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고비도 막지 못한 식욕, 그리고 가득 찬 뇌

94로 사라졌다 100으로 돌아왔어요… 허허허

by 이레언니

지난 5월 이후, 이곳에 글을 남기지 못하는 동안 참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저를 괴롭히던 근본적인 문제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더군요.

오늘은 그 지난한 투쟁의 기록과, 다가오는 월요일부터 다시 시작될 100일간의 여정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보려 합니다.


다이어트는 제게 미용의 문제가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 불가결한 요소입니다.

하지만 지난 시간은 실패의 연속이었습니다.

비만 치료제 시장의 게임체인저라 불리는 ‘위고비’조차 저의 식욕을 완전히 제압하지는 못했습니다.

원인은 명확했습니다. 바로 ‘스트레스’였습니다.


과도한 스트레스는 코르티솔을 분비시킵니다.

높아진 코르티솔 수치는 보상 기제로 뇌에서 도파민을 강력하게 요구하게 만들고,

저는 그 도파민을 얻기 위해 밤마다 야식을 입에 넣었습니다.

약물학적 기전조차 무너뜨리는 호르몬의 악순환이었습니다.


운동은 기껏해야 빠르게 걷기 정도가 전부였습니다.


PT를 시도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스스로를 ‘루저 중의 루저’라 칭할 만큼, 운동을 가르치는 선생님을 까다롭게 가리는 예민한 회원이었습니다.

강사의 태도나 말투, 사소한 것 하나라도 맞지 않으면 운동 자체가 하기 싫어지는, 핑계 가득한 방어 기제가 작동했기 때문입니다.


일명 ‘스텝퍼 아줌마’를 알게 되어 야심 차게 스텝퍼도 구매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이미 세 자릿수로 불어난 체중을 무릎이 견디기엔 역부족이더군요.

매일 오르려 노력했지만 20분을 넘기기가 힘들었습니다.

결국 헬스장에 가서도 러닝머신 위만 주구장창 걷다 오는 것이 저의 유일한 운동 루틴이었습니다.




변곡점은 새로운 헬스장에 등록하면서 찾아왔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든든한 ‘페이스메이커’를 만났습니다.


그는 감정적인 독려보다는 조목조목 논리적인 설명으로 저를 설득하는 트레이너였습니다.

무엇보다 등록 시 제공되는 무료 OT에서 그가 던진 한마디가 저를 움직였습니다.


“회원님, 자세를 보니 운동을 해 본 티가 나는데요?”


빈말이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숱한 실패 속에서 위축되어 있던 제게, 그 말은 묘한 효능감을 주었습니다.


‘아, 나도 하면 할 수 있는 사람이지.’


왠지 더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겼고, 그 길로 망설임 없이 PT 30회를 결제했습니다.

현재 5회를 진행했고 아직 육안으로 보이는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100일, 이 숫자가 다 채워질 때쯤의 변화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사실, 몸만 무거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마음의 상태는 더 위급했습니다.

숨 쉬기가 어렵고, 순간적으로 치미는 화를 참지 못하는 등 감정 조절에 난항을 겪었습니다.

분노 조절 장애가 의심되어 다시 정신과를 찾았습니다.

밖으로 드러나는 분노는 없었지만, 제 속에서 불같은 화가 뜨겁게 피어오를 때가 많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를 자해하고 싶다든지, 뭔가를 던지고 싶은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기에 결국은 다시 정신과로 향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처음으로 저를 압도하는 선생님을 마주했습니다.

MMPI(다면적 인성 검사) 결과는 예상대로였습니다.

우울증, 자살 사고, 분노, 억울함의 수치가 모두 높게 나왔습니다.

하지만 정량 뇌파 검사결과는 의외였습니다.

단순히 우울한 상태가 아니라, 흥분 지수가 매우 높게 측정된 것입니다.


의사 선생님은 이를 두고 “뇌가 가득 차 있다”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생각할 수 있는 여유 공간이 전혀 없는 상태. 뇌가 과부하 상태이다 보니 극도로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고,

이는 곧 강한 고집과 아집으로 이어졌습니다.

내 생각과 내 기준만으로 세상을 바라보니, 타인의 행동이 모두 공격으로 느껴지고 피해의식이 높아져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처방이 바뀌었습니다.

단순히 우울감을 달래는 것이 아니라, 뇌파를 안정시키는 것이 우선이었습니다.

전혀 잠을 자지 못하는 저를 위해 내성이 생길 수 있는 수면제 대신 신경안정제를,

아침에는 무기력감과 뇌의 과잉 흥분을 가라앉히는 약을 처방받았습니다.

이제 투약 4주 차, ‘나름’ 잠을 잘 자게 되었습니다.


나름’이라는 단어를 붙인 것은 아직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지만, 적어도 이전보다는 나아진 상태입니다.

제 치료는 오래 걸릴 거라고 말씀하셨기에 조금씩 나아지는 것에 만족합니다.

마치 제가 다시 시작하려는 다이어트와 같겠죠.


돌아오는 월요일부터 저는 ‘몸과 마음의 다이어트’를 다시 시작해보려 합니다.

약물에만 의존하지 않고 땀을 흘리며 몸의 지방을 덜어내고,

약의 도움을 받아 확보된 뇌의 여유 공간을 통해 마음의 찌꺼기를 덜어내는 작업입니다.


솔직히 두렵습니다.

또다시 의지박약이 터져서 중간에 멈추지는 않을까,

100일이라는 시간을 내가 견딜 수 있을까. 하지만 이번만큼은 도망치지 않고 기록으로 남기며 저를 붙잡아보려 합니다.


하쿠나 마타타.


모두 다 잘 될 것입니다. 이 주문이 저의 100일간의 여정에 유효하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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