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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weetish Jun 29. 2018

당신의 딸에게도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나의 성(性)은 그렇게 소비되었다.

2017년 말을 뜨겁게 달군 화두는 단연 "미투 운동"이었을 것이다. 피해자들은 주로 권력관계에서 "을"의 입장인 여성들이었다. 같은 여자로서 피해자들의 아픔에 공감했고 그들의 용기를 지지했다 (사적 이해를 위해 악용한 경우는 논외 하도록 하자).


아무리 심정적으로 이해했다고 하지만 나는 그들의 아픔을 내 아픔처럼 느낀다고 말할 수는 없다. 사실, 나는 동료운이 꽤 좋은 편이었다. 내가 속했던 사회적 집단 내의 동료들은 대부분 "선하고 참 괜찮은" 사람들이었다. 상식과 이성이 통하는 사람이었고 상대를 배려할 줄 아는 인물들이었다. 회식 자리에서 불쾌한 터치나 농담도 없었고 술자리 분위기에 취해 실수하지도 않았다.


조직과 구성원에 대한 애정의 표현으로 모두에게 술 한 잔씩 따르려한 나를 제지한 사람도 남자 상사였다.

 "여기서는 여자가 남자한테 술 따르는 거 아니야. 렁이씨. 내가 한 잔 따라줄게."

우리는 서로 적당하지만, 알맞은 거리를 두면서 일을 했고, 위계과 관계없이 예의를 차려가며 행동했다.

사람들은 나를 동등한 인격체로 대우해주었고 나는 그들에게 때로는 "학생"이었고 때로는 "공연 기획자"였으며 누군가에게는 "선생님"이었다. 그들에게 나의 성(性)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나를 강남에 한 호텔로 불렀다. 호텔 내에 대회의장에서 동남아 국가 관련 사업을 하셨던 아버지는 말레이시아 공기업과 M.O.U. 를 체결하는 행사가 예정되어 있었다. 그날 한국을 찾은 외국 손님들 가운데서 몇몇은 이미 나와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 아버지의 현지 사업 파트너인 한국인 A는 내가 말레이시아에서 어학연수를 했던 시절부터 알던 사이로, 그분의 집에서 홈스테이를 하기도 했다. 다시 말하면, 일 년 동안 한솥밥을 먹는 꽤 두터운 친분을 가진 어른이었다. 딸에게 비싼 호텔 음식을 먹이고 싶었던 눈물겨운 부정(父情)에 아버지는 나를 그 자리에 초대했고, 나는 그들에게 오랜만에 인사도 드리고 맛있는 음식도 먹을 겸, 그 자리에 참석하게 되었던 것이다.  

 

행사가 시작하기 전, 나는 시간에 조금 여유를 두고 그곳에 도착했다. 몸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누군가를 도와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나는 한시도 마음 편히 앉아있질 못했다. "뭐 도와드릴까요?"라고 이 사람과 저 사람 사이를 누비며 물어다녔지만 "그냥 편하게 앉아 있다가 이따 음식 나오면 맛있게 먹어"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그날의 MOU 체결식은 매우 간소하게 진행될 예정이었다. 사회자가 계약 관계자들의 이름을 부르면 당사자는 단상에 올라 세팅된 테이블과 의자에 앉았고, 각자의 앞에 놓인 양해각서에 자기 이름을 찾아 서명한 뒤, 모두가 일어서서 정면을 향해 사진 한 두방만 찍고 함께 식사를 하기로 약속되어 있었다. 나는 누군가의 말마따나 그 광경을 "편하게 앉아 지켜보다가 맛있는 음식이 나오면 잘 먹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갑작스레 나의 포지션이 바뀐 것은 작은 아버지가 한 말 때문이었다. 그도 말레이시아 관련 프로젝트에 관계가 되어 있었는데, 사업의 계획과 큰 그림을 짜는 이가 아버지였다면 그는 디테일한 세부내용을 확인하고 추진하는 실무자의 역할을 맡았다. 아버지는 그날도 업무를 처리하느라 회의장 안팎을 오가고 있었고 나는 작은 아버지 곁에 머무르며 행사가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양해각서를 팔에 끼고 바쁘게 돌아다니던 아버지의 사업 파트너 A가 우리가 있는 부스 쪽으로 넘어왔고, 나의 작은아버지는 그에게 하나의 제안을 했다.


"이따가 단상에 올라가고 나서, 계약서를 나눠주는 거 렁이를 시키면 어떨까요?"


네? 저요?? (출처: KBS뉴스)


갑자기 튀어나온 나의 이름에 나는 어리둥절했다. 나를 단상에 올려? 나보고 뭐하라고? 내가 단상에 왜 오르지?


"그래도 중요한 계약을 맺는 자리인데 젊은 여자가 계약서 들고 나와서 나눠주면 그림이 좀 괜찮을 것 같은데..."


차분하고 예쁜 원피스를 차려입은 20대의 젊은 여자가, 권력을 가진 남자들 사이를 오가며 서로 간의 협력을 약속하는 자리에서 계약서를 나눠주는 일, 사소한 심부름을 처리해주는 그림을 나의 작은 아버지는 원했던 것이다.


그 앞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A에게도 그 그림이 꽤 봐줄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걸까. A는 잠시 날 바라보았고 빠르게 위아래를 훑었다. 동공의 빠른 움직임처럼 그는 빠른 결단을 내렸다.


"그래. 렁이야. 네가 가진 게 미모밖에 없잖니? 이따 조금만 도와줘라. 이거 그냥 들고 가서 나눠주기만 하면 돼. 간단하지? 부탁한다."


MOU 체결로 신경 쓸 일이 많았던 그는 내 대답도 듣지 않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가 떠난 자리에, 나에게는 그가 넘기고 간 양해각서와 가진 게 미모밖에 없다는 그 말만 남았다.


너무도 황당하여 내가 강하게 느끼는 이 감정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지 못했지만 난 그 순간이 몸시도 불편했다. (출처: 아는형님)

  

그의 의도는 어쩌면 순수했을지도 모른다. "미모밖에 가진 게 없다"는 말은 그의 딴에는 칭찬이었을 수도 있다.

혹은 상대의  기분을 띄워 자신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드는 그의 대인관계 전략 중 하나쯤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순간 "모욕감" 같은 것을 느꼈다. 내가 가진 좋은 자질과 나의 정체성은 사라져 버리고 그들에게 나는 그 순간 그저 "젊은 여자"가 돼버렸다. 그들은 젊은 여성을 힘을 가진 남성들 사이에 세워 둬서 화사한 분위기를 조성해 줄 장식품쯤으로 생각을 했고, 젊은 여성이 4~50대의 남성의 시중을 드는 모습을 "좋은 그림"이라 칭했다.


나에게서 상관을 위해 커피나 좀 타오는 모습을 원한 것은, 정작 내 상사도, 선배도 아닌 "나의 가족"이었다. (출처: 위기탈출 넘버원)



작은 아버지와는 "가족"이라는 관계가,  A와는 "아버지의 사업 파트너"라는 권력이 나를 압박했고 나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심지어 그것을 확인하고자 하는 노력도 없이, 나의 성(性)은 그렇게 소비되었다.







그 자리에는 방학이라 한국을 찾은 A의 딸도 있었다. 작은 아버지에게도 그를 쩔쩔매게 만드는 딸이 하나 있다. 나는 진지하게 그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의 딸에게도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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