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눈에 대한 대책없는 확신
어른의 말 - 02_찐따 같은 교복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나는 교복 때문에 들떠있었다. 지금 입으라면 창피해서 절대 못 입겠지만, 그때는 그 촌스럽고 대책 없이 큰 교복을 입는 것이 좋았다.
또래보다 더 왜소한 체구를 가졌던 내가 교복을 입은 모습을 묘사했다면 교복을 입었다기보다 교복에 파묻혔다는 표현이 더 어울렸을 것이다. 길게 펴면 손바닥께까지 오는 상의 소매를 손가락을 접어 꼭 쥐며 다녔다. 팔을 직선으로 쭉 펴서 펭귄처럼 걸어 다니기도 했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몇몇 학생들은 학교 앞 수선집에서 교복을 줄여 타이트하게 입고 다니기도 했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거죽을 덮어쓴 것처럼 품이 큰 교복에 애착을 느껴 그런 것은 아니었다. 단지 수선집에 맡기고 다시 찾고 하는 번거로움이 귀찮았을 뿐이고, 공식적으로는 "교복 수선"이 학칙 위반에 해당하는 것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 말라는 건 (웬만해선) 하지 않으려는" 내 성향은 그때는 더 색이 짙었다.
키가 더 크길 바라는 마음에 한 치수 더 크게 사준 교복에 내 몸이 알맞게 맞춰지는 일 없이 3년이 지났고 나는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같은 재단에 있는 고등학교였고 건물도 붙어있었던 터라 신선함은 덜 했지만 새로운 교복에 대한 설렘은 여전했다. 하지만 개학을 하고 나서도 우리는 바로 교복을 입을 수 없었는데, 들리는 얘기로는, 학교가 우리가 입학하기 거의 직전에 우리 교복의 치수를 약간 크게 수정하기로 결정을 했는데, 결정하는 데까지의 일정이 예상보다 지연되었고, 그리하여 변경 사안을 반영한 교복 제작 의뢰 시기가 늦어졌다는 것이었다. 제작 주문이 늦으니 개학 시기가 가까워지도록 충분한 물량을 생산하지 못해 학교 앞 교복점을 가도 교복을 구입할 수가 없었다. 학교에서는 예외적으로 일주일 동안의 유예기간을 주었다. 입학을 하고도 우리는 일주일 동안 사복을 입고 학교를 가고 수업을 들었다. 처음 겪는 일에 당황하기도 했지만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일주일의 교복으로부터의 휴가'가 즐거웠다. 장기간 사복을 입어야 한다면 아, 매일매일 거울 앞에서 '오늘은 무슨 옷을 입지'가 고민스럽고, '사도 사도 입을 옷이 없는 것' 같은 의류 구입의 늪에 빠졌겠지만, 일주일 정도는 문제가 없었다. 일주일이라고 해도 실제 학교에 가는 날은 5일뿐이었고 5일 정도는 매일 다르게 입을 수 있을 만큼의 옷의 여유가 있었다.
아직 공기가 차가웠던 3월. 만물이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이 지났어도 아침저녁으로 부는 찬바람이 매서웠다. 거의 모든 학생들이 그때까지도 패딩 파카와 코트를 입었다. 나는 아이보리색의 스웨터 위로 허리까지 떨어지는 숏 패딩 파카를 입고 다녔는데 하단 부분으로 갈수록 통이 좁아지는 디자인으로 학생 옷 같지 않고 스타일리시 해 보이는 맛이 있었다. 요즘과 달리, 그때 학생들은 거의 화장을 하지 않았는데 가지고 다니는 화장품이라고 해봐야 입술 보습제나 선크림 정도로 미용보다는 기능을 위한 아이템이 고작이었다. 나는 가진 손이 똥손이라 화장을 어떻게 할지도 모르기도 했고, 피부가 하얀 편이라 "굳이 할 필요"를 못 느끼기도 했다. (파우더를 바르면 피부 톤이 더 어두워 보였다) 게다가 나는 "하지 말라는 건 안 하는" 소심한 원칙주의자였다.
그런 내가 쉬는 시간에 화장실에 가다가 학생주임 선생님께 잡혔다. 그분은 화장실 쪽을 향해 걷는 나를 불렀다.
"야! 너 거기 일로 와봐!"
나는 정말 당황했다. 그것은 나에게 전혀 새로운 경험이었다. 있는 듯 없는 듯, 존재감 제로에 가까운 조용하고 무난한 학교생활을 했던 내가 선생님에게, 그것도 어느 학교에서 나 공포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학생 주임"에게 불리다니. 콩알만 했던 간이 더 쪼그라들었지만, 나는 별일이야 있겠냐 싶었다. 학생주임 선생님과는 그전까지 말 한번 나눠보지 않은 사이였고, 나는 우등생은 아니더라도 모범생에 가까운 학생이었다. 감히 교칙을 위반하지 않는, 놀더라도 용인 가능한 테두리 안에서 알아서 적당히 노는 그런 학생이었다. 학생주임의 목소리가 조금 고압적이었지만, 그것은 내가 괜스레 겁먹어 그렇게 들린 것일 뿐이리라. 나는 잘못한 것이 없으니 아마도 심부름을 시키려고 부르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나를 애써 안심시켰다. 나는 경직된 몸을 풀기 위해 힘주어 미소를 지으며 학생주임에게 갔다.
"따라와!"
매서운 눈빛을 한 학생주임은 그 말만 하고 빠른 걸음으로 학생주임실에 들어갔다. 학생주임실 안에는 3~4명의 선생님이 더 계셨고 그중에 한 분만 여자였다. 학생주임의 뒤를 이어 들어가자 모든 선생님의 시선이 나에게 고정됐다. 학생주임은 나의 패딩 파카의 한 쪽을 끌어당겨 나를 전신 거울 앞에 세웠다. 나는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어리둥절하게 쳐다봤다. 혼란스러웠다. 이게 다 무슨 일이지? 나는 감히 왜 그러냐는 말을 입 밖으로 내지 못하고 차마 몸을 움직이지도 못한 채, 거울 속 나의 모습 뒤로 비치는 학생주임을 불안하게 쳐다보았다.
"네 꼬라지를 봐봐!"
"네?"
나는 그가 무서워 그의 심기를 거스르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미소를 지으려고 노력했지만, 그가 무서워서 미소를 짓기가 쉽지 않았다.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일그러진 표정밖에 지어지지 않았다.
"뭐가 잘못됐어?"
나는 거울 속 내 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봐도 도대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찾을 수 없었다. 학생으로서 교복을 입지 않은 점이 잘못이라면 잘못이겠지만 그것은 특수상황에서 학교에서 용인한 일이 아닌가. 교복을 입지 않은 학생을 잡으려고 했다면 굳이 100m 이상 떨어진 나를 잡을 것이 아니라, 그의 눈앞에 있는 학생은 잡으면 될 일이었다. 긴 머리를 풀은 것이 잘못이었나? 그것도 그럴싸한 이유가 되지 못했다. 전교생의 절반 이상은 머리를 풀고 다녔다. 왜 날까? 왜 하필 내가 여기 끌려온 것일까? 나는 궁금했다. 나의 무엇이 그렇게 잘못되었는지.
나는 어렵게 입을 뗐다.
"잘 모르겠습니다."
그는 어이없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그리고 내 머리카락을 손으로 탁 쳤다. 바깥쪽으로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이거 이거 염색한 거 아니야? 얼굴에는 화장을 떡칠을 해놓고 머리에는 노란 물들이고. 학생이 말이야.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이런 거에 정신이 칠렐레 팔렐레 빠져서는. 쯧쯧. 화장 당장 안 지워?"
내가 하지 않은 일을 했다고 내가 했다고 우기면 어떤 기분인지 그때 제대로 알았다. 멜라닌 색소가 부족하게 태어난 나는 피부가 하얀 편이었고, 몸 피부는 붉은 기가 살짝 돌았지만, 얼굴은 그마저도 없어 "창백하다", "아파 보인다"라는 말을 종종 듣곤 했다. 자연히 머리카락 색깔도 갈색이었다.
정말 억울했다. 이 사람은 왜 나를 많은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죄를 지은 사람인 양" 나를 끌고 왔으며, 나의 몸을 자기 맘대로 끌고 와 거울 앞에 세웠을까. 어깨까지 내려온 내 머리카락을 툭 하고 튕겨도 되는 자격은 누가 부여한 것이며, 학생주임이라는 그의 직책이 상대에게 물어 제대로 된 사실을 확인하지도 않고 그 사람을 "염색하고 화장하는 정신 빠진 학생"이라 결론 지을 권한을 줄만 한 것인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맹세컨대, 나는 그의 무례를 정당화할 수 있을만한 그 어떤 행동도 나는 하지 않았다. 나는 무고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고 나 스스로 떳떳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의 권위 앞에서 '혹시나 나의 결백이 밝혀지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자신의 눈과 감을 과신하는 사람은 본인이 틀렸다는 것을 좀처럼 인정하지 않는 법이다. 그가 나를 교칙을 위반하여 화장하고 염색한 학생으로 본 그 순간, 나는 그런 학생이 된 것이다.
"저 진짜 화장 안 했어요. 이것도 원래 제 머리예요. 자연갈색이에요"
나는 억울함을 호소했다. 학생주임실에 있는 모든 선생님들이 내가 당하는 모욕을 그대로 지켜봤다. 그들도 나를 "공부는 안 하고 멋이나 부리는 학생"으로 보았을까. 그들도 내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을까.
나를 구해준 것은 학생주임실 내에 유일하게 나와 같은 성별을 가진 젊은 선생님이었다. 그 선생님은 내게 가까이 다가와 나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봤다. 얼굴과 목, 손까지 찬찬히 살폈다.
"선생님. 진짜 화장 안 한 것 같은데요."
학생주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를 그대로 주시했다.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곧이어 울린 수업 시작종이 스스로 자초한 수치에서 벗어날 수 있는 명분이 되어주었다. 꾹 다문 입을 열어 그는 나에게 퉁명스레 말했다.
"..... 그만 가봐."
나는 그에게 사과의 말을 기대했지만 그는 내게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혐의가 벗겨진 것에서 오는 안도감과 사람들 앞에서 창피를 당한 수치심, 억울한 누명이 씐 것에 대한 분노가 내 마음속에 들불처럼 번졌다. 격한 감정을 주체하기 어려워 눈가에는 물기가 차올랐다. 내 말의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 내 앞에 가까이 섰던 여자 선생님은 그것을 눈치챈 것 같았다. 본인의 책상에서 티슈 한 장을 뽑고서는 나를 위로하려는 듯 그것을 내게 칭찬의 말과 함께 건넸다.
"아고~ 피부가 참 뽀얗고 예쁘네. 넌 화장 안 해도 되겠다. 안 해도 한 거 같이 하얘서 주임 선생님이 착각하셨나 보다. 자. 수업 시작하겠다. 얼른 올라가 봐"
학생주임실을 나갈 때까지, 그는 내게 사과하지 않았다.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는 내게 미안한 마음이 손톱만큼이라도 들기는 했을까? 나는 아직도 그 답을 알 수 없다.
며칠 후, 나는 교복이 나오자마자 바로 그것을 사 입었다. 과연 "아빠 마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품이 컸다. 어찌나 컸는지 나중에는 선생님들이 "적당히 줄여 입어도 좋다"라고 용인해 줄 정도였다. 반 아이들이 하나 둘, 교복을 줄여 입기 시작했지만, 나는 볼품없이 큰 재킷과 대책 없이 긴치마를 그대로 입고 다녔다. 나의 친구들은 제발 그 "찐따 같은 교복" 버려버리라며 나에게 수선을 권했지만 나는 꿋꿋이 그 옷을 입고 다녔다. 억울한 오명을 입는 것보다 "찐따 같은 교복"을 입는 것이 차라리 나았다.
그 일이 있고 나서 복도에서 몇 번 그를 마주친 적이 있다. 그는 나를 기억하고 있을까. 무릎 밑으로 새끼손가락만큼 더 내려오는 치마를 입은 내가 그의 눈에 여전히 "화장과 염색을 한 정신 빠진 계집애"로 보였을까. 이를 악물고 눈물이 가득 고인 눈을 하고는 주임실을 나간 학생의 등 뒤로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는 그 일이 있고 나서도, 계속 자신의 눈을 믿으며 살 수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