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마음에는 엄마가 세워 준 '자존감'이 입주해 있어요.
요즘 우리 엄마의 주대사는 “엄마가 미안해서”이다.
안 그래도 여린데 요즘은 정말 손 대면 톡 하고 터질 것만 같다. 호르몬 약 때문일까? 아닌데. 그 호르몬 약은 여성 호르몬을 줄이는 것 아니었나? 아 그럼 코로나 블루인가. 내 핸드폰에 ‘인천 서구 핵인싸’로 저장되어있는 엄마가 비자발적 ‘아싸’가 되면서 마음이 약해진 걸까. “미안”이라는 단어를 말할 때마다 엄마의 눈은 너무 슬프다. 눈물을 꾹 참고 있다. 그러면 나는 “엄마 딸 돈 많다니까!! 나 돈 잘 모았다고!!”하고 소리친다. 그럼 엄마는 “그래도 집 못 산다며” 한다. “아니, 집은 못 사지” “너 친구들 다 샀다며” “아 제발 엄마 그만… 내가 알아서 할게”
알고 있다. 호르몬 약도 아니고, 코로나 블루도 아니고 엄마의 미안함의 시작은 내가 어느 주말에 엄마한테 하소연했을 때부터라는 걸. 알고 있는데 모른 척하는 거다. 애써 모른 척하는 내가 얄밉다.
나는 주말마다 부모님 댁으로 간다. 회사 근처에서 혼자 살지만, 주말에는 큰 거실 소파에 눕는 것이 좋아서 꼭 내 고향으로 간다. 부동산 시장에서 말하는 좋은 집은 아닐지라도 맞바람이 치는 그곳에 있어야 비로소 주말을 맞이한 기분이다.
“집 나가래, 집주인이, 근데 집이 없어 엄마. 정신 차리니까 엄청 비싸더라고.”
“아이고 그럼 어떡해?”
“모르지 뭐, 모르겠어. 나만 집 없어 엄마 내 친구 A 알지? 왜 나랑 여행 갔던 애. 걔 강남에 집 샀대. 그때 여행 같이 갔던 B도 잠실에 샀대. 나만 없어. 엄마”
“걔네는 그런 집을 어떻게 사?”
“… 몰라”
“부모님이 부잔가 보네”
“…”
“너 중고등학교 친구들은 아직 무주택 아냐?”
“걔네도 다 샀어, A는 중소기업 특공, B는 신혼 특공. C는 걔네 집은 원래 잘 사니까. 다른 애들도 생애 최초? 뭐 그런 걸로 샀다더라?”
“너는?”
“엄마 딸은 대기업에 다녀서, 고소득자라서, 미혼이라서 안 된대. 아, 결혼해도 안 된대.”
“너 회사에 친한 애는?”
“글쎄 걔넨 집 살 생각 없는 거 같던데”
“왜? 아 걔네도 부모님이 잘 살아서 결혼할 때 해주나 보네?”
“…아 몰라, 그런가 보지 뭐”
“우리 딸도 부잣집에 태어났으면 좋았을 텐데”
나는 답하지 않았다. 이야기는 내가 먼저 꺼내놓고, 엄마의 질문과 대답들에 짜증이 났다. 그냥 넋두리를 하고 싶었을 뿐인데. 집 산 친구들한테 할 수는 없어서 엄마한테 한 건데.
“다른 친구들은 다 가지고 있어. 나만 없어.
이렇게 말하면 엄마가 사준다?”
그런 대사를 읊었던 내가 떠오른다. 소름이 돋는다. 초등학생 때였겠지? 제발 그랬어라. 아니 더 어렸어라. 내가 그랬을 리가 없는데, 근데 맞아. 그런 말을 친구한테 비법이라는 듯 자랑스럽게 말했던 것 같아
엄마가 기억하는 나는, ‘갖고 싶어도, 하고 싶어도 절대 말하지 않는 아이’였고, 엄마는 가끔 그 미안함을 표출했다. 그러면 나는 진짜로 안 갖고 싶고, 하기 싫어서 말 안 한 건데?라고 받아쳤다.
철든 내 모습만 기억했던 이기적인 나는, 엄마와 내가 둘도 없는 서로의 의지처이고, 내가 세상에서 가장 착한 딸인 줄만 알았다. 그조차도 엄마가 나에게 항상 “착한 딸”이라고 칭찬해줘서 스스로 사랑하게 된 줄도 모르고.
어린 나는 엄마에게 “친구들은 다 있단 말이야”
하고 말했고 어리고 여렸던 우리 엄마는 속상한 마음에 어떻게든 해줬을 것이다. 아마 엄마 것 하나 포기했겠지. 나보다 어린 나이에.
하지만 엄마는 내게 집을 사줄 수는 없다. 내 집은 내가 사는 게 너무 당연한 일인데!!
엄마는 슬픈가 보다.
그러니까 그날, 그런가 보지 뭐!라는 말만 참았어도!
우리 엄마가 저런 표정으로 나를 보진 않을 텐데.. 저 소녀 같은 아줌마가 내가 없는 집에서 속상해할 것을 생각하니 내 마음도 편치 않았다.
엄마에게 카톡을 보내려 했다. 나는 엄마에게 자산을 받지는 못 해도, 더 큰 걸 받았다고 고백해야지 생각했다. 그리고 자존감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마다, 가끔 사는 게 힘들 때마다, 무언가를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만화 속 말풍선처럼 떠오르는 그 기억을 또 떠올렸다.
초등학교 4,5학년 때쯤이었다. 학교에서 버스를 대절해서 각 반 대표들과 ‘한국전력공사’에서 주최하는 백일장에 갔다. 내가 참가한 첫 교외 글짓기 대회였다. 나는 그 대회에서 장원을 수상했다.
내 키의 두배는 되어 보이는 당시 최신 접이식 자전거를 부상으로 받았다. 학교에서는, 내가 끌고 가기가 너무 크니 엄마에게 학교로 오셔야 할 것 같다고 전화를 했다.
후에 엄마가 말씀하시길, 글쓰기 대회에서 1등 했다는 얘기를 안 들은 건지 못 들은 건지 기억이 안 나고 그저 "따님이 자전거를 탔다. 학교로 오셔야 할 것 같다"는 말만 들었다고 한다. 그게 수상의 의미인지 모르고, 자전거를 못 타는 앤 데 자전거를 탔다고 하니까, 게다가 어머니가 오셔야 할 것 같다고 하니까 내가 크게 다친 줄 아셨다고 한다. 그래서 헐레벌떡 뛰어왔는데 선생님이 엄청 큰 자전거를 주면서 따님이 1등 해서 부상으로 탄 거라고 하셨다 했다고. 학교 가는 내내 내가 많이 다쳤을까 봐 무서우셨다고 한다.
엄마는 자전거를 끌었고, 나는 엄마 옆에 나란히 걸었다. 자전거에는 '장원'이라는 글자가 크게 프린트되어 붙어있었다. 당시 우리 엄마는 문방구를 하고 있었고, 때문에 그 동네 사람이라면 남녀노소 우리 엄마를 모두 알았다. 그날따라 집에 오는 길은 너무 멀었고, (그러고 보니 그 집은 초품아가 아니었네 집값에 중요하다는 그 초품아!) 만나는 사람마다 엄마는 내 자랑을 했다. '장원'이라고 쓰인 글자 때문에 사람들이 이게 뭐예요? 하고 물어보았고 엄마는 기회를 놓칠세라 "우리 딸이 다른 학교 애들도 모인 글짓기 대회에서 1등을 했대요. 그래서 이 자전거를 받았어요. 엄청 좋죠? 우리 딸이 공부도 잘하는데.. 글도 잘 써서.."라며 내 자랑을 늘어놓았다. 한 세 번째까지는 참았던 것 같다. 네 번째 마주친 아저씨에게 자랑을 끝내고, 나는 너무 창피해서 "엄마 이 '장원'표시 떼면 안 돼?"하고 물었다. "안 돼. 그게 1등이라는 뜻인데?" "나 너무 창피하단 말이야. 제발 사람들한테 그만 말해" 그러나 엄마는 행복한 표정으로 분명하게 말했다. "왜 창피해? 엄마는 우리 딸이 1등 해서 정말 기쁜데?, 엄마 오늘 정말 행복한데? 엄마는 우리 딸이 제일 큰 자랑이야. 너를 낳은 것이 엄마가 태어나서 제일 잘한 일이야."
초등학교 내내 그 기억은 엄마가 가장 창피했던 날 중 하나였다. 중학교 때로 넘어오면서 골목에서 마주친 엄마가 내 이름을 부르며 달려와서 뽀뽀 세례를 퍼부은 것으로 창피했던 기억이 대체되었지만, 나는 그날 엄마가 너무너무 창피했다.
하지만 첫 실패를 경험한 고등학생 때부터 그날의 기억은 내게 ‘동기부여 영상’이 되었다. 영화처럼 스쳐가는 그날의 기억을 재생하기만 하면, 세상 누구보다 딸을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엄마의 모습이 눈물에 맺힌다. 실망시키지 말아야 할 사람이 있다는 것이 나를 일으켜 세운다. 동네방네 "얘가 제 딸입니다"를 외치는 삼십 대 초반의 젊은 엄마가 그 얼굴을 내게 비춘다. 환하게 웃는다. 저 자전거를 타고 막 달릴 것 같다. 얼굴에 행복이 가득하다. 옆에 서있는 꼬마는 장원이라는 글자가 떼고 싶어 시옷 입이 되었는데, 곧 웃는다. 나를 이렇게 자랑스러워하는 사람 앞에선 못 할 것이 없어 보인다.
그러므로 그 기억은 내 자존감이 떨어질 때, 동기부여가 필요할 때, 사는 것이 힘들 때, 모든 걸 그만두고 싶을 때, 내가 종종 꺼내보는 영상이다. 재생할 때마다 울컥해서 엄마를 닮은 얼굴로 눈물이 그렁그렁 한다는 것이 좀 흠이지만. 유튜브에 올라와 있으면 좋으련만. 좀 더 자세히 보게. 그때 그 엄마 얼굴.
엄마가 갑자기 카톡으로 좋은 글을 보냈다. 힘들어하는 딸이 안쓰러워 보여서, 글로 대신했나 보다.
"엄마 내가 주말에 말 한, 집 산 애들 말이야. 비교해서 죄송하지만, A네 부모님은 왜 대학을 그것밖에 못 갔냐고 했대. B네 엄마는 너는 왜 이렇게 뚱뚱하냐고 아직도 그러신대. C네 어머니 별명은 막말 폭격기래. 형제들끼리 그렇게 말한대. 수위가 심해서 나한테는 공개할 수도 없대. 나는 엄마한테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네? 엄마는 내가 하는 건 다 예쁘고, 내가 하는 건 다 자랑스럽다 했잖아. 내가 하는 게 다 맞다며. 그러니까 나 맞게 살아온 거 맞겠지? 엄마 요즘 사람들은 '자존감'을 키우려고 책도 읽고 훈련도 하고 그런대. 근데 나는, 내가 자존감이라는 단어를 배우기도 전에 엄마가 나를 자존감 높은 사람으로 키워준 것 같아. 나는 엄마가 나를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을 본 후로, 나를 한심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어. 아 요즘 집을 못 사서 좀 한심하긴 한데.. 아 집 얘기 그만할까? 엄마 너무 걱정 마. 엄마가 우리 딸 집 샀다고, 재테크도 잘한다고 자랑하게 할 게. 엄마, 근데 진짜로 고마워. 다른 엄마들 하나도 안 부러워. 진짜로. 나는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
이렇게 보내야지 마음은 먹었는데 왠지 쑥스럽다. 옛날에는 애교도 많았는데, 왜 이렇게 됐지? 괜히 이 문장들을 읽은 엄마가 또 미안하다 할까봐 두렵다.
그래서 모르는 척 한다.
그래도 한 문장은 남겼다.
"난 엄마가 제일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