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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레언니 May 07. 2024

알 수 없는 너의 마음 (1)

진심은 어디로?

직업이 교사다 보니 매 시즌 찾아오는 학부모 상담 때 종종 이런 말을 듣곤 한다.


"선생님, 도대체 걔가 왜 그럴까요? 제 딸(혹은 아들) 마음이 뭘까요?"


그러면 나는 학교에서 마주할 수 있는 아이의 모습이나 행동, 말들을 관찰했던 것을 종합하여 그 아이가 왜 그런 행동을 보이는지에 내 의견을 말씀드린다. 나의 신출귀몰한 직업적 특성인지 3월 한 달 아이들을 관찰하다 보면 그 아이의 행동의 원인을 잘 찾아내곤 했다.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는다고 했던가, 지금까지 나와 나눈 이야기들과 관찰된 행동, 어린이집 선생님과의 상담을 다 종합하더라도 내 딸의 행동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사건이 일어났다.



7살이 된 딸은 6살 하반기부터 부쩍 친구들과 만나서 노는 일들이 많아졌다. 주중엔 어린이집과 태권도로 오후에 시간이 전혀 나질 않으니 주말에 친구들과 따로 약속을 잡아 만나야 했다. 그중, 한 친구는 유독 집도 가까웠고, 우리 딸로 인해서 그 부모까지 교회를 다니게 되어서 더 가까이 지냈다. 이미 딸의 어린이집 친구 엄마들에게는 이밍아웃을 한 상태였기 때문에 우리 딸이 친구들과 더 편히 놀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던 것이었다. 


문제는 주말은 토요일과 일요일뿐인데 딸은 한 달에 두 번 일요일에 면접교섭권이 잡혀있었다. 한 달에 두 번이라고 하면 그리 많지 않은 듯 보이지만 생각보다 그 시간은 빨리 돌아왔고, 그 때문에 딸아이의 친구들과 약속을 번번이 잡지 못하게 되는 일이 생기곤 했다. 특히 더 친밀히 지낸다는 친구와는 유치부예배가 끝나고 나면 함께 점심을 먹고 놀이터에 가서 놀고 싶은 딸의 마음이 컸지만, 면접교섭권이 있는 날이면 예배가 끝나자마자 부랴부랴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아빠에게 가야 했기에 꽤나 그 마음이 어려웠던 것 같다.


지난 2월쯤부턴가 딸은 내게 이런 부탁을 해왔다.


"엄마. 아빠 한 달에 한 번만 보면 안 돼?"

"왜? 공주, 아빠랑 만나서 노는 거 좋다고 했잖아."

"그랬었는데.. 한 달에 한 번만 봐도 될 것 같아서."


면접교섭권에 아빠를 만나러 가면 딸은 항상 할머니, 할아버지를 함께 봐야 했다. 아이 아빠는 딸아이와 단둘이 보내는 시간이 없었고, 항상 자신의 부모를 대동했다. 언제부터 그렇게 효자아들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 피가 섞인 아이를 부모에게 봬줘야 한다고 생각했고, 늘 2주에 한 번씩 이루어지는 면접교섭도 부모와 함께였고, 아이를 데리고 오고, 데려다주는 시간에도 그 부모는 함께였다. 심지어 면접교섭권이 일요일로 정해진 이유도 (구) 시아버님의 일정 때문이었는데, 토요일까지 일하시는 (구) 시아버님 때문에 일요일만 가능하다고 했다. 아이가 일요일엔 교회를 다녀와서 좀 쉬고 다음 날 어린이집에 등원해야 한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아직은 아이기에 전 날에 무리하게 놀면 분명 다음 날 등원에 어려움이 생기곤 했기에 아이를 위해서는 토요일이 가장 좋은 때였지만 그렇게 정해지지 않았다. 


딸아이가 아빠를 만나러 간 일요일에 아이 아빠는 주중에 쉬지 못하고 일한 것 때문에 잠을 잤고, 자신의 깨우려 들면 할머니가 '아빠 피곤하니 깨우지 마라.'라고 했다는 말과 아빠랑 놀 때 아빠가 핸드폰만 봐서 "아빠. 핸드폰 그만 보고 나랑 놀자."라고 하면 "이것만 좀 하고."는 답변이 돌아왔다는 말을 종종 들어왔기에 친구와 놀고 싶은 마음과 함께 아빠를 만나러 가도 자신에게 집중하지 못하는 아빠의 모습에 실망이 컸기 때문에 면접교섭일정을 조정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생긴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렇다고 해도 내가 (구) 남편에게 면접교섭권 일정을 조정하자고 말할 수 없었다. 이미 작년 수술로 인해서 먹고살기가 어려웠을 때 딸아이의 양육비 조정을 제안하였지만 거절당했기에 면접교섭권에 대해 딸아이의 마음을 전한다고 해도 분명 곧이곧대로 들을 리 없었다. 내가 딸아이를 시켜서 보지 못하게 하려 한다고 생각할 것이 눈에 선했다.


"공주야. 엄마는 그 말을 대신해 줄 수 없어."

"왜?"

"음.. 공주 마음은 아플 수 있지만 엄마랑 아빠가 사이가 좋지 않아서 따로 살기로 결정한 상황에서 엄마가 공주를 덜 보게 해 준다고 말하면 그게 설령 공주의 진심이라도 아빠가 믿을 리가 없지."

"아..."

"그러니 공주가 정말 한 달에 한 번만 보길 원한다면 직접 말해야 해."

"아빠가 싫어하면 어떻게 해?"

"싫어할 수 있지. 좋아하진 않을 거야. 그렇지만 공주의 마음이 우선이야. 불편한 데 억지로 할 필요는 없어. 그래야만 하는 일이 있기도 한데, 적어도 이건 그런 일은 아니야."


이혼할 당시 가정법원에서 들었던 이야기는 면접교섭권만큼은 부모의 권리가 아닌 자녀의 권리이고 복리이기에 자녀가 원한다면 내가 싫더라도 이행해야 한다고 했다. 마음 같아서는 (구) 남편과 딸의 조우가 편하지 않고 그만하게 하고 싶은 일이었지만 딸이 아빠를 만나고 싶다고 했기에 지켜왔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그리고 아이의 마음이 달라졌다. 그렇다면 이 부분도 달라져야 했지만 내가 아이 대신 말해줄 수 있는 노릇도 아니었다.






그렇게 두세 달이 흐른 4월 중순 또다시 면접교섭권날이 다가왔다. 자신도 결심을 한 냥 아침부터 눈을 뜨자마자 딸아이는 침대에서 내 곁으로 바짝 다가오더니,


"엄마. 나 오늘은 아빠 만나서 얘기해 보려고. 한 달에 한 번만 보고 싶다고."


용기를 낸 딸아이를 안고 기도해 주었다. 이 아이가 어떤 상황에 놓이든 너무 많은 상처를 받지 않기를. 아이가 아이아빠와 함께 떠나고 나 홀로 집에 돌아와 거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 후로 아이가 돌아올 때까지 아이 걱정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구) 시댁의 성향과 각 사람들의 기질을 알았기 때문에 아이에게 뭐라고 얘기할지 불 보듯 뻔히 보이는 기분이 들어 안절부절못하고 어떤 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심지어 아이아빠에게 '어딘가에 도착했다.'는 문자도 오지 않았기에 걱정은 더 커졌다. 보통은 면접교섭일에 아이들 데리고 가면 (구) 시댁으로 가면 '집에 도착했어'와 같은 딸의 신변이 안전하다는 문자를 보내오곤 했는데, 그날은 어떠한 문자로 보내지 않았다. 그랬기 때문에 내 추측으로는 차에 타자 마자 아이가 아빠한테 얘기를 했고, 그래서 분위기가 좋지 못했을 것으로 예상했다.


아이는 무탈하게 돌아왔다. 돌아온 딸은 울먹이며 말을 이었다.


"엄마, 나 아빠한테 얘기했는데 아빠가 안된데."

"왜? 그 말하자마자 다른 말을 안 하고 그냥 안된다고 했어?"

"그냥.. 안 된대. 그리고 할머니도 그건 안 된다고 했어."



속이 뒤집히는 순간이었다. 아이의 마음을 전혀 살피지 않은 노릇이 아닌가. 분명 아이는 제 속마음을 힘겹게 말했을 것이고 어른의 욕심에 그러고 싶지 않다 하더라도 아이의 마음을 살펴봐주는 모습 정도는 갖췄어야 했다. 그럼에도 단칼에 거절이라니. 딸의 마음이 걱정됐고, 그 순간에는 엄마로서 뭐라도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주야. 너는 아빠 한 달에 한 번만 보고 싶은 마음에 변함이 없어? 아빠가 거절했다면 한 달에 두 번 봐야 하는데 그거 괜찮아?"

"음.. 엄마, 아니. 나 그렇게 안 하고 싶어."


내가 정말 하고 하고 싶지 않고, 끝끝내 미루려고 했던 일을 해야만 하는 순간이라 느꼈다. 따뜻한 물로 아이를 씻기고는 구몬 숙제를 하도록 해놓고는 핸드폰을 들었다.


공주가 속상하다면서 집에 와서 울더라. 공주가 두 달 넘게 고민하고 나한테 얘기해 달라고 했던 건데 내가 거절했었어. 아빠를 한 달에 한 번만 만나고 싶다는 걸 엄마가 얘기해 주면 오해가 생길 거라고... 말하고 싶은 걸 어떻게 말해야 하나 공주가 나름 고민하다가 말했나 본데 네가 그건 공주 마음대로 안 되는 거라고 했다면서 속상하다고 그러더라. 면접교섭권이라는 것 자체가 아이들 권리이고 나는 공주가 처음엔 너 보고 싶다 해서 한 달에 두 번 만나도 된다고 했던 거였어. 그리고 공주가 아프거나 네가 출장 가지 않는 이상 늘 두 번씩 봤었고... 공주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진 어린이집 갔다가 태권도 다녀오니까 시간이 없고, 그건 공주 친구들도 마찬가지고.. 주말에만 친구들이랑 만나서 놀 수 있어서 그 점을 너무 아쉬워해. 너는 오늘 들어서 당황스러웠을 수도 있겠지만 공주 마음을 좀 헤아려주길 바란다. 공주가 좀 더 크면 안 보겠다고 할 수도 있는 거라고 생각이 들기도 해. 나도 공주한텐 아직 어리니까 아빠는 공주 더 보고 싶어 할 거라고 계속 말해줬지만 공주는 여전히 한 달에 한 번만 보고 싶다고 한다. 네 마음이 이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이건 순전히 공주를 위한 거니까 공주 마음이 먼저라고 생각해. 고민해 보고 이번주 내로 연락 줘.


답장이 온 것은 장문의 문자를 보낸 지 채 2분이 지나지 않아서였다.

문자에서 본 첫 문장은 다음과 같았다.


공주는 나한테 그런 얘기 안 했어


결혼생활 내내, 그리고 이혼 후에도 면접교섭권 이행시 문제가 생겼을 때 거짓말로 문제를 무마하려던 그 기질을 못 벗어내고 지금과 같이 딸과 관련된 일에서도 거짓말을 하는가 싶어서 순간 벙쪘지만 '어떤 변명을 하나 보자.' 싶은 마음에 문자를 눌러 읽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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