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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희영 May 11. 2022

낸들...(2)

설상가상으로 코로나에 걸려 일주일을 집에 갇혀 지냈다. 몸은 아팠는데 입은 발랄해서, 뭘 먹어도 맛있고 뭐든 두 배로 먹었다.  먹으면 눕고 누우면 곧장 잠들어 버리니 소화될 시간이 있을 리 없었다. 자고 일어나면 눈두덩이까지 부풀어 올랐다. 나는 거울 속의 낯선 나를 보며 중얼댔다.  '너는 누구세요?'

얼굴뿐이 아니었다. 뱃살은 더 가관이었다. 등을 펴고 정자세로 섰다고 생각했는데 거울을 보면 배만 불쑥 내밀고 서있었다.  더할나위없이 입체적이고 거대한 배였다.


병원에서 고지혈증 약까지 처방 받고나니 더 갈 곳이 없었다. 건강까지 무너졌다는 건 심각한 위험 신호였다. 몸의 신호를 외면할 순 없는 일이었다. 내 나이 어느덧 오십 중반을 치닫고 있었으니 말이다. 철심을 뺀 다리는 뭔가 말끔하지 못한 채 어정쩡한 느낌이었고, 걷기 연습을 해도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 불안했다. 그래서 결단한 거였다. 헬스장에 가자. 그리고 pt를 받자.


각오는 했지만, pt레슨비는 만만치 않았다. 형편상 흔쾌히 등록할 수 있는 가격은 아니었다. 그러나 건강을 잃으면 모든 걸 잃는다고 했다. 돈으로 건강을 살 수 있다면 그래야 했다. 그게 맞았다. 나는 무엇이든 해보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심호흡을 한번 크게 내쉰 후 카드를 긁었다. 삼 개월 무이자 할부였다.


헬스장 관리자라는 남성은 친절했다. 인바디를 측정했고 눈 뜨고 보기 힘든 몸무게와 근육량의 수치를 확인했다. 몸무게는 정상 범위에 있었지만 근육량은 현저히 낮았다. 대략 2.8키로그램의 근육이 더 필요하다고 했다. 딸아이가 태어날 때 몸무게는 2.6키로그램이었다. 작고 가느다란 아이였지만 한참을 안고 있으면 무거웠다. 나는 아직도 아이의 몸무게, 그 가벼운 듯 묵직했던 무게를 기억했다. 그 정도 무게의 근육이 내 몸에 붙어야 하다니. 상상이 가질 않았다. 과연 그게 가능하긴 한 일일까.


면담을 끝낸 , 관리자는 내게 자전거 타기를 권유했다. 이왕 왔으니 한번 타보고 가는  어떻겠냐는 제안이었다. 나는 자전거 작동하는 법을 대충 익히고 안장 위에 앉았다.   사람이 앉았었는지 패달이 너무 멀어서 발끝만 간신히 닿았다. 의자를 앞으로 끌어당겨 거리를 맞췄다. 적당한 거리를 맞추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의자를 당기면 너무 가까웠고 뒤로 밀면  너무 멀었다. 어쩌면 그건 인간 관계와도 비슷했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지 않으면 오버하거나 무심한 사람이 된다. 게다가 어떤 관계냐에 따라 거리 맞추기도 달라져야 한다. 친구 사이와 이웃 관계의 거리가 같을  없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도 거리는 필요하다. 내가 낳은 자식이라고 함부로 대하거나, 부모에게 쉽게 요구하는 관계가 됐다면 그것은 거리 조절에 실패한 탓이. 내가 아닌 사람을 타인이라 한다면, 핏줄로 얽혔든 은혜를 입었든 타인과의 적당한 거리는 반드시 필요했다.


 거리를 조절하는 손잡이를 여러번 옮긴 후에야 나는 간신히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힘껏 패달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분이  지나지 않아 벌써 힘에 부쳤다.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혔고 입에선 헉헉 가쁜 숨이 터져나왔다. 힘이 드는데 지루하기까지 했다. 좌우 핸들 사이에 티비가 있었지만 꺼져 있는 상태였다. 티비 사용법을 물어보지 않고 자전거에 올라탄  후회했다. 그러나 다시 내려가서 물어보긴 망설여졌다. 어쩐지 삼십 분은 채운 후에 내려가야   같았다. '의지 박약'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인데, 그건 나를 표현하는 적확한 표현이기도 했다. 실제로  인내심은 바닥을 긁을 정도로 미천한 수준이었다. 기껏 자전거 운동을 한답시고 앉았다가   분만에 일어나자니,  스스로 '의지 박약' 인정하는 듯해서 마음이 내키질 않았다. 티비도 나오지 않는 자전거에 앉아, 무료함과 힘겨움을 견디며 삼십 분간 패달을 돌렸다. 그리고 정확히 삼십 분이 지났을  나는 자전거에서 내려왔다. 허벅지가  먹은 솜처럼 묵직했다.  걸음 떼지 못한  다리를 비틀댔지만, 뿌듯했다. '그래 바로  맛이지.'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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