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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드윈 May 17. 2024

12화 - 새해가 밝았습니다


 드디어 새해가 밝았습니다. 해가 7시 반쯤 뜬다고 하더라고요.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밥도 먹고 나가려고 했는데, 늦게 일어난 것도 그렇지만 가족 4명이 준비하는 시간이 생각보다 길어져서 아침은 거르고 허겁지겁 집을 나섰습니다. 


 운전은 동생이 하기로 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부산 아저씨 답지 않게 운전을 굉장히 안전하게 천천히, 여유롭게 하셔서 동생이 운전을 하겠다고 하더라고요. 아버지가 운전하면 해 다 뜨고 나서 도착할 거라면서.


 어쨌든 저희 가족이 일출을 보기로 한 곳은 오륙도였습니다. 저는 사실, 오륙도가 어딘지 잘 몰랐습니다. 군대 2년을 제외하곤 부산에서 22년을 살았는데, 다니는 곳만 알지 그런 관광지는 잘 모르거든요. 다들 그렇지 않나요? 정작 자기가 살고 있는 곳은 가는 곳만 가지 관광지 같은 곳은 이상하게 잘 안 가게 되는 그런...


 "오륙도가 어디 있는 뎁니까."하고 아버지께 여쭤보니 

 "넌 부산사람이면서 오륙도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냐."면서 웃으면서 핀잔주시더라고요. 


 어머니 말씀으론 제가 어렸을 때 많이 갔었다고, 지금은 오륙도도 예쁘게 잘 꾸며놔서 가면 예쁠 거라고 기대하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오륙도의 뜻은 어쩔 땐 섬이 5개로 보이고 어쩔 땐 6개로 보인다고 해서 오륙도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오륙도를 가본 기억은 없지만 들은 적은 꽤 많습니다. 예전 오륙도에는 나병환자, 한센병 환자들이 살았던 '용호농장'이 있었거든요.


 아버지께 나병환자촌이 아직도 있냐고 여쭤보니 "옛날에야 거기 나병환자들이 많이 살아서 돼지 같은 거 키우고 그랬는데 재개발된 지 오래돼서 지금은 sk 아파트 단지가 올라가 있지. 거기 아파트 엄청 비싸다."라고 하시덥니다.


 뭔가 씁쓸하더라고요. 개발사에서 나병 환자들에게 땅값을 얼마나 쳐줬는지, 얼마나 보상을 해줬는진 모르지만 후하게 쳐 주진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설령 그 값을 섭섭지 않게 쳐줬다 하더라도 그곳에서 떠나야 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그리고 그곳을 떠난 사람들이 다시 돌아와서 고층 아파트 단지가 올라선 모습을 보았을 때 어떤 마음이 들었을지.


 저희 동네만 해도 재개발 붐이 들어서 제가 다녔던 중고등학교 등하굣길은 싹 다 바뀌어 있었습니다. 문방구가 있었고 만화책방이 있었고, 비디오 대여점이 있었고 분식집이 있었던 거리는 온 데 간 데 없어지고 아파트 단지와 잘 정돈된 식당과 편의점이 들어서 있었으니까요.


 저도 그 모습을 처음 봤을 때 추억 하나가 싹 사라져 버린 느낌이었는데, 타의든 자의든 삶의 터전을 떠나야만 했던 그분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영 편치 않았습니다. 사회의 따가운 시선을 피해 자신들끼리 모여 살았던 환자들이 다시 그곳을 떠나야 했던, 그리고 그곳은 부산에서 비싼 아파트 중 하나가 되었다는 아이러니.





 그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대연동까지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차가 엄청 밀리더라고요. 시간은 흘러가는데 차가 움직일 생각을 안 했습니다. 어느 정도 밀릴 거라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밀릴 줄이야. 꾸역꾸역 운전을 해서 오륙도로 향했지만 결국 오륙도에 들어가진 못하겠더라고요. 


 아버지께서 "어차피 해뜨기 전에 오륙도로 들어가지도 못할 거고 가더라도 주차할 자리가 없을 거니까 그냥 여기서 보자, 언덕이라서 해도 잘 보이겠다. 차 세워라." 하셔서 동생이 갓길에 주차를 했습니다.


 아직 6시 반, 해가 뜨려면 한 시간은 더 기다려야 되는데 이미 저희가 있는 언덕길에도 사람들이 빼곡했습니다. 


 이젠 저희가 서있는 언덕길에도 주차할 자리도 없고, 저 멀리 보이는 방파제엔 사람들이 빼곡하더라고요. 전날부터 와서 밤을 새웠는지 곳곳에 텐트도 보이고, 시간 죽이느라 낚시를 하고 있는 사람들도 보이고.


 갓길에 서서 커피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더 나눴습니다. 생각보다 그날 날씨가 별로 안 좋아서 하늘에 구름이 조금 껴 있었습니다. 날씨가 안 좋아서 해 못 보면 어떻게 하냐는 어머니의 걱정에 동생은 "가족끼리 새해 첫 일출 보러 온 거면 못 보고 가도 좋지요."하고 말하고, "너희 엄마는 옛날부터 참 쓸데없는 걱정이 많지, 그재?"하면서 아버지께서는 웃으시더라고요.


 저도 동생과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동생 말대로 가족끼리 이렇게 일출 보러 온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거든요. 해를 못 보더라도 어떻습니까, 가족끼리 이렇게 나와서 뭔가를 하고 있다는 것이 더 중요하니까요. 


 결과가 안 좋아도 과정이 아름다웠다면 그걸로도 전 만족하거든요. 인생은 스포츠가 아니잖아요? 승패가 달려있지 않으니 어떤 결과든 과정이든 각자 생각하기 나름이니까요.


 아버지가 XX로고가 그려진 아파트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말씀하시더라고요.


  "저기가 네가 말한 나병환자들 살았던 곳이다. 보이지, 지금은 XX 아파트 올라와있는 거. 저거 엄청 비싸지. 근데 해가 저쪽에서 뜨는 거라 우리는 바다에서 올라오는 해는 못 보겠네. 옛날에는 저 아파트가 없어서 여기서도 일출 보기가 좋았는데 이젠 저게 가려서 파이다(별로라는 뜻의 경상도 사투리)."

 "그러게요, 해가 저 쪽에서 올라오면 우리는 해 다 뜨고 나서 보겠네요. 저기 사는 사람들은 좋겠네요, 꼭두새벽에 일어나서 운전해서 어디 안 가도 창 밖으로 일출 볼 수 있어서."

 "좋긴 뭐가 좋아. 해가 그렇게 비치면 더워서 살겠나."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해가 뜨길 기다렸습니다. 7시쯤 되자 바다와 하늘이 슬슬 붉게 물들어 가더라고요. 이제 곧 해가 뜨겠구나, 했지만 구름도 구름이거니와 아파트에 가려져서 해가 잘 안 보였습니다. 거의 8시가 다되니까 아파트의 외벽에서 해가 슬슬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전 새해 첫 일출을 보는 것에 별 감흥이 없고, 게으르기도 하고, 새해 전 날엔 항상 친구들과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논다고 이런 일출을 본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이날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일출을 본다는 것보다, 가족들과 뭔가를 했다는 것이 더 좋았습니다. 새해를 본 것보다 해를 기다리면서 가족들과 있었던 시간이 제게 더 소중하고 크게 느껴졌거든요.


 어쨌든 새해 사진을 찍으면서 기도도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도로가 더 밀리기 전에 빨리 집으로 돌아가자고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빨리 길을 떴는데도 도로가 많이 막혀서 "이럴 거면 차라리 밥 먹고 들어갑시다. 근처에 돼지국밥 유명한데 있어요." 하면서 동생이 차를 돌리더라고요.


 돼지국밥 집도 사람들이 많았고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생각보다 줄이 빨리 줄어들었습니다. 국밥을 하나씩 시키고, 수육도 하나 시키고 저와 아버지는 소주를 한잔 마셨습니다.


 "아파트 그게 해를 가려가지고 분위기가 멋있게 안 났네."


 하면서 아버지께서 아쉬워하시더라고요.   


 저는 아파트가 지어지고, 그 아파트를 짓기 위해 고향을 떠나는 사람들이나 망가지는 자연환경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냉혹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일어날 수밖에 없는 비극이지요.


 하지만 그들의 슬픔에 대해 '당연히 희생해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일어날 수밖에 없는 비극임을 알지만 그 비극을 당연하다고 넘기는 것이 아닌, 그 비극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고 그 사람들의 입장에서 생각을 한 번 해보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누군가 그랬습니다. '영어단어를 외우고 수학 문제를 푸는 것처럼 타인의 슬픔에 대해 공감하는 것도 공부가 필요하다.' 고. 


 가족과 함께 새해를 보고 난 뒤에 국밥을 먹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파트가 그 자리에 세워진 것도, 아파트가 해를 가리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우리는 그 아파트가 세워진 과정이나 세워지고 난 이후의 결과에 대해서도 좀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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