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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isha Apr 03. 2023

생각 레시피

오래간만에 감자볶음을 한다.

감자와 양파, 그리고 당근을 차례로 꺼내어  흐르는 물에 씻어낸다. 못생긴 감자와 잘 빠진 당근은 칼로 긁어 껍질을 벗기고  동그란 양파는 옷을 벗긴다. 큰 그릇을 꺼내어 씻은 채소를 함께 담는다.  도마를 꺼내고 칼을 찾는데 '툭'소리에  고개를 돌린다. 잘빠진 당근이 그릇 안에 들어가지 않아 얹은 모양새로 두었더니 떨어진 모양이다.

가만가만. 그릇이 작았나? 아니다. 당근이 긴 탓이다. 당근을 반으로 잘라서 넣으니 한 그릇에 다 들어간다.  자르는 김에 크기가 제법 큰 감자도 반으로 잘라서 넣는다. 그렇지. 그릇이 작은 탓이 아니다. 재료가 큰 탓이다.

채소에 물기가 좀 빠진 듯 하니 이제는 채를 썰 차례다. 찹찹찹. 칼을 바삐 움직이며 모두 채를 썬다. 각 재료별로 접시에 담고 프라이팬을 가스레인지에 올리고 탁! 하고 불을 붙인다. 기름을 두르고 조금 있으니 스르릉 스르릉, 팬이 준비가 되었다는 신호를 준다. 감자를 먼저 넣는다. 자글자글. 기름과 물이 만나는 소리가 요란하다. 다음으로 당근과 양파를 넣는다. 아차. 간을 안 했다. 얼른 소금과 후추를 뿌린다.


각자 사람마다 그릇이 다르다고 했다. 그런데 그릇의 크기가 달라서가 아닐 수도 있다. 사람의 그릇도 어쩌면 모두 비슷한데  생각의 모양과 크기가 달라서 각자의 그릇 안에 모두 들어가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온종일  큰 감자만 생각하면 당근을 담을 생각의 공간이 없다. 또, 당근이 길고 뾰족하면 그 공간에 넣지 못한다.

어떤 생각은 채를 썰어야 할 때가 있고 또 어떤 생각은 적당히 큼직해야 할 때가 있다. 하지만 모양 그대로 담아두면 요리로 바로 쓰기가 쉽지 않다.

생각의 모양이 조금만 변하면 그릇 안에 안전하고 예쁘게 들어가, 맛있는 요리가 될 재료가 되고 그것으로 어떤 요리든 만들어 낼 수 있다. 잘 정리된 생각으로 감자볶음처럼  간단하지만 맛있는 생각 요리도 만들 수 있다. 조리 있고 재밌는 이야기는 얼마나 맛있는가.

내 안에 들어가지 않던 생각을 틈틈이 정돈해서 예쁘게 담아보자. 언제든 쓸 수 있는 맛있는 생각 레시피의 재료가 될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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