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드윈 Apr 19. 2024

10화 - 한국에서 꼭 해야 할 여권과 운전면허 갱신


 이날은 여권 갱신을 신청하러 구청에 가기로 한 날이었습니다. 여권 갱신이야 밴쿠버에서도 대사관 가서 처리할 수 있는 일이긴 한데 대사관이 다운타운에 있어서 가기가 귀찮더라고요. 여권 만료가 6개월 정도 남은 시점에 대사관에 전화해서 물어보니,


 "여권 만료 전에 한국에 가시니까, 굳이 여기서 안 하셔도 되고 한국 가서 하시는 게 더 나을 것 같아요. 한국 가서 하시는 게 안전하시고 갱신비도 저렴하고 훨씬 빨리 여권 받으실 수 있을 거예요."라고 하시더라고요.


 전 여권 만료가 애매하게 겹치면 출국이 안 되는 줄 알았는데 본국으로 돌아가는 건 별 상관없는 것 같았습니다.


 가족들과 아침밥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여권 갱신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여권 갱신용 사진도 찍어야 돼서 미용실에 들렀다 갈까, 했는데 동생이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 되는 거 아니니까 그냥 가서 찍어. 나중에 서울 올라오면 그때 나랑 같이 머리 자르러 가자. 거기 머리 잘 잘라줌."

 

 하길래 '그렇지, 여권사진 뭐 누가 본다고...' 하는 생각이 들어 그냥 동네 사진관 가서 대충 사진을 찍기로 했습니다.


 여권 말고도 갱신해야 할 것이 하나 더 있었는데 한국 운전 면허증이었습니다. 원래 작년에 운전면허를 갱신했어야 됐는데 밴쿠버에 있다 보니 그걸 못했습니다.


 외국에 있다는 서류를 제출하면 몇 년 더 미뤄준다고 이야기를 들었는데 동생은 바쁘고 부모님은 못 하겠다고 하시니, '뭐... 한국에서 운전할 일 없을 거 같은데 안 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제가 알아서 할게요."하고 그냥 넘겼습니다. 그러다 면허증에 대한 생각을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여권 갱신용 사진 찍으러 밥 먹고나서 갈 거라고 하니까 아버지께서,


 "니 운전면허증 진짜 갱신 안 할 거가? 그거 오늘까지 안 하면 니 면허 아예 취소된다."라고 엄청 무관심하게 말씀하시더라고요. 순간 좀 고민을 했습니다.


 '한국에서 운전할 일 없을 거 같긴 한데... 그래도 사람 일 어떻게 되는지 모르는 건데... 그냥 갱신할까?'


 한국에 놀러 올 때마다 아버지께서 보험 넣어줄 테니까 운전하고 다니라고 항상 말씀하시는데 한국에서, 특히 부산에서 운전할 자신이 없더라고요. 부산 운전자들이 운전을 험하게 하는 건 둘째치고 길이 너무 복잡하고 주차하기가 너무 힘들어서요. 그래서 한국에서 운전할 일은 딱히 없을 거 같긴 한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면허증도 갱신하기로 했습니다.


 아버지께서 "경찰서에서도 갱신할 수 있으니까 여권 갱신하러 구청 갔다가 경찰서 가서 면허도 갱신하고 와라." 하시던데 적성검사를 경찰서에서는 못하니까 병원 가서 적성검사를 받고, 그 서류를 가지고 경찰서에 가면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어후, 병원에 갔다가 경찰서 갔다가 귀찮을 것 같아서 그냥 운전면허장에 가서 하기로 했습니다.




 먼저 집 근처에 있는 사진관 예약을 하고 여권, 운전면허 갱신용 사진을 찍었습니다. 머리 정리는 집에서 좀 하고 갔는데 그날따라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서 사진관 도착하니까 머리가 개판이 되었더라고요. 화장실 가서 거울보고 왁스로 머리를 다시 잡았는데 도저히 안 될 것 같아서 그냥 찍기로 했습니다.


 옷도 대충 입고 가서 먼지와 보풀이 엉망이더라고요. '아 모르겠다, 여권 사진 누가 본다고. 그냥 찍자.'하고 사진을 찍었는데 영 마음에 안 들었습니다. 사진을 보자마자 '하, 그냥 미용실 갔다가 올 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여하튼 사진을 받고 구청으로 향했습니다. 구청도 근처라서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더라고요. 구청에 도착해서 여권 갱신하러 왔는데 어디로 가야 하냐고 직원분께 여쭤보니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지하 1층으로 내려가서 여권 갱신 서류 작성하고 창구에 드리니, 일주일 내로 여권이 나올 텐데 혹시 그전에 준비가 되면 문자로 연락이 가니까 그때 오면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햐, 정말 한국 이런 건 좋습니다. 캐나다에서 여권갱신 같은 건 안 해봤지만 지나가다가 'Passport service' 건물 앞에 라인업 보면 기겁하거든요. 줄 기다리는 것도 일이고, 새 여권 받는 것도 일이고.


 밴쿠버에서 영주권 카드 갱신을 한 번 했었는데 필요한 서류 다 보내고 새 카드 받는 데까지 10개월 가까이 기다려야 했거든요. 그때가 코비드 기간이어서 이해는 하지만, 평상시도 3~4개월 가까이 걸린다고 하니...


 여권이나 영주권카드 같은 것 말고 운전면허증 재발급받는데도 한 달 이상 걸립니다. 술 먹고 지갑 잃어버린 적이 많아서(...) 운전면허증은 2~3번 정도 재발급을 받았었거든요.


 새 면허증이 오기 전까지 노란색 임시면허증 종이를 주는데, 거기엔 제 사진이 없어서 사진이 찍혀있는 ID를 들고 다녀야 합니다. 제 경우엔 한 달 동안 임시 면허증과 여권을 맨날 들고 다녔고, 영주권 받고 난 뒤엔 영주권 카드를 들고 다녔던 기억이 나네요.


 또 한가지 신기한게 밴쿠버에선 집 주소가 바뀌면 운전면허증을 통째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주소 변경 신청을 하면 'ICBC'에서 바뀐 주소가 적혀있는 스티커를 보내줍니다. 그 스티커를 옛날 주소 위에 붙여서 쓰는 방식이죠.  




 여권 갱신 신청을 마치고 버스를 타고 남구에 있는 면허장으로 향했습니다. 먼저 적성검사를 받았습니다. 적성검사가 뭐지? 싶어서 기다렸는데 색맹 테스트하고 무릎 굽혀보라고 하고 손가락 접어보라고 하고, 시력 테스트하고 끝이더라고요? 이런 게 왜 필요한가 싶긴 했는데... 뭐 어쨌든 적성검사지를 받아서 남부 면허장 안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사람들이 바글바글 하더라고요. 번호표를 뽑으래서 뽑았는데 맙소사, 제 앞에 330명... 제 번호가 900번 대였으니까 못해도 1200명이 있었다는 이야기... 그때 아뿔싸 하더라고요.


 "아 집에서 인터넷으로 예약하고 올 걸."


 인터넷 예약도 된다는 광고판을 보자마자 후회가 물 밀듯이 밀려왔습니다. 330명을 어느 세월에 기다리나, 인터넷으로 예약을 했으면 이렇게 일찍 안 오고 시간 맞춰서 올 수 있었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전 한국에 제 명의로 된 핸드폰과 통장이 없어서 인터넷 예약을 못하거든요. 공인인증서도 없고, 제 명의로 된 통장은 이미 예전에 다 닫아놨고 핸드폰도 밴쿠버에서 쓰던 걸 가지고 와서 ESIM을 사서 썼으니 인터넷이나 모바일 예약을 아예 못합니다. 정말 불편하더라고요.


 도용문제 때문에 그런 것이란 걸 잘 알고 이해하지만, 밴쿠버는 이거 하나는 편합니다. 인증할 필요 없이 회원가입하고 크레디트 카드 정보 입력하면 뭐든 할 수 있거든요. 물론, 다 나름대로의 장단점이 있겠지만요.


 여하튼 예약을 하고 싶어도 못했겠지만, 그래도 대기인원 체크라도 해볼걸. 하는 후회가 좀 들었습니다.


 그래도 더 늦게 왔으면 오늘 업무 못 봤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 뭐 시간은 많으니까 점심 먹을 겸 밖으로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700번대 사람들을 부르더라고요?




 아무래도 기다리는 사람들이 워낙 많다 보니 어르신분들 전용 창구에서 뒷 번호를 당겨와서 일을 처리해 주시더군요. 밥 먹고 근처 쓱 돌아보고 돌아와도 시간이 남겠다 싶었는데 그걸 보니 안 되겠더라고요. 일단 배는 고프니 밖으로 나왔습니다.


 점심을 오래 먹기가 좀 애매해서 근처 편의점에서 컵라면에 삼각김밥 하나 먹기로 했습니다. 혹시나 제가 나와있을 때 제 번호대를 부르면 곤란하니까 후딱 먹고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제가 없는 동안 컵라면이나 삼각김밥도 종류가 많이 늘어났더라고요. 그래도 전 대학생 때 많이 먹었던 공화춘에 참치마요를 샀습니다. 이젠 돈도 잘 버니까, 핫바도 하나 사고 음료수도 하나 사서 플렉스를 즐겼습니다. 예전보다 가격은 비싸졌는데 양도 줄었더라고요...


 밥을 후딱 먹고 커피 하나 사서 들어왔는데도 아직 번호는 줄 생각을 안 하더군요. 자리에 앉아서 유튜브 보고 E북 읽고, 자다가 결국 거의 3시간 가까이를 기다려서 면허를 갱신했습니다.


 작년이 데드라인이었는데 갱신을 못했으니, 5만 원이었나 10만 원이었나. 그 정도 벌금도 함께요. 벌금이야 당연히 내야 하는 거니 불만은 없었습니다만, 직원분 대응에 불만이 좀 생기더라고요.


 "저 죄송한데, 제가 외국에 살고 있어서 다음번 갱신 때 또 이런 일이 있으면 곤란할 것 같은데 혹시 면허를 잠시 정지시켜놓을 수는 없을까요?"

 "그런거는 종이 밑에 관련 연락처들 적혀있으니까 그쪽으로 연락해 보세요."


 하고 굉장히 퉁명스럽게 대답을 하시더라고요. 뭐, 바쁜 것 알고 있고 정신없으신 것도 이해하지만 '이 정도는 설명해 주실 수 있는 거 아닌가? 내가 기분 나쁜 투로 이야기한 것도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나빴습니다.


 면허를 정지시켜놓는 게 되는지 안되는지 모르시진 않을 것 같은데 안된다면 안된다, 아니면 이런 방법이 있다고 기분 좋게 대답해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구청에선 직원분들이 친절하셔서 기분이 좋았는데, 면허장에선 반대여서 좀 실망했습니다. 여하튼 갱신 신청하고 10분 만에 면허증 나오니까 그건 좀 신기하긴 하더라고요.

이전 11화 9화 - 시와 영화를 통해 사랑과 세상을 바라보는 법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