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껌 팔아 보셨나요?
혹시 껌 팔아 보셨나요?
이외수 작가님의 <칼>이라는 소설을 꺼내 다시 읽었다. 실직한 아빠에게 딸이 말한다. 아빠 대신 껌팔이라도 하겠어요. 그 부분에서 예전 까마득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광화문에서 껌을 팔아본 경험이 있다. 진짜다.
그것도 애 낳고 30대에 말이다. 결혼 하고도 뻔질나게 친정을 드나들며 엄마 주머니를 축내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막내가 얄미웠던지 어느 날 작은언니가 작심하고 쏘아붙였다.
“넌 엄마 없으면 어떻게 살라 그러냐?”
“없긴 왜 없어. 맨날 있을 거거드은.”
“그 나이 먹도록 애까지 낳고 참 자알 한다.”
“남이야!!”
아 씨. 이때부터 슬슬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염치없다 치고. 그런 자기는 염치가 차고 넘쳐서 애를 둘이나 맡겨놓고 곱고 고왔던 우리엄마 팍싹 늙게 만들었냐고오!
엄마는 마침 손자 손녀를 업고 걸려서 집 앞에 산책을 나가고 안 계셨다. 때문에 언니랑 나는 온갖 억지를 다 갖다 붙여가며 누가누가 더 불효자식인지 증명하겠다고 핏대를 세웠다.
초.중.고 시절을 막 훑어 올라가며 기억도 잘 안 나는 서로의 철없던 과거를 속사포로 다다다 퍼부어댔다. 두 살 터울의 자매는 본처와 후처 사이 같다고나 할까. 어려서부터 앙숙이 따로 없었다. 주로 언니가 막내인 나를 질투해서 싸움이 났다. 엄마나 아빠에게 내가 칭찬이라도 들을라치면 꼭 뒤에서 앙갚음을 하거나 골탕을 먹였다.
파리를 잡겠다며 나무로 된 야구 방망이를 있는 힘껏 휘두르다 내 머리에 내리쳐서 기절시킨 적도 있었다. 매번 실수였다고 변명했지만 그건 지나가는 개가 웃을 소리다. 질투에 눈이 멀어 사랑스런 막내를 지극정성으로 미워했던 언니였다. 오늘도 자기만 효녀인 척 내 인격을 모독하지 않았냐 말이다.
싸움이 길어지자 슬슬 배가 고파지기 시작했고 언니가 먼저 싸움을 중단시켰다.
“자 여기까지. 니가 계속 이렇게 철없이 사는 게 걱정돼서 그런 거니까.”
그런데 거기다가 기막힌 말을 한 마디 덧붙였다.
“어디 나가서 껌이라도 한 통 팔아와 봐라. 그럼 내가 인정해준다. 자식을 위해 하다못해 껌 한 통도 못 팔 거면서 입만 살아가지고는. 쯧!”
입만 살아가지고? 내가?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나 자식을 위해 진짜 껌 한 통은 팔 수 있을까.
주섬주섬 츄리닝을 걸쳐 입고 집을 나섰다. 그리고 마트에 가서 자일리톨껌 한 박스를 샀다. 그 무렵 친정집이 구기동에 있었던 터라 버스를 타고 근처 광화문으로 나갔다. 그리고 거기서 껌을 팔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굉장히 빠른 걸음으로 지나쳐버리는 통에 눈조차 마주치기 힘들었다. 누군가 멈춰서서 내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다. 주위를 살피다 근처 부동산으로 들어갔다.
“어서오세요. 집보러 오셨나요?”
“그게 아니라... 저어기.. 그러니까 껌을 쫌.. 팔..”
처음엔 무슨 뜻인지 잘 못 알아 듣더니 내가 쑥스럽게 내민 껌을 보고는 짧은 탄식 같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리고 왜 이러고 다니냐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남편이 집을 나갔어요. 애는 아직 어리고...”
물론. 남편은 그때 직장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다. 드라마 같은데서 보면 남편한테 버려진 여자주인공이 살아보겠다고 힘들게 직장에 들어간다. 그리고 그 회사 사장 아들한테 사랑을 받게 되고 무조건 해피앤딩으로 끝난다. 하지만 현실에서 내가 쓰는 드라마는 ‘껌을 파는 아줌마’였다. 사장 아들은 개뿔.
마음 좋은 부동산 사장님은 자일리톨껌을 다짜고자 들이밀며 앵벌이 코스프레를 하는 젊은 엄마가 안돼 보였던지 껌 두 통을 사주었다. 세상 물정 모르는 내가 껌 가격을 따따블로 불렀는데도 말이다. 그렇게 첫 껌을 팔았다.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돈을 벌자 왠지 모를 감동과 뿌듯함 뭐 그런 게 은근슬쩍 밀려왔다. 앞으로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그곳을 나와 몇 군데를 더 돌았으나 팔지 못했다. 하지만 일단 팔긴 팔았으니 그걸 들고 당당하게 집으로 갔다.
“애들이 엄마 찾고 난린데 어디 갔다 와?”
“껌 팔고 왔어요.”
“뭐어? 뭘 팔았다고?”
“언니가 나보고 껌 한번 팔아보라 그랬다고요.”
“아~니 이것들이 애는 안보고 뭐래는 거야!!”
작은언니는 그날. 겁나 열 받은 엄마에게 등짝을 수차례 얻어맞았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진짜 껌을 팔아오란 뜻이었겠냐고, 막내 쟤는 바보가 틀림없다며 언니는 항변했다. 엄마는 세상 천지에 지 동생을 껌팔이 시키는 언니가 어딨냐며, 그리고 하란다고 진짜 하는 동생은 또 어딨겠냐며, 집안 망신을 자매가 따따블로 시킨다며, 혀를 쉴 새 없이 쯧쯧쯧쯧 차셨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 참 엉뚱하긴 했다. 어쩌자고 그런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했을까. 그건 아마도 내 뒤에서 든든히 내 편이 되어준 엄마가 계셨기 때문일 거다. 하지만 이젠 내 편을 들어 언니 등짝을 후려줄 엄마가 안 계신다. 철들자 엄마를 잃은 셈이다. 내가 좀 더 일찍 철이 들어 든든한 딸내미 모습을 보여드렸더라면 좋았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후회는 아무리 일찍 한다한들 되돌릴 수는 없는 거니까.
그건 그렇고.
“엄마 잘 계시지요오~~~~?”
“오겡끼 데스까아~~~~?”
“와다시와 오겡끼데스으~~~~!!”
“그리고오~~ 미안해요. 엄마아~~~!!”
이런 건 눈 덮인 산에 가서 외쳐야 제대론데. <러브레터> 여주인공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