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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own Hill Jun 20. 2018

아이의 마지막 학교가는 길

미국에서 초등학교 1년을 마치고...

2018년 6월 15일 아침,

아이는 아무렇지 않은데 나만 괜히 분주했다.


미국에서 1년 여 학교를 다닌 아이에게 오늘이 마지막 날임을 굳이 상기 시켜줬다.

그리고 괜찮냐고 몇번을 물었다.

아이는 호들갑 떠는 아빠를 쳐다보지도 않고

별일 아닌 일로 왜 저런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거의 매일 스쿨버스 정류장까지 아이를 데려다 주는 길이 새삼 낯설게 느껴졌다.

짧은 시간에 많은 생각이 스쳐갔다.

가는 길 군데 군데, 나도 모르는 사이 아련한 추억이 스며들어 있었다.

싫다는 아이를 붙잡고 사진을 찍고 아이를 안아주고 버스가 떠날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이제 가면 영영 돌아오지 못할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심정이

이런걸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돌아보면, 아이는 모든게 낯설고 힘들었을 이곳 학교를 다니면서

한번도 가기 싫다는 말을 한적이 없었던 거 같다.

오히려 학교가 쉬는 날엔 어찌나 아쉬워하는지 가끔 이해가 안될 정도였다.


처음의 걱정이 무색하게 아이는 정말 잘 적응했다.

외모부터 모든 게 다른 미국 아이들과 금새 친해졌고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잘 놀았다.


미국에 온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현지' 아이들과 잘 어울리는 모습을 보고, 몇몇 한국 친구 부모들은 "영어를 정말 잘하는 거 같다"며 부러워했다.


하지만, 영어를 잘해서가 아니라 친구들의 분위기를 살피고 기분

을 맞춰주는, 쉽게 말해 눈치가 빨랐던 거 같다.  

놀아야한다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어떻게든 소통

해야하는 절박감이 있었던 거다.  

아무튼 가끔 주변에서는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친구들과도 어울리지

못해 속상해하는 부모도 적지 않다고 들었다.

그럴때마다 얼마나 다행인지, 다른건 다 필요없다고 아이 엄마와

의기 투합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하지만 여기도 학교인지라 놀고 먹지만은 않는다.

아이는 '놀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모두 학습과 연관이 돼 있다것을 집에 가져오는 '숙제'를 보고서야 알았다.


때되면 시험같은 것도 보고 점수와 등수로 줄세우기 하진 않지만 나름 평가도 한다.

그 '평가'에 집착해 아이를 다그치고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그 숫자가 뭐라고...

그러고 나면 아이가 안쓰러워 후회와 번민으로 밤잠을 설쳤다.

머리는 쿨한 아빠라고 세뇌를 시키지만 몸과 현실은 한심하기 그지없는 아빠였다.


그럴때마다 다른 건 다 필요없고 내 머리 곳곳에 박혀있는 찌든 때를 깔끔하게 닦아내고 개조를 해야겠다는 다짐을 수도 없이 하고 있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다짐만 하기엔 가는 시간이 너무 빠르다.

아이와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함께 하느냐가 중요한게 아니라

어떻게 하느냐를 고민해야 한다.


아이는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마지막 날 학교를 무사히 잘 다녀왔다.  그 어떤 날보다 밝은 표정으로 아내와 나를 기쁘게 해줬다.

아들에게 그동안 너무 고생 많았다고 말하며 꼬옥 안아줬다.


아이는 이곳 학교를 더 다니고 싶어한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돌아갈 수 밖에 없는 현실의 무게를 받아들인 걸까.

마음이 무겁다.


조금은 울컥한 마음에 마저 하지 못한 말을 하고 싶다.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잘 놀아줘서 고마워,

툭하면 인상 찌뿌리고 언성 높이고 감정 조절 못하는 못난 아빠를 이해줘서서 정말 고맙다. 사랑한다 아들! 넌 최고였어! you’re the b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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