시인이 시 한 줄을 쓰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을까, 시 한 편으로 소설에 버금가는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다는 것이 너무너무 신기했습니다.
단어 하나, 부사 하나, 접속사, 문장부호들로 자신의 감정을 쏟아내는 시인의 능력과 노고가 대단했습니다. 이 한 문장을 쓰려고 얼마나 많이 고심했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더라고요. 거의 앉은자리에서 책 절반을 읽어버렸습니다. 황홀한 시간이었죠.
책은 사랑과 사회를 시인이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시들을 읽으면서 사랑에 대한 관점을 생각해 보게 됐습니다. 신형철 님께서 예전에 하셨던 말이 있습니다. "우리에겐 사랑이란 단어는 너무 쉽게 쓰이다 보니 닳고 닳은 멋없는 말이 되었다."라고요. 그렇게 닳고 닳은 사랑이란 단어를 이렇게 표현을 할 수 있다니.
이렇게 아름답고 솔직한 표현을 위해 시인들이 자신의 시를 얼마나 닦고 또 연마했을까. 대단했습니다. 이선희 님의 '인연'이라는 노래에 이런 가사가 있지요. [이 사랑이 녹슬지 않도록 늘 닦아 비출게요] 그 가사가 문득 떠올랐습니다. 소설이나 에세이 작가들도 완벽한 문장, 그리고 완벽한 서사를 위해 자신의 문장과 글을 수십, 수백 번 뜯어고치겠지만 이날은 시인의 노고가 더 크게 와닿더라고요.
사랑에 대한 시들은 아주아주 좋았지만 여전히 사회를 바라보는 시들은 제게 큰 인상을 주진 못했습니다. 저는 미학주의자 인가 봐요. 최소한 시에서 만큼은 꿀꿀한 사회 이야기보단 인간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싶었습니다.
책을 정신없이 읽다 보니 동생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집에 와서 치킨 시켜서 맥주나 한 잔 하자고요. 책을 더 읽고 싶었지만 흐름도 끊겼고, 또 아껴서 읽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책을 덮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맥주는 제가 사고, 집에 도착하니 치킨은 도착해 있더라고요.
'고려거란전쟁'을 보면서 그냥 가족과 치맥을 즐겼습니다. 전 역사에도 관심이 좀 많아서 대충 드라마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아니까, 가족들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이야기 주제는 다른 쪽으로 넘어가있더라고요.
자연스럽게 사는 이야기, 친척들 이야기를 하다가 안주와 술이 부족해졌습니다. 동생과 함께 근처 편의점에 가서 술과 주전부리를 더 사서 집으로 돌아와 이야기 꽃을 마저 피웠네요.
역시 책이나 영화가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시인이 아무리 좋은 시를 쓰더라도 가족과 보내는 시간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