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레언니 Apr 16. 2024

면접교섭일은 왜 빨리 돌아오나

 이혼을 하면서 6살 딸아이에게 엄마가 아빠와 함께 살 수 없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물론 아이가 이해할 수 있는 만큼만, 아이가 이해할 수 있는 방향으로. 그때까지만 해도 아이는 아빠에게 우호적이지 않았다. 그도 그랬을 것이 주말엔 본인 힘들다며 늦게까지 잠을 잤고, 아이와 블록 놀이를 할 때에도 '아이와 함께 노는 것'보다 본인이 만드는 것에 집중했다. 멋지게 만들어진 블록모형을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표면적 이유가 있었지만, 자신이 만드는 재미에 푹 빠져서 아이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은 뒷전인 사람이었다. 클레이점토를 갖고 놀아줄 때에도 아이는 여러 점토를 아무렇게나 만져보고 싶어 했고, 말랑말랑한 그 촉감을 좋아했다. 하지만 아이아빠는 역시나 본인 작품 만들기에 빠져서 아이에게 어떠한 놀이의 틈도 주지 않았다. 결국 완성된 클레이 작품은 예쁘고, 귀엽기는 했지만 '아이와 함께'가 빠져있었고, 어쩌다 아이가 본인 작품을 보고 싶어 하면 작품이 망가질까 전전긍긍하며 멀리서 눈으로 보게만 했다. 자칫 딸이 떨어뜨리거나 만져 뭉개기라도 하면 삐쳐서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아이는 아빠와의 놀이를 선호하지 않았고, 놀더라도 금방 그 시간에서 벗어나곤 했다. 때로는 아빠에게 싫다고 소리 지르고 가까이 오지 말라며 도망가기까지 했었다.


 그러던 아이가 엄마의 이혼 발표를 듣더니 태도가 180도 변하기 시작했다. 아빠랑 더 놀고 싶어 했고, 아빠가 뜻대로 해주지 않아도 떼쓰지 않았다. 아빠의 짓궂은 장난에 울거나 짜증 내지 않았고 블록을 갖고 놀거나 클레이를 만들 때에도 이전과는 다르게 얌전히 앉아 아빠가 작품을 완성할 때까지 군말 않고 기다렸다. 사실 아이의 태도만 변한 것은 아니었다. 아이아빠도 아이가 원하는 대로 해주려 했고 설령 그것이 아이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여도 아이가 원한다면 분별없이 제공해주곤 했다. 완전한 이혼과정이 끝나서 그가 집에서 나가기 전까지 '엄마 몰래' 사 먹은 젤리와 음료수가 한가득인걸 알면서도 눈감아주곤 했다.





 협의 이혼이라도 깔끔하고 깨끗할 수 없기에 양육권, 친권, 재산분할, 양육비 등을 협의하면서 크고 작은 싸움이 있었도 그때마다 내 마음속엔 지금까지 쌓여왔던 분노와 다른 양상의 미움이 자리 잡게 되었다. 그 사람의 밑바닥을 보는 순간도 많았고, 내가 선택해서 결혼까지 했던 사람이 원래는 저런 인간이었나 하는 마음에 나 스스로를 원망하기도 했다. 그런 마음이 내 마음에 가득함에도 이혼을 협의하면서 '면접교섭권'에 대해서는 내가 가진 상대를 향한 미움과 분노와는 상관없이 아이의 의견과 생각을 반영해주고 싶었다. 아이의 태도변화에서 느껴지는 아이의 심경의 변화가 크게 느껴진 것은 물론이고, '면접교섭'자체가 아이를 객체로 보지 않고 주체로 보는 아이의 권리라는 재판장님의 말씀에 따라 내 이혼으로 상처받을 아이의 권리만큼은 지켜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아이에겐 한 달에 2번으로 면접교섭권이 정해졌고, 기타 면접교섭으로 아이아빠가 1년에 2번 정도 1박 2일 여행을 제시하기에 그렇게 하기로 했다. 사실 함께 살 때에도 본인일이 바빠서 다 같이 여행 가본 게 손에 꼽는데 이제 와서 아이를 데리고 여행을 하려 하는 모습에 퍽이나 우습게 여겨졌지만 이 또한 아이를 위해서 내가 십분 양보했다. 

 2, 4주 일요일이 면접교섭일인 것은 아이의 친할아버지 시간 때문이었는데, 사실 아이를 마주해야 하는 것은 아이아빠 본인임에도 할머니, 할아버지 시간에 맞춰 면접교섭일을 정하는 것조차 맘에 들지 않았다. 남자들은 결혼하면 갑자기 효자가 된다고 했던가, 언제부터 본인이 어머님, 아버님 없이는 못 사는 사람이었다고 부모님을 챙기는 모습조차 하나 맘에 드는 것이 없었다. 아마도 이런 마음은 내 마음의 미움이 가득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지만.








 그렇게 정해진 면접교섭일만 되면 나는 두통이 심해졌다. 첫째는 면접교섭만 하고 오면 짜증이 심해지는 딸 때문이었다. 아이는 아빠 보러 가는 날을 좋아했지만 이상하리만치 다녀오면 괜한 짜증이 과해지고, 자기 뜻대로 안 되는 것을 견디질 못했다. 이후에 아이랑 두런두런 이야기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면접교섭일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계셨고, 특히나 할머니의 과한 잔소리와 편치 않은 말들이 아이를 힘겹게 했던 것 같다. 결혼 생활 내내 그랬지만 어머님은 불평과 불만을 입에 달고 사시는 분이었고, 얼굴을 뵐 때마다 어디가 한 군데씩 꼭 아프다 말씀하시던 분이었다. 그러기에 불 보듯 훤하게 아이에게 대하는 말투며 표정이 어땠을지는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렇지만 아이는 불편하다고 제 아빠에게 말하지 못했던 것 같고 그저 그러한 부정적인 말들과 행동 가운데 오롯이 견뎌내야 했던 것 같다. 그러니 나름 편한 제 집에 오고 나면 그간의 설움과 짜증을 다 표현해 낼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싶다. 게다가 아이랑 노는 방법을 모르는 전남편은 무작정 아이가 좋다고 하면 무분별하게 영상이나 미디어를 접하게 했고, 아이가 사달라고 하는 건 무엇이든 사줬다. '엄마 몰래'


 아이를 그런 무분별하고 마음 어려운 상황에 혼자 둔 것이 미안하기도 하고, 사람은 참 안 변한다고 결혼생활 중에도 시댁일로 싸움이 잦았는데 여전히 그러는 모습에 화가 나기도 했다. 몇 차례 아이 앞에서 조심해 줬으면 좋겠는 것을 문자로 전했지만 고쳐지는 부분은 없었고 변명과 떠넘기기식으로 대처할 뿐이었다.



 두 번째로는 면접교섭을 마치고 돌아오면 아이가 본인이 잘 놀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인지 제 멋대로 하거나 짜증을 부리면서도 친할머니, 할아버지가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는 것이다. 그게 잘못은 아니지만 문제가 되는 것은 '할머니는 이거 맛있게 해 주는데.', '할아버지가 진짜 재밌게 놀아줬어.'와 같은 말을 하면서 현재 같이 살고 있는 나의 친정부모님과 마치 비교하는 것처럼 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그러다 보니 그 상황에서 나는 부모님의 눈치를 보게 되고 그렇다고 아이에게 '하지 말라'라고 하기도 애매했다. 특히 엄마는 그 말에 생각보다 상처를 많이 받곤 하셨는데, '내가 네 딸한테 어떻게 해줬는데 저렇게 말을 하냐?'와 같은 말을 하실 때면 숨을 곳 없는 죄인이 된 것 마냥 나 자신이 한없이 작고 초라해졌으며 양 쪽 모두에게 미안함을 금치 못했다.


 셋째는 면접교섭일마다 찾아오는 공허함이었다. 병치레로 인해 휴직상태였기에 1년 365일 24시간 아이랑 붙어있었고, 뭘 하든 함께 했는데 그런 아이가 면접교섭일에 뒤도 안 돌아보고 홀연히 떠나버릴 때가 있어서 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다 뒤돌아서면 나 또한 갑자기 찾아오는 공허함에 눈물 훔치기 일쑤였다. 이제는 일 년 반 남짓되니 익숙해진 마음도 있지만 여전히 텅 빈 마음은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이 주에 한 번, 이라는 시간이 이렇게나 짧은지 이전에는 미처 몰랐으나 겪어보니 참 빠른 시간임을 새삼 느낀다. 나도 싱글맘은 처음이라 이 또한 받아들이고 견뎌야 하겠지. 요즘 딸아이는 친구들과 주말에 노는 재미에 빠져서 아빠는 한 달에 한 번만 봐도 되겠냐고 묻는다. "엄마가 그걸 말해줄 수는 없는 문제다. 엄마가 말하면 아빠 식구들은 엄마가 너를 보지 못하게 하려고 거짓말하는 줄 알 거다."하고 말해줬지만 본인 입으로 아빠 그만 보고 싶다는 말을 하기는 어려운가 보다. 마치 나와 아이 아빠가 따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전했을 때 본인의 태도가 바뀌었던 것과 같은 이유일 거라 추측해 본다. 




아이의 마음이 예뻐서 미우나 고우나 아빠는 아빠기에 상처 주고 싶지 않은 그 마음 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