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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희영 Sep 14. 2022

함께,라는 말에 가슴이 운다.

승연아. 오늘 문득 네가 떠올랐다.  나이 스물 다섯에 시민단체에서 너를 만나고 어느새  다섯이 됐으니, 삼십 년이 지났구나. 우리는 친한 언니와 동생 사이였지만 격동의 시기에 정치적 동지였고 시와 음악을 사랑했던 청춘이었다. 마음이 약한데다 눈물도 많아서 우리는 자주 함께 울었고, 술잔을 기울이며 밤을 지새운 날도 많았지. 우스운  얘기긴 하지만  심지어 같은 남자를 동시에 좋아하기도 했었. 나를 위해선 네가  남자를 잊을  있다고 말했었던가. 지독한 사랑이었지. 너에게나 나에게나 말이야.


"언니만은 절대 변하지 말아줘." 너는 간절한 목소리로 내게 말하곤 했지만, 승연아. 나는 변했다. 변하는 모든 것을 변절이라 비난했던 그 시절은 바람이 쓸어가 버렸다고, 나는 생각한다. 한때 동지라 불렀던 많은 이들이 제 영달을 위해 세상을 배신할 때 나또한 그들을 비난했었다. 정의라든가 자유라든가 평등 같은 것들은 변할 수 없는 영원한 것이고 그것들은 반드시 지켜내야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때문이었지. 그러나 어느 순간에 나는 보았던 것이다. 정의라든가 자유, 평등 같은 아름다운 사상들이 그것을 지켜내려했던 사람들에 의해 난도질 당하는 모습을. 그들은 핏대를 세우며 약자를 지키고 정의를 사수한다고 외치지만 그것은 오로지 그들만의 정의에 불과했다는 것을. 남루한 옷을 걸치고 낡은 신발을 신고 있지만 그들 손아귀에 번쩍이던 금붙이는 숨기지 못했단 것을 말이다.


우리는 세상을 너무도 순진하게 바라봤다. 우리가 지켜주고자 했던 순진한 약자들은, 어쩌면 우리 자신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사람을 사랑했고 오로지 사람들 틈에서 행복하다고 생각했지만, 사람에 관해서 나는 아는 바가 없었다. 사람은 그리 단순한 존재가 아니었다. 욕망과 이상의 간극은 생각보다 좁은 것이더라. 아니 어쩌면 그것은 샴쌍둥이처럼 하나의 덩어리일런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추구하던 이념을 위해 욕망을 거세하려 했던 그 수많은 시간들은 분명 어리석은 세월이었다.


그러나 승연아.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그 어리석은 시간을 통해 나는 성숙했다. 그 시간 속에서 너를 만났고 니가 s형이라고 부르는 내 남편을 만났다. 다시 돌아간다해도 나는 그 시간을 통과할 것이다.  돌이켜보면 한심하고 부족했지만, 그 시간이 없었다면 인간에 관해 고민하고 성찰하는 일에 무심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 거대한 사랑과 희생에 관해서는 관심이 없다. 죄의식이라든가 연대감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다. 내 가족과 친구 같은, 내 주변에서 그림처럼 존재했던 그들에게, 나는 관심과 애정을 돌리려 노력하고 있다.  나는 그것을 더 이상 이기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 사람들을 지키고 그들을 위해 사는 것, 그것이야말로 내가 진실로 살고 싶었던 시간이었다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가족 얘기를 하니까 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구나. 니가 s형이라 부르는 내 남편이 림프종이라는 악성 종양을 앓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그러고보니 항암치료를 시작한 지 벌써 두 달이 다 되어가는구나. 암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부터 첫 항암치료를 시작했을 때까지가 가장 힘든 시간이었다. 지옥문을 지나친 것 같았다고, 그날을 회상하면 나는 습관적으로 그렇게 말한다. 밤마다 심장이 요동쳐서 잠 들기조차 쉽지 않았다. 불안과 공포가 짝을 지어서 덤벼드는데 정신을 차리기 쉽지 않더구나.

그런데 막상 죽고 사는 문제에 직면해보니, 안 보이던 게 보이더라. s형 없이는 나 혼자 고속도로를 운전하지 못 한다는 것이며, s형이 만든 것만큼 맛있는 닭도리탕을 먹어본 적이 없다는 것 같은 사실들 말이다. 그리고 재작년에 형부가 남편 먹으라며 담가준 모과주, 그 크고 거대한 플라스틱 술통의 뚜껑이 열리지 않아서 s형이 마셔보지 못했단 사실도 그제서야 깨달았다. 남편이 아프지 않았다면 알지 못했을 사실들이다.


승연아. 옛날 같았으면 너한테 제일 먼저 전했을 소식을 이제는 문득 떠오른 지금에서야 알리는구나. 산다는 게 그렇다. 늘 같은 것은 없다. 그렇다고 변하지 않는 게 좋은 것도 옳은 것도 아니다.

그러나 내 무의식에 아직은 네가 남아서 이렇게 편지를 쓴다. 언젠가는 뇌가 작동을 멈추고 그곳에 저장된 기억도 사라지겠지만, 너를 떠올리면 거미줄처럼 끊기지 않고 줄줄이 따라오는 수많은 기억들이, 아직은 온전하다. 그래서 이 늦은 시간에 이토록 긴 글을 썼나보다.


노파심에 하는 말인데,  s형은 걱정 안 해도 된다. 병기로 따지자면 1기에 해당하는 초기고, 암치고는 예후가 좋은 병이란다. 완치율이 매우 높은데다가 치료 효과도 좋은 편이다. 남편은 어서 정해진 치료를 끝내고 일상으로 돌아가길 바라지만, 조바심은 내지 말자고 얘기하는 중이다. 겪어보니까 불행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더라. 우리는 신혼 초이래 처음으로 서로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함께 극복하자고 애쓰는 중이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라는 말, 민주화운동할 때 우리가 늘 외쳤던 그 말이 이렇게 구체적으로 다가오긴 처음이다. 그 시절엔 함께라는 말에 가슴이 벅찼지만, 지금 남편과 주고받는 함께라는 말엔 가슴이, 운다.


잘 지내고, 곧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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