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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미 Nov 12. 2019

엄마의 반짝이는 박수소리

둘째를 가졌을 때 잠시 꽃꽂이를 배웠다. 
친정집 아파트 위에층에 유명한 플로리스트가 살았는데 영국에서 무슨 학위까지 따고 왔다던 그녀는 동네에서 멋쟁이로 통했다. 한 마디로 세련되고 예뻤다. 엄마는 나를 그 여자처럼 만들고 싶어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돈은 니가 벌어야 돼."

  

남편이 사회에는 도움되고 가정에는 돈 안 되는 일을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엄마는 그녀를 찾아가 부탁했다. 우리 딸도 당신처럼 만들어주세요. (돈도 많이 벌고 멋지게 살 수 있게)
엄마와 같은 성당 신자였던 그녀는 부탁을 거절하기 힘들어 어쩔 수 없이 나를 받아주었다. 물론 수업료도 왕창 받았지만.


첫 수업부터 그녀는 내 눈앞에서 현란하게 꽃을 꽂아 보였다. 마치 <가위손>을 보는 것 같았다. 촤칵촤칵 촤촤칵 체칵..


"저는 두 번 말하지 않습니다."


집중해서 보란 말이었다. 눈이 튀어나오도록 집중해서 봤다. 그런데 완성된 자기 작품을 그윽한 눈으로 한번 바라보더니 텃밭에 잡초뽑듯 쑥쑥 다 뽑아 버리는 게 아닌가. 그리고는 나보고 자기가 꽂았던 것과 똑같이 꽂아보라고 했다. 밑빠진 독에 물을 채우라고 했던 콩쥐 새엄마도 아니고 한마디로 어이없는 소리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눈이 튀어나오도록 보고 있었더니 각인 같은 게 되었던지 뭔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생각나는대로 하나씩 꽂아나갔다. 마치 나의 뇌에다가 꽃을 꽂고 있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무시당하거나 지고싶지 않았다. 그 여자가 전화로 한참을 수다 떨다 돌아와 내가 꽂아논 꽃을 보더니 잠시 멈칫했다. 

그때부터 그녀의 태도가 조금 달라졌다. 열심히 설명하고 성심껏 가르쳤다. 수업 방법은 자기가 꽂은 걸 보여준 다음 미련없이 뽑아 버리는 거였다. 수도없이 그것만 반복했다. 수업할 때 꽂은 꽃은 나에게 가져가라고 주었는데 엄마는 딸의 작품이라며 사진을 찍고 박수를 쳤다. 


둘째가 9개월이 될 때까지 나는 무거운 배를 부여잡고 꽃을 꽂았다. 하지만 수업을 계속하고 자격증까지 따려면 지금까지 해 온 것 보다 해 내야 될 게 더 많았다. 포기라기보단 잠시 유보한 뒤 둘째를 낳고 계속 하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게 끝이었다. 얼마 뒤 그 여자는 외국으로 나가버렸으니까..



뭐 암튼 내가 이 이야기를 한 이유는. 
그때의 꽃꽂이 수업이 나에게 남긴 게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었다. 둘째가 오늘 꼭 보고 싶었던 전시회에 다녀왔다며 보내준 사진을 보기 전엔 말이다. <퍼플 엘리펀트>라고 온통 꽃으로 꾸민 전시회였다. 자기는 이상하게 꽃이 참 좋다고 했다. 비록. 엄마가 바랬던 돈 잘버는 플로리스트는 되지 못했지만 둘째에게 미미한 영향이라도 줄 수 있었으니 돈만 버린 건 아니지 싶다. 그때 꽂았던 내 작품(?) 사진은 엄마가 돌아가신 후 장농 속 깊은 곳에서 발견됐다. 빛 바랜 폴라로이드 사진 속에는 엄마의 박수 소리도 함께 찍혀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 사진들의 제목을 <엄마의 반짝이는 박수소리>라고 지어주었다.


"와~ 정말 멋지다. 멋져!! 짝짝짝~~"


엄마는 아이에게 박수를 많이 쳐주어야 한다. 
그 힘으로 아이는 죽을 때까지 살아간다. 세상살이 아무리 힘이 들고 지쳐도 말이다. 적어도 나는 그 반짝이는 박수소리의 힘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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