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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미 Nov 11. 2019

코뿔소 난산하는 소리 들어보셨어요?

엄마는 왜 그토록 내 이빨을 교정하려 하셨을까

 

엄마는 내 이빨이 참 골치 아프다고 했다. 토끼처럼 앞니 두 개가 톡 튀어나와 있어서 보기에 따라선 귀여울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학창 시절에 그 누구도 내 이빨을 가지고 놀린 친구는 없었다. 오히려 내 머릴 쓰다듬으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는 있었다.     


“뭐야. 왠지 토끼같잖아!”     


그럴 때면 나는 앞니 두 개를 입술 밖으로 꺼내 물며 토끼 코스프레로 아이들을 웃겨주곤 했다. 그러니 나에겐 이빨 열등감 따위는 없었다. 그러나 나에겐 이빨 열등감을 심어주려는 엄마가 있었다.     


“너 그거 빨리 교정해서 보철기 껴야된다. 정상 되려면 3년은 더 걸려!”     

‘정상 되려면? 나 비정상인거야? 그런거야?’


이러다 보니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가끔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를 닮은 듯도 했다. 토끼와 인류 조상 사이에 진화가 좀 덜 된 내가 있었다. 거울을 보며 입술 밖으로 슬픈 이빨 두 개를 꺼내물었다.     


“나. 뻐드렁니가 맞는 거야 엄마?”

“그래. 넌 그런거야. 만약 니가 서세원 같은 남편을 만난다고 생각해봐라. 결혼해서 뽀뽀라도 하고 살겠니? 니가 입 튀어나온 남자 안 만난다는 보장도 없고. 그러니 너라도 이빨을 빨리 집어넣어야 되는 거야.”     


지금 생각하면 이런 어이없는 논리에 넘어가 치과를 따라간 내가 미친년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때는 그 말을 들으며 이렇게 생각했다.      


“엄마 말이 일리가 있네…”   

 


대학 2학년 때. 결국 나는 치과에 가서 교정을 받았다. 앵두같이 쪼매난 내 입을 하마처럼 까벌리고 있어야 했다. 산적 주먹 마냥 커다란 의사의 손이 내 입으로 들랑달랑하더니 결국은 입 양쪽이 찢어지고 말았다. 그때 내 입가에 빨간약을 발라주시며 눈물이 그렁그렁하셨던 엄마. 그런니까 도대체 왜 저에게 이다지도 꼭 이빨 교정을 시키려고 그러셨던 거예요 네?     

워낙 오래 전이라 기억이 희미해졌지만 꽤 오랫동안 치과를 드나들며 보철기를 끼워 넣었다. 그러다 치과에 드문드문 들리게 되었고 한 번씩 쪼여주고 점검만 받으면 되었다. 그 무렵. 나는 엄마의 우려와는 달리, 이빨이 하나도 튀어나오지 않은 한 남자를 만나고 있었다. 하지만 남녀 관계가 뭐 다 그러하듯 우째우째하다보니 어쩔 수 없이 헤어져야 하는 상황에 처해버렸다. 아이러니 하게도 내가 그 사람하고 사귀게 된 건 <약국에 가서 당근 찾는 토끼> 이야기를 해준 뒤 부터였다. 토끼 흉내를 그토록 실감나게 할 수 있었던 건 물론 내 이빨 덕분이었다. 그 사람이 어찌나 미친 듯이 웃어 대던지 원.

뭐 암튼. 그 남자도 그 이빨도 이젠 이별을 해야만 했다. 그래서 나는 가출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변해버린 모든 것들을 뒤로하고서 말이다. 집을 나와 금강산 가장 끄트머리쯤에 숨어있는 절로 들어갔다. 글을 쓰고자 조용한 곳을 찾아 왔노라 뻥을 치고 방 하나를 얻어 무전취식에 들어갔다. 문제는 가출 동안에 교정 치료를 받지도 정기적으로 쪼여주지도 않아 입 안이 엉망이 되어가고 있었다는 거다. 교정 철사가 여기저기 빠져버려 입안을 찔러 대고 있었지만 뭐 그러거나 말거나. 피폐해진 내 삶은 그따위 것을 살필 여유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주지스님과 겸상을 하고 밥을 먹고 있었다. 절이다 보니 반찬이래야 콩나물이고 시금치고 시래기고 다 그랬다. 잠도 덜 깬 새벽부터 텃밭 같은 밥상을 앞에 두고 손에 걸리는 대로 대~충 집어다 입에 쑤셔넣었다. 그러다 그 사단이 나버렸다. 콩나물인지 시금치인지 길따란 뭔가가 이빨 제일 뒤쪽 보철기 고리에 꼬리를 감고 그 나머지는 목구멍으로 내려가버렸다. 아니, 내려간 것도 안 내려 간 것도 아닌 황당한 상황이었다.     

쉬지 않고 딸꾹질을 10년 내리한 느낌? 

수영 못하는 사람이 물에 빠졌는데 바닥에 발이 안닿는 느낌?

사랑하는 사람과 이제 막 만났는데 난데없이 설사가 삐져나오는 느낌?

잠결에 오줌누러 나왔다가 우주선 밖으로 떨어져버린 느낌?

뭐 암튼. 일단은 숨이 안나왔다. 쉴 수가 없었다.

살아야 했다 어떻게든. 

그때까지 상황파악을 못하신 스님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조용히 공양을 하고 계셨다. 그러다 그 소리를 들으신거다.     


“코뿔소 난산하는 소리를..”     


눈 앞에서 얌전히 밥을 먹던 아가씨가 지 손을 목구멍에 쑤셔넣고 뭔가를 끄집어 올리는 소리를. 모습은 소리에 비하면 차라리 아름다웠다.


“꾸웩~ 꾸웩~~”     


그 짧은 순간에 내가 맛 본 지옥은 순식간에 나를 깨달음의 세계로 이끌었다. 이 거지 같은 보철기를 제거하지 않고서는 언제든 콩나물 한 가닥에도 내 목숨이 헤까닥 골로 갈 수 있다는 사실을 경험한 거다. 스님들에게는 차마 그 괴짓거리의 참상을 까발릴 수 없어 “지병이 좀 있습니다”라고 아뢰었다. 팔자라며 비구니의 삶을 적극 권하시던 스님들은 그 날 이후. 부모 가슴에 대못박는 자식치고 잘되는 년놈을 못 봤다며 나의 귀가를 졸라댔다. 두 번 다시 그 괴상한 소리와 모습을 보고 싶지 않으셨던 거다. 결국 나는, 스님들 등살에 떠밀려 집으로 돌아왔다.      

치과의사는 내 입 안을 들여다보며 온 몸을 부들부들 떨더니 기어코 내 입가를 다시 찢어놓았다. 집에 돌아와 보철기를 펜치로 뽑아버리겠다는 내 울부짖음이 심상치 않았는지 엄마는 다 들어가지도 않은 내 이빨에서 보철기를 떼어내게 허락해주었다. 엄마는 괜한 일을 하신 거다. 그냥 생긴 대로 살게 놔두지. 나는 서세원 같은 돌출입과 결혼하지도 않았고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그게 그다지 문제 될 만큼 뽀뽀가 삶의 대단한 영역을 차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아무튼. 내가 예쁜 이빨로 교정되길 바랬던 엄마는 이제 내 곁에 없지만 그 소망은 추억으로 남아 내게 이런 글을 쓰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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