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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말킴 Nov 21. 2019

베를린, 서울, 그리고 집

내가 살 집은 어디에

    여행도 어느덧 막바지를 향해가는 듯합니다. 처음 6개월 여행을 시작할 때만 해도 여행 이후의 삶을 생각하면 아득한 솜사탕 같았는데, 지금은 딴딴한 돌멩이가 되어 마음 한편에 자리 잡았네요. 바닥이 보이는 생활비 잔고, 취업 걱정 등을 생각하면 조금씩 압박감이 느껴집니다.


    지금은 베를린에 있습니다. 독일의 수도이자 평화와 자유의 상징, 디지털 노마드들의 유럽 성지라는 도시. 무엇보다도 물가가 엄청 저렴해서 한 달에 100만 원도 안 되는 돈으로도 여유 있게 살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겨울이 다가오는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베를린에 왔습니다. 비행기표를 먼저 예매하고 에어비앤비를 보면서 생각보다 월세가 비싸 의아한 마음도 있었지만 가면 다 방법이 있겠지 하는 막연한 마음으로 베를린에 왔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 걸. 최근 5년 동안 유럽에서 가장 집 값이 많이 오른 곳이 베를린이었습니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월세 30만 원이면 충분하던 이 곳이 지금은 집이 모자라서 거의 취업하듯 면접까지 봐야 한다는 소리가 들립니다.

힘들게 장만한 작은 원룸


    집 값이 폭등한 원인은 다양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오르는 집 값의 추세를 따라가는 건 당연하고, 계속 베를린으로 유입되는 인구, 정부에서 민간으로 넘어간 임대주택 사업, 에어비앤비 등 집 값을 오르게 하는 요인은 너무나 많습니다. 그래서 최근 베를린 정부는 집 값을 잡기 위해 파격적인 법안을 입법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헌법재판소에 회부되어 위헌 여부를 다투고 있어 실제로 시행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요.

(참고 :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europe/915620.html )


이 한 몸 누일 자리는 어디에.........?

    이 여행이 끝나면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압박감을 주는 것은 당연히 집 걱정입니다. '순간의 아파트가 평생을 좌우했다'는 한겨레의 기사를 읽었습니다.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에서 2030 세대의 이야기를 담은 기사였습니다. 누구는 아파트를 어찌어찌 장만해 넉넉한 자산을 가지게 되었고, 누구는 집을 사자고 말할 수 조차 없다는 이야기. 오늘 아침 이 기사를 아내와 함께 읽으면서 걱정은 더 커져만 갑니다.

(참고: http://www.hani.co.kr/arti/economy/property/916727.html )


    

    여행하는 동안 계속 생각했던 것이 '가장 나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가?'에 관한 것이었는데, 마치 집 문제는 그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 순간의 선택으로 인해 몇 년 후에는 자산가가 될지 근로노동자가 될지 결정된다고 하니, 어떻게 해서든 좋은 선택을 위해서 노력해야겠지만 또 그게 운이라고 하니 막막하기만 한 상황. 게다가 지금 모아놓은 돈도 많지 않은지라 집을 사기 위해서는 적어도 10년은 영혼을 갈아 넣어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하루를 슬기롭게 뉴스를 읽으며 시작한 것 치고는 울적합니다.


    나답게 살면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 돈은 따라올 거라는 낙천적 믿음과, 혹시나 나중에 이 사회에서 도태되어 후회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결국에는 '서울에 아파트 장만하기'라는 효율적인 하나의 목표를 향해 지금의 나를 희생하는 것 정도쯤이야 참을 수 있을 거라는 슬픈 다짐을 하게 되는 게 지금 우리의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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