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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드윈 May 10. 2024

11화 - 고등학교 친구보단 대학친구!



 면허 갱신을 마치고 서면으로 향했습니다. 시간이 엄청 여유로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시간을 많이 잡아먹어서 급하게 움직여야 할 것 같더라고요. 서면에서 오랜만에 대학 친구들을 만나기로 했습니다. 거의 4년 만에 보는 친구들이네요.


 4년 동안 많은 일이 있었어서, 한국에 사는 친구들은 대부분 결혼을 했습니다. 이날 만나기로 한 친구 둘도 결혼을 그새 했죠. 워낙 친한 친구들이어서 결혼식 참석은 못했지만 따로 축의금은 보내줬었습니다.


 전 오랜만에 한국에 와서 친구들 보는 거라 늦게까지 술 마시면서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친구들은 다 유부남들이다 보니 제수씨들 눈치가 좀 보이더라고요. 평일 일 마치고 집에 바로 안 들어오고 술 먹는 걸 싫어한다고. 그래서 걱정을 좀 했는데, 저 만나러 간다고 하니까 너무 늦게 들어오지 말고, 술 많이 먹지 말고 잘 다녀오고. 그렇게 이야기를 했다길래 좀 안심이 됐습니다.


 솔직히 4년 만에 한국 와서 친구들 보는 거고 30만 원 축의금도 냈는데... 하루 정도는 술 마실 수 있잖아요,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10시 전에 친구들 보내야겠다. 하고 생각은 했습니다.

 



 친구들은 원래 약속시간보다 좀 늦게 도착한다고 해서 '올리브 영'에 좀 들렸습니다. 이건 좀 자랑해도 될 것 같은데 밴쿠버에 있는 제 외국친구들, 특히 아시아 쪽 여자들은 한국 화장품이면 환장을 합니다. 밴쿠버에서 굳이 비싼 배송료에 제값보다 비싼 돈 줘가면서 올리브 영에서 화장품 주문하는 사람들도 꽤 있더라고요.


 이번엔 화장품 하고 스낵을 좀 사 와 달라고 부탁을 받아서 그걸 사러 올리브 영에 갔습니다. 스낵은 말린 복숭아하고 말린 베이글 스낵 같은 거였는데 저도 먹어볼 겸 각각 6 봉지씩 샀습니다. 화장품도 이것저것 주워 담다 보니 계산금액이 10만 원이 훌쩍 넘어가더라고요.



 계산을 하면서 직원분께 "이 스낵들 인기가 많나요?"하고 여쭤보니 "네, 그런데 외국분들이 더 좋아하세요. 특히 중국분들 오시면 엄청 사가시더라고요."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속으로 '아, 한국말 안 했으면 나도 중국사람인 줄 알았겠네...'하고 생각했습니다. 올리브영에서 과자를 12 봉지나 사는 한국인이... 어디 있겠어요.




 올리브 영에서 나오니까 친구들도 서면에 도착했다고 하더라고요. 한국에 마지막으로 왔었던 게 4년 전인데 그땐 제가 짧게 오기도 했고 시간이 없어서 친구들을 못 봤었습니다. 그래서 거의 6년 만에 보는 친구들이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더라고요.


 서로 보자마자 "야, 진짜 하나도 안 변했네?"하고 웃었습니다.


 하나도 변한 게 없다고 느껴서 그런지 얼마 전까지 만났던 사이처럼 편안하더라고요. 바로 치킨을 먹으러 갔습니다. 전 치킨을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오랜만에 왔는데 회 먹으러 가자, 고기 먹으러 가자"하는거 "회는 싫고 고기는 하도 먹어서 괜찮다고. 옛날 느낌 나게 치킨이나 먹자." 하고 치맥을 달렸습니다.


 치킨을 먹으면서 사는 이야기 하다가 일 이야기로 넘어갔습니다. 아무래도 저희가 하는 일이 기술직이다 보니 일 이야기를 하는 게 재밌기도 하고 굉장히 유익하거든요. 특히 한국은 캐나다보다 치열하고 경쟁적이다 보니 아직 캐나다에 넘어오지 않은 테크닉이나 기계들이 많아서 그런 이야기 듣는 게 좋았습니다.


 사실 예전엔 이런 이야기하는 게 싫었었습니다. 만날 때마다 돈돈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싫고, '돈이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들도 있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거든요.


 근데 막상 살아보니 돈이 행복을 가지고 오진 않지만, 최소한의 행복과 30대에 접어든 남자의 의무랄까요 그런 걸 위해선 돈이 있어야 되겠더라고요.


  한국보다야 삶이 여유롭지만 이민 1세대가 연고도 없는 곳에 와서 맨땅에 헤딩하는데 한국에서 생각한 것처럼 여유롭게 살면 이도저도 아니게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요샌 아주 열심히 일하고 돈을 더 벌 궁리를 합니다. 


 이제 제 입에서 돈 이야기가 나오고, 사업 이야기도 나오고 주식 이야기도 나오는 것 보면 옛날의 제가 절 본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 그런 마음이 들기도 하네요.


 대학생땐 꿈을 찾아서 살겠다고, 만약에 그렇게 살고 있지 않다면 나 자신이 너무 비참하고 실망할 것 같다고 그렇게 말하고 다녔는데 지금은 꿈을 찾아 살겠다는 결심이 많이 옅어진 건 사실입니다. 


 아마 대학생이었던 제가 지금의 저를 본다면 "배신자 새끼."라며 혀를 끌끌 차겠지만 '아직도 꿈을 버리진 않았으니까, 내가 할 수 있을 만큼은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으니까 넓은 마음으로 용서해 달라'라고 이야기를 하고 싶네요.


 그래서 요즈음 드는 생각이 사람은 변할 수 있다, 그런 생각이 드네요. 고쳐 쓰는 건 아니더라도 스스로가 변해야겠다고 다짐한다면 언제든 변할 수 있다. 그게 인간의 매력이자 또 삶의 재미가 아닐까요.




 전 고등학교 친구들보다 대학 친구들하고 연락을 더 많이 하는 편입니다. 고등학교 친구들은 거의 연락이 끊겼고, 딱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덜 들더라고요. 


 어렸을 땐 몰라도 이쯤 나이가 되니 이제 집이니 차니, 결혼이니, 집이니 하는 이야기가 주로 술자리에서 나오는데 전 한국의 그런 문화를 거의 모르거든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흥미가 덜 가고, 친구들은 캐나다는 어떻냐고 물어보면 또 그걸 이야기하는 게 한두 번은 괜찮은데 볼 때마다 그런 이야기를 하려니 피곤하더라고요.


 대화주제가 안 맞으니까 이상하게 고등학교 친구들하곤 멀어지고 대학 친구들과는 아직도 살갑게 연락하곤 합니다. 대학친구들은 아무래도 같은 일을 하는 친구들이다 보니 이야기 주제가 더 잘 맞죠. 물론 일 이야기하면 조금 꿀꿀하긴 하지만...


 그래서 고등학생땐 선생님들께서 항상 하시는 말씀이 "고등학교 친구는 평생 친구다. 군대 빼고는 남하고 이렇게 오랫동안 시간을 보내는 게 쉽지 않으니까 싸우지 말고 친하게들 지내라."였던 거 같은데 저에게 맞는 이야기는 아니네요.


 전공 특성상 대학 친구들하고도 고등학생 때처럼은 아니지만 실습 과제 때문에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거든요. 실습하다가 실습실 문 닫을 때가 되면 몰래 빈 강의실 들어가서 실습 마저 하다가 치킨, 맥주 시켜서 강의실에서 몰래 먹고, 술 취해서 실습 정리하고 그냥 학교 앞 술집 가서 술 마시고.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사고도 많이 치고 다치기도 많이 다치고 잃어버린 것도 많았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그런 것도 다 추억이 돼있더라고요. 


"야, 그때 xx 술 엄청 먹고 화장실에서 토하다가 변기가 막혀가지고 아주머니한테 엄청 혼났잖아.", 

"넌 추석 전날에 술 먹고 지하철 막차 타러 간다고 뛰어가다가 발목 접질려서 다음날 깁스 했었잖아.", 

"과제하다가 캐스팅 실수해서 한 달 동안 한 거 날려먹고 점심때 소주 까고 수업 들어갔다가 교수님한테 "술 먹었으면 앞자리 앉지 말고 뒤에 가서 앉던가 나가라."라는 소리도 들었잖아."


 그런 이야기하면서 늦게까지 술을 마시며 놀았습니다. 3차까지 술을 마셨고, 유부남들은 빨리 집에 들어가고 다음날 일도 해야 되니까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졌습니다. 다음에 한국에 들어오면 또 연락 주고, 다음엔 더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친구들이 해준 그 말이 참 고맙더라고요.


 '또 언제 내가 한국에 올지 모르지만 그래도 이렇게 기다려주는 친구들이 있다는 게 참 행복하다.', '그래도 잘 살고 있었구나.' 그런 생각이 드는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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