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이 예쁘면 인생도 즐겁다
내가 어렸을 때. 술이라는 건 남자만 마실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초등학교 때도 중학교 때도 고등학교 때까지 쭈욱 그랬다. 술을 여자가 마셔도 별 문제 될 게 없다는 걸 알게 된 건 대학에 들어가고 난 이후였다. 요즘도 그렇지만 처음 대학에 들어가면 신입생 환영회다 뭐다 그러며 틈만나면 술을 마시게 했다. 그런데 나는 그 흔한 맥주조차 한 모금 마셔보지 않고 대학에 들어갔던 터라 그 시간이 너무 고역이었다
지금은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지만 그때의 나는 비교적 순수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짧은 바가지 머리에다 안에는 하얀 블라우스를 입고 겉에는 검은색에 가까운 모직 외투를 걸치고 있었다. 거기다 목에는 바둑판 무늬의 파란색 목도리까지 칭칭 감고 돌아다녔다. 온갖 화려한 색의 옷에다 화장까지 총 천연색으로 칠하고 다니는 친구들에 비해 나는 보기만 해도 칙칙해지는 그런 아이였다.
게다가 술 냄새만 맡아도 하얗게 질려있는 내 촌스런 얼굴 덕분에 억지로 술을 콸콸 부어주며 마시라고 디미는 선배는 거의 없었다. 아니 오히려 내 앞에 잔이 놓여지면 대신 마셔주는 선배는 있었다. 그 선배는 내 앞에서 멋지게 담배를 피워 물며 말했다.
“여자 담배 피는 거 처음 봐?”
그랬다. 여자였다. 그 여자 선배는 나를 위해 흑기사도 해주고 담배도 폼 나게 피우고 청바지도 잘 어울리는 아주 멋진 여자였다. 나는 심장이 두근두근 했지만 그건 아마도 담배 연기를 너무 많이 마셔서 그런 거라 생각했다. 1학년 중에 술에 취해 비틀거리지 않는 사람은 나 밖에 없었다. 술을 안 마셨으니 비틀 거릴 일도 없었다. 슈렉에 나오는 장화신은 고양이처럼 커다란, 아니구나 별로 안 커다란 눈으로 선배들을 말똥말똥 쳐다보며 더 늦기 전에 집에 가봐야 된다고 발딱 일어났다. 나는 촌스러웠고 술맛을 몰랐고 술과 담배 냄새가 가득 찬 술집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도 술과 엮일 수밖에 없는 일이 생겨버렸다. 한 마디로 인생이 꼬이기 시작한 거다. 한 남자를 알게 됐다. 그런데 그 남자가 술꾼이었다. 만나면 밥 먹을 시간에도 술을 마셨고 술 마실 시간에는 당연히 술을 마셨다. 영화를 보고 나면 술을 마셨고 김광석 콘서트에 다녀 온 날 제일 많은 술을 마셨다.
나는 그날 김광석을 처음 봤고 그렇게 술을 많이 마시는 남자도 처음 봤다. 배가 고팠다. 햄버거라도 하나 먹고 싶었지만 술을 팔지 않는 곳엔 갈 일이 없었다. 어디 동굴 같은 주막에 들어가거나 미로 같은 골목 끝자락에 들어앉은 곱창집 같은데만 찾아 다녔다. 사실 나도 차근차근 가르쳐주면 착실히 배워보고 싶은 마음은 있었다. 근데 이건 뭐 그런 것도 없이 그냥 자기 잔만 꾸역꾸역 채워가며 혼자 마셔댔다. 술을 억지로 권하지 않는 게 나름의 배려였겠지만 나는 배가 고팠다. 뭐라도 먹고 싶은데 먹을 건 두부 김치가 다였다. 두부 김치를 먹고 나니 입이 매워서 잔에 따라 놓은 시원한 맥주를 들이켰다. 생각보다 맛이 괜찮았다. 그래서 한 잔 두 잔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물론, 다 토했다. 그는 책임감을 가지고 등을 두드려 주었고 입가심할 물도 주면서 처음엔 다 그렇게 배운다는 시답잖은 말로 위로했다.
술 맛을 모를 땐 몰랐는데 술이라는 게 막상 마셔보니 그리 나쁜 건 아니었다. 알딸딸하게 취하고나면 왠지 기분이 좋아져 홀짝홀짝 술잔에 자꾸 손이 가곤 했다. 뭐 그래봤자 맥주 몇 잔 정도가 내가 마실 수 있는 최대치였다. 그러다 한 번은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게 됐는데 바로 그 날이 처음으로 소주를 만난 날이었다. 맥주보다 양도 적고 만만해 보이길래 폼 나게 한 잔을 쭈욱 들이켰다. 그런 다음 의자에서 폼 나게 뒤로 나자빠져 버렸다. 내 인생, 소주에 대한 첫 경험 이었다.
막걸리를 제대로 마셔본 건 대학교 2학년 때 주일학교 교사엠티 때였다. 소주와 막걸리 중에 그나마 맛있어 보이는 막걸리로 주종을 택했다. 소주는 전에 마시고 기절해 봐서 입에도 대고 싶지 않았다. 게임도 하고 기타도 치고 뭐 그러면서 다들 술을 마셨다. 나도 이제는 웬만큼은 마실 수 있다고 자신했다. 술꾼 남자친구를 둔 덕분이었다. 하지만 막걸리는 조심했어야 했다. 달달해서 꿀떡꿀떡 잘도 받아 마시다 보니 나무도 쓰러지고 땅도 일어나고 무릎도 까지고 난리가 났다. 사람들은 그런 나를 이불에 푹 뒤집어 씌워 재워보려 했지만 결국은 밤새 화장실을 데리고 다니며 등을 두드려주어야 했다. 그때 나는 막걸리가 절대 만만한 술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마실 땐 모르지만 가장 뒤끝이 더러운 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다음으로 양주를 잠시 마셔본 경험이 있다. 나에게 술을 먹이기 시작한 그 남자와 결혼을 반대하던 엄마는 내 통장에 적잖은 돈을 넣어주며 너 하고 싶은 것 실컷 해보고 대신 그 남자와 헤어지라고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엄마 손가락에 내 손가락을 걸어 약속을 한 다음 그 돈으로 나는 그 사람과 술을 마시러 갔다. 먹고 죽자. 죽기 전에 비싼 술이라도 실컷 마셔보자 뭐 이랬던 것 같다. 물론, 진짜 죽을 생각은 전혀 없었다.
대학로에 있는 작은 술집이었는데 생긴 건 막걸리나 소주를 팔 것 같이 생겨 가지고 메뉴판에는 양주 사진이 잔뜩 붙어 있었다. 예전엔 커피를 파는 카페였는데 장사가 너무 안돼서 지금은 술을 판다고 했다. 술을 팔았지만 장사가 안되기는 마찬가지여서 죽을 지경이라고도 했다. 우리는 분수에 맞지 않게 그 집에 가서 틈만 나면 양주를 퍼마셨다. 사장언니는 우리가 가면 아주 양팔을 번쩍 들어 환영해 주었는데 매상을 거의 우리가 다 올려주고 있는 것 같았다. 사장언니는 술집에 달린 작은 방에서 아이들을 혼자 키우고 사는 이혼녀였다. 내 통장의 돈이 거의 바닥날 무렵 사장언니가 전화로 나에게 돈을 좀 빌려 달라고 했다. 그래서 돈이 많아 양주를 퍼마시고 다닌 게 아니라고 사실대로 말했다. 그래도 미안해서 그 집에서 제일 비싼 양주를 한 병 시켜 먹은 뒤 그 이후로는 그 집에 더 이상 가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후 그 집도 문을 닫았다.
아무튼 나는 그 남자와 술 마시고 돌아다니며 돈을 다 써버렸다. 그래서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다음에 또 만나요. 노래에 있듯이 우리는 다음에 또 만났다. 엄마는 노발대발해서 다시는 돈 따위 주지 않겠다고 했지만 돈이 없어도 얼마든지 우리는 만날 수 있었다. 그렇게 술 마시고 같이 만나서 돌아다니고 만나면 좋고 헤어지면 보고 싶고 그랬다. 하루는 미래가 아주 불투명한 우리가 아쉬운 작별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가 교통사고를 당했고 사경을 헤맸다. 귀신도 봤고 헛소리도 하고 아주 난리도 아니었다고 했다. 혼수 상태까지 갔었으니까.
그런 나를 보며 엄마가 그 남자를 불렀다. 양미가 이렇게 가면 마음에 한을 품을 것 아닌가. 어떻게든 살려서 자네가 데려가게. 엄마는 그날 처음으로 ‘자네’라는 말을 썼고 그 말은 곧 우리 관계를 허락해주겠다는 뜻이었다. 내가 멀쩡할 땐 죽어도 안 된다 그러다가 다 죽어가니까 허락을 해주는 건 솔직히 어른스럽지 못한 행동이었다.
그 남자는 내 곁에서 손도 잡아주고 이마에 땀도 닦아주며 어떻게든 살려내려고 애를 썼다. 결혼을 허락 받았으니 내가 죽으면 왠지 따라 죽어야 될 것 같은 압박감 같은 걸 느꼈을지도 모른다. 뭐 아무튼. 그 남자의 정성이 갸륵했는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다시 살아났다. 어찌보면 병원에서 의사가 살려낸 거겠지만 그래도 엄마는 그 남자가 살린 거라고 믿고 싶어했고 그때부터는 막내사위 대접도 해주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남자 집에서 우리 결혼을 반대하고 나섰다.
그 이야기를 다 하자면 밤을 새도 모자란다. 때문에 결론만 말하자면 시아버님이 나를 한번 만나 보신 뒤 마음에 들어하셨고 허락을 하셨다. 게임 끝. 마음에 들었던 이유가 도대체 뭐냐고 시어머니가 묻자 “술 한잔도 못 마시게 생겼어”라고 하셨단다. 나를 아주 잘못 보셨던 거다. 하지만 나는 술 한잔도 못 마시게 생긴 덕분으로 결혼을 허락 받았고 신혼여행 간 첫날부터 그 남자와 주구장창 술을 마셨다. 신혼생활이 시작되면서 집들이만 세 달을 했다. 매일 사람들이 와서 술을 마시고 갔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사람들 앞에서 오늘이 정월 대보름이라 내가 나물을 아주 맛있게 무쳐놨는데 왜 치킨을 사왔냐며 술 말고 밥 좀 먹고 살자고 엉엉 울었다. 그리고 그 이후 얼마 안 있어 나는 엄마가 되어야 했고 술에 밥 말아 먹는 생활도 웬만큼 쫑이났다.
그러고 보면 내 인생에 참 많은 부분이 술에 엮여있다. 좋았던 기억도 슬펐던 기억에도 술이 있었다. 남편이 유별나게 술을 좋아해서이기도 하지만 술보다 사람을 더 좋아하는 우리 부부의 성격 때문이기도 했다. 술과 사람은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는 그 무엇이니까 말이다. 술에 대한 글을 쓰다 보니 비집고 나오는 기억이 범람하여 어떤 걸 써야 할 지 난감했다. 차마 1%밖에 쓰지 못한 아쉬움은 한잔 술로 달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