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다이어트를 망치는 불청객

누구냐, 넌?

by 이레언니



이번 주도 어김없이 다이어트와의 전쟁은 계속되었다.

매일 반복되는 식단과 운동, 그 지루한 싸움 속에서 소위 말하는

'운동태기(운동 권태기)'가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벌써?"라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지만,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축 늘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내 다이어트를 진정으로 위협하는 존재는 단순한 권태감이 아니었다. 운동하기 싫다는 마음보다 훨씬 더 위험하고, 시급하게 해결해야 하며, 심각한 장애물이 도사리고 있었으니, 바로 '호르몬'이라는 녀석이다.


나를 괴롭히는 이 호르몬들을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배란 주기마다 꼬박꼬박 찾아와 몸을 붓게 만드는 생리적 호르몬이고, 다른 하나는 스트레스와 짝을 이뤄 나를 공격하는 '코르티솔'이다.


먼저 배란일과 생리 주기에 맞춰 널뛰는 호르몬은 정말이지 야속하다. 이 시기가 되면 내 몸은 물 먹은 솜처럼 무거워지며 심한 부종에 시달린다.


나는 유독 붓기가 심한 체질이라, 부종만으로도 체중계 숫자가 3kg 가까이 오르락내리락한다. 심지어 같은 날 아침과 저녁의 몸무게 차이가 2kg에 육박할 때도 있으니,


100g의 감량에도 일희일비하는 다이어터에게는 그야말로 쥐약이나 다름없다.


한 달을 4주로 계산해 보자.

배란기 1주, 생리 기간 1주


이렇게 퉁퉁 부어있는 2주를 제외하면 온전한 컨디션으로

다이어트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 2주 남짓이다.

그 짧은 '황금기'에 바짝 조이고 땀을 흘려야만

겨우 눈에 띄는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는 사실이 때론 가혹하게 느껴진다.


문제는 이 시기에 찾아오는 것이 부종뿐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몸이 무거워지니 마음도 가라앉고, 만사가 귀찮아지는 '귀차니즘 호르몬'까지 합세한다.

평소보다 공기는 더 차갑게 느껴지고,

러닝머신 위에서 유일한 낙이 되어주던 예능 프로그램조차 재미없게 느껴진다.


머릿속은 온통


"아,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는 생각으로 가득 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무거운 몸을 이끌고 헬스장으로 향해야 할 때,

내 안에서는 또 다른 전쟁이 벌어진다.


바로 스트레스 호르몬이라 불리는 '코르티솔'의 등장이다.


코르티솔은 우리가 긴장하거나 고통스러울 때,

혹은 스트레스를 받을 때 부신 겉질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이다.


본래 이 호르몬은 스트레스라는 적에 맞서

우리 몸이 싸울 수 있도록 에너지를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간에 저장된 글리코겐을 끄집어내고,

근육의 단백질까지 분해해서 에너지로 쓰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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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다이어트의 관점에서 보면 코르티솔은 명백한 방해꾼이다.

스트레스에 대항하기 위해 비상식량을 비축하려는 본능 때문에,

코르티솔은 끊임없이 뇌에 "음식을 더 먹어!"라고 신호를 보낸다.


우리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맵고 단 음식이 당기고 소위 '입이 터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게다가 근육을 분해해 에너지로 써버리니 기껏 운동해도 근육은 잘 붙지 않고,

오히려 복부에 지방을 차곡차곡 쌓아두려 한다.

혈압을 높이고 식욕을 돋우며 뱃살의 주범이 되는

이 녀석 때문에 신진대사의 균형은 무너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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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한 주는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배란기의 부종, 짓누르는 귀차니즘,

그리고 코르티솔이 유발하는 가짜 식욕과의 치열한 사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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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먹고 싶어서 호르몬 핑계 대는 거 아니야?"라고 묻는다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코르티솔 핑계를 대고 싶을 만큼 식욕이 돌았지만, 나는 꾹 참아냈다.

매 끼니 사진으로 남기지는 못했어도 나름대로 철저하게 식단을 지켰고,

무거워진 몸을 이끌고 헬스장으로 출석 도장을 찍었다.


그런데... 결과는 처참했다.

배신도 이런 배신이 없다.

체중계 위에 올라선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지난번 분명 98.4kg라는 숫자를 확인하며 희망을 가졌는데, 오늘 눈앞에 찍힌 숫자는 99.7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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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kg.

그것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었다.

나의 인내와 노력을 비웃으며 다시 쳐들어온 반항군 같았다.

귀찮음을 이겨내고 운동화 끈을 조여 맸던 시간들,

야식이 당기는 밤을 맹물로 달래며 버틴 밤들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호르몬의 장난질이라 머리로는 이해하려 해도,

마음 한구석의 허탈함은 채워지지 않는다.


이대로 괜찮은 걸까?

오늘도 나는 퉁퉁 부은 다리를 주무르며,

야속한 체중계를 멍하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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