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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미 Nov 11. 2019

엄마하고 일단 떠나보자



아들이 군대를 간다. 첫째 아들은 작년에 군대를 갔고 이번엔 둘째 아들이다. 이런 상황을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나는 드디어 자유!” 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왠지 무작정 좋아라 할 수만은 없는 것이 아이들은 군대를 가기 전 학교를 휴학하고 짧은 우울증 같은 시기를 겪는데 대략 이런 느낌인 것 같았다.

“봄날은 가고 혹독한 겨울만이 날 기다리고 있구나.”

그러니 위로의 말을 해준다거나 맛있는 거라도 만들어 듬뿍 먹여야할 텐데 그것 또한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첫째를 통해 알게 됐다. 그래서 둘째 때는 뭔가 조금 색다른 방법으로 위로를 해주고 싶어 생각해낸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두둥.

“엄마하고 배낭여행 떠나자!!”

물론. 둘째는 경악에 가까운 표정으로 거부 의사를 밝혔다. 내가 왜? 그것도 엄마하고? 이 아까운 시간을? 미치지 않고서야!! 뭐 이런 복잡다단한 심정이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얼굴로 말했다.

“장소는 라오스. 기간은 9박10일. 환불 안 되는 비행기표. 예약 끝!”


평화롭게 흐르는 메콩강. 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물살이 엄청 빠르다. 

군대 문화가 어디 상대의 의사를 묻고 선택권을 주고 그러냔 말이다. 그러니 가기 전부터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뭐 이런 분위기에 익숙해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예전에 슬쩍 “라오스에 한번 가보고 싶긴 한데…”라고 말한 기억이 나서 그냥 거기로 정해버렸다. 평소 같으면 콧방귀도 뀌지 않았을 놈이 군대 갈 날을 받아 놓고는 전의를 상실해 “그럼 가보던가요…”라고 풀이 죽어 말끝을 흐렸을 때 나는 보았다. 이 나라에서 군대라는 것이 얼마만큼이나 젊은이의 기를 꺾어놓고 자포자기하게 만드는지를. 아들은 마치 이런 표정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실연을 당한 뒤 누군가를 다시 만나보려 하지만 ‘그녀가 아닌데 누군들 내게 의미가 있겠어….’ 딱 그런 얼굴로 엄마를 따라 라오스로 떠났다.

대략 6시간 만에 비엔티안에 도착. 숙소는 공항과 가까운 다운타운 쪽에 있었다. 아이는 방에 들어가자마자 짐가방을 던져두고 라오스에 있는 하얀 침대와 사랑을 나누려고 떠나온 사람처럼 매트리스를 껴안고 뒹굴었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아니 아니 그럴려고 여기 온 거 아니야. 엄마하고 라오스에서 두고두고 추억이 될 만한 일을 한번 만들어보자. 그러려면 일단 빡세게 싸돌아 다녀 보는 거야. Are you ready?!

“엄마, 배고파.”

그래. 첫날부터 너무 빡세고 그러면 안 돼. 애가 겁먹을 거 아냐. 오늘은 맛있는 거 먹고 좀 편하게 쉰 다음 내일부터 험준한 산을 타든, 카누를 타고 메콩강의 위험한 물살에 떠밀려 가보든 해보는 거야!

둘째 날. 비 오네. 너무 덥잖아. 문재인 대통령 내외분이 라오스에 오신다네. 물론 우리하고 아무 상관없는 방문이지만, 그래도 비엔티안 근처에서 머물다보면 혹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몰라. 일단 근처에서 얼쩡거리며 구경이나 좀 하고 있지 뭐. 음… 유명한 사찰 두 군데 정도 둘러보면 되겠구나. 일단 도가니 국수 집 검색. 에… 또 어디더라 맛있는 빵 집이 있다했는데. 너무 더우니 일단 툭툭이를 타자. 이런 날 걸어 다니면 죽을 수도 있어.


셋째 날. 그래. 이제 좀 제대로 다녀보자. 고생 한번 빡세게 해보는 거야. 체감온도 40도 이상. 내 머리에 지금 불 붙은 거 같은데. 우리 이대로 계속 걷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 그치? 그래 고생하려고 온 거니까 그냥 땡볕에 쓰러지기도 하고 좀 그러지 뭐. 헉헉. 이 나라 도대체 덥고 습하고 엄마가 너무 잘 골랐다 그치? 야!! 천천히 좀 가. 너 엄마 극기 훈련시키니? 택시도 없고 툭툭이는 궁댕이 아파 못 타겠고 걷자니 무릎 연골 나가겠고 버스… 버스 좀 알아봐!!



“엄마, 오토바이 빌리자.”


나와 둘째는 그렇게 라오스라는 낯선 물살에 떠밀려 하루하루를 대책 없이 흘려보내고 있었다.

“엄마. 방비엥에 한번 가볼까?”

친구들이 블루라군이 볼 만하다고 가보라고 했단다. 엄마만 믿고 있다간 비엔티안을 벗어나기 힘들겠다고 판단한 아들은 드디어 침대와의 사랑을 끝내고 슬슬 여행책자를 뒤져보기 시작했다. 그래. 역시 아이들 교육은 자율, 방임, 무계획이 최고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는 순간이었다. 가만 내버려둬야 아이들은 자기 머리를 스스로 굴리기 시작한다. 아무튼 우리는 그렇게 방비엥으로 떠났다.

비엔티안을 떠나 방비엥으로 가는 길은 비포장도로가 끝도 없이 이어져 있었다. 차에서 내뿜는 매연과 흩날리는 흙먼지 때문에 연탄불에 코를 쳐 박고 앉아 있는 것처럼 기침이 쿨럭쿨럭 나왔다. 거기다 잊을만하면 한 번씩 쏟아지는 폭우까지 더해져 블루라군에 도착했을 때 우린 거의 초죽음 상태였다. 나는 2000킵짜리 망고 주스에 빨대를 꽂아 미친 듯이 쪽쪽 빨며 생각했다. 자자 정신 차리고 무조건 움직이자. 여기서 멈추면 쓰러질지도 몰라. 오~~ 저기 동굴이 있다고 쓰여 있네. 그래 일단 저길 가본 다음 블루라군의 푸른 물속으로 첨벙 뛰어들어 원 없이 헤엄을 쳐보는 거야! 땀범벅이 된 채로 코코넛주스를 쪽쪽 빨아 먹으며 슬슬 수영이나 해보겠다고 마음먹고 있는 아들의 손을 잡아끌고 나는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방비엥의 산들은 수억 년에 걸친 용식작용으로 인해 우뚝 솟아오른 탑 카르스트로 가파른 성벽처럼 하늘을 찌르고 서있었다. 석회암으로 되어있어 바위들이 맨들맨들한데다 빗물에 젖어 미끄럽기까지 해서 시작부터 왠지 불안했다. 거기다 계단이라고 볼 수 없는 험준하고 가파른 길을 20여분 정도 기어 올라오자 절로 답이 나왔다. ‘에이~ 안돼 안돼. 더 이상 욕심 부리다가는 큰 일 나겠다.’ 앞서 올라가고 있는 아이의 바지춤을 잡았다.


“내려가자. 여기 더 이상 못 가. 엄마 죽어.”
“엄만 내려가요. 나 혼자 올라갔다 올게.”

마침 그때. 미국인으로 보이는 길쭉한 키에 40대 초중반 정도 돼 보이는 남녀 한 쌍이 위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아직 한 참 더 올라가야 되니?”
“우린 올라가다 그냥 내려왔어. 너무 위험해. 와이프가 넘어졌어.”
“너 들었지? 못 올라간다잖아. 내려가자!”


하지만 아이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밑이 닳아 맨들맨들해진 슬리퍼를 신은 채 동굴을 향해 기어오르고 있었다. 산은 거의 맨손으로 암벽을 타는 수준으로 가팔랐다. 겨우 20분 남짓 올라왔을 뿐인데도 아래쪽이 까마득하게 보였다. 나는 그곳 바위 한쪽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저 밑으로 다시 내려갈 엄두도 내지 못한 채 덜덜 떨고 있었다. 거기다 까마득하고 험준해 보이는 저 산에 슬리퍼를 끌고 올라간 아들이 너무 걱정이 돼 눈물까지 찔끔찔끔 나왔다. 그렇게 나는 아들이 올라간 쪽을 하염없이 올려다보고 앉아있는데 어디선가 노란 나비 한 마리가 떨어지는 낙엽처럼 나풀나풀 내 옆으로 내려와 앉았다. 그리고 마치 나를 위로라도 해주듯 날개를 접었다 피며 살랑살랑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나도 모르게 마음이 조금씩 편안해졌다. 한참을 그렇게 앉아있다 보니 위쪽에서부터 흥겨운 노래 소리가 들려왔고 마침내 아들이 나타났다.


“와 엄마. 나 죽을 뻔 했어. 집중 안 하면 굴러 떨어질 거 같아 노래 틀어놓고 내려왔잖아. 저기 올라갔더니 동굴 하나 있고 부처상 있고… 근데 와, 아무튼 장난 아니야!”


반가운 마음에 벌떡 일어나 아이의 등짝을 있는 힘껏 한 대 갈겼다. 한 발짝 물러나며 아프다고 엄살을 떨던 아들이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손가락으로 뭔가를 가리키며 다가왔다.


“엄마. 쟤 좀 봐. 너무 예쁘다….”


아까부터 내 옆에 앉아있던 노란 나비가 아들이 틀어놓은 음악에 맞춰 너무나 아름답고 우아하게 춤을 추고 있었다. 땀에 젖고 먼지투성이 얼굴에 눈물자국까지 얼룩진 엄마와. 누군가가 등에다 얼음 덩어리를 집어넣어 화들짝 정신을 차린 것 같은 아들이. 여행 와 처음으로 같은 곳을 바라보며 나란히 앉았다. 마치 그 시간을 위해 떠나온 사람들처럼 그곳에 우리는 그렇게 한참을 머물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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