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3월 31일을 퇴사일로 현재는 휴직기에 있다.
퇴사를 결정하고 나서 삶에서 가장 크게 변화한 것은
누구보다 시간이 모자라게 바쁘다는 것이다.
아침에 남편이 출근하면
조금 더 잘까 하다가도 '이러면 안 돼!' 하면서
벌떡 일어나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우선 아침에 일어나면 되도록 운동을 가려고 한다.
회사 다닐 때 끊어놨던 헬스장 이용권이 있어
기간이 만료되기 전에 아까워서라도 열심히 다니고 있다.
바로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헬스장에 가서
운동하고 샤워하고 돌아오면
대략 10시~10시 30분이 된다.
그러면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노트북을 켜서
블로그도 한번 확인하고 브런치에 작성할 글도 써보고
최근에 시작한 일본어 과외 수업도 준비한다.
그리고 짬짬이 유튜브 영상도 찍고 인스타툰도 주 2회는 업로드될 수 있도록 그려본다.
이것저것 하다 보면 오후 3~4시쯤이 되는데
그때부터 '잡코리아'를 찾아보기 시작한다.
서너 달은 푹 쉬고, 여행도 다녀올까 하는데
너무나 자연스럽게 잡코리아를 클릭해서
채용공고는 뭐가 있는지,
어느 회사를 가면 좋을지 등을 고민하고 있다.
귀소본능인지 뭔지 그냥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는다 생각하면
불안함이 스멀스멀 오는 거 같은 느낌에
하루에 10분이라도 잡코리아를 보게 되는 것 같다.
(중요한 건 내가 가진 역량을 토대로 할 수 있는 일을 찾거나
하고 싶은 일을 찾아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게 들여다보고 있으면
'신입'과 '경력'으로 나뉘어 공고가 뜬 내용들을
확인하게 되는데 처음에는 당연히 5년 회사 다녔으니 '경력자이지'라고 생각하고 눌러댔다.
그러나 회사를 다녔다고 해서
모두가 '경력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IT경력 최소 3년 이상 / 마케팅 업무 2년 이상 / 인사 업무 5년 이상 등
정말로 해당 직무에서 일했던 경력이
경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도 IT업무를 하지 않았는데
터무니없이 IT직렬을 찾지는 않는다.
당연히 내가 일했던 경험을 살려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려 했더니
생각보다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 얼마나 처참한 일인가,
나름 좋다고 했던 공공기관에서 5년이나 다녔는데
내가 내세울 수 있는 경력이 없다니..!!
정말 우물 안 개구리였다.
회사 동기들끼리 웃으갯소리로 했던
'우리 회사 다니면 경력이 있어?'라고 했던 말이
그냥 웃으갯소리로 넘길 것이 아니었구나..!!!!
이로써 나는 정말로 공공기관의 폐해를 맛보게 되었다.
내가 5년을 다녀도 10년, 20년, 30년을 다녀도
이 회사에서는 경력을 쌓을 수 없다.
회사를 오래 다녀도 나의 역량으로
내세울 만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경력기술서에 뭐라도 주저리주저리 쓰려고 한다 치면
내 경력은 한 줄이면 완성될 것이다.
'사업 계획 수립 및 용역 계약 체결 그리고 잡다한 행정처리'
(매일 뻔하게 하는 일들이 용역계약 체결과
그에 따르는 부수적 행정처리 등이고,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한 업무는
아마.. 지출결의서 작성일 것 같다.)
공공기관에서 경력을 논하려고 한다..?
코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공공기관에서는 특별한 전문성이 있는 업무가 아닌 이상 경력이 될 수 없다.
경력자지만 경력이 없는 그냥 직장인일 뿐이다.
정말로 공공기관을 가고 싶다면
보수적인 사고방식의 틀을 깨려고 하지 않고,
매번 바뀌는 정권에 따라 들쑥날쑥되는
업무에도 그러려니 하고,
들쑥날쑥되지만 그렇다고 좋게 변화되는 것은
없다는 걸 감안하고,
점점 공공기관 세계에 물들어가는 사람들 속에서
똑같이 물들어가고,
'신의 직장'을 다닌다고 자부하지만 '우물 안 개구리'들이 된다는 걸 인정하고,
정부부처와 상위기관들의 압박 속에서도 허허 웃을 수 있고,
국민들의 세금으로 얼토당토않은 사업에 예산을 쓰는 담당자가 되고,
결과적으로 이러한 답답한 구조 안에서도 버틸 수 있다면
그렇다 하면, 공공기관을 써보는 것을
말리지는 않을 것이다.
오로지 '안정성' 그 자체만을 추구하는 삶이라면
공공기관은 최적의 회사가 될 수는 있겠으나,
'경력'을 추구하고 '나의 가치'를 높이고 싶다면
공공기관은 절대적으로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