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독일에서] 독일어 키보드를 산다는 것

이제야 비로소 독일어 자판

by 노란대문

IT얼리버드인 아버지를 두면 벌어지는 일. 내 손으로 비싼 값을 치르며 사는 IT제품은 핸드폰이 전부인 그런 세상에서 살게 된다. 컴퓨터가 이제 막 보급되던 시절 우리 집 한켠에 들어온 녀석으로 나는 강아지 게임을 했고, CD플레어이가 등장하던 시절에는 당연스럽게도 그런 것들이 속속들이 집으로 입주했다. MP3, 엠씨스퀘어, 녹음기, 무선 이어폰 등등 세상에 갓 태어나 이제 막 빛을 보기 시작한 녀석들을 씹고 뜯고 맛볼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노트북도 아빠가 골라주시는 것을 냉콤 감사하게 받아 오던 유학생이었다.




하지만 시간을 빠르게도 흐르고 나는 안드로이드를 주로 사용하시는 부모님과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 목폴라를 입고 사과 농장을 경영하던 분이 세상에 야심 차게 내놓은 한입 베어문 사과. 가격은 비싸지는데 어째 포함되는 부속품들은 점점 줄어드는 극악의 사과농장에 발을 들였달까. 아이패드, 아이폰 , 에어팟까지 사용했지만 컴퓨터만큼은 윈도우에서 나고 자란 사람처럼 외길을 고수했다. "한글" 프로그램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 맥의 세상은 너무나도 낯설고 가까워지기엔 먼 당신 같은 마음이었다. 그러나 카카오톡과 이메일로 나와 나의 소통에 그만 지쳐버려 언젠가는 맥을 사고야 말리라는 굳은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뿐이랴 어쩜 이렇게 때가 다가왔다는 듯이 나의 노트북은 백기를 흔들어대었다. 윈도우 업그레이드를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며 경고 알람만 무수히 띄우던 삼성 노트북. 그렇게 모아놓은 쌈짓돈과 블랙프라이 데이가 힘을 합쳐 새로운 세계로 인도해 줬다.


모르는 새에 발전한 세상은 손바닥만 한 본체를 보여주며 '이것이 그 거대하던 컴퓨터 본체의 현주소이다'라며 나를 반겼고, 그간 마주 할 이유 없이 나만의 느릿한 세계에서 살던 사람은 그만 길을 잃고 말았다. 반은 아날로그로 영원히 돌아가는 것만 같은 독일에서도 이런 변화의 급물살을 타는 세상이 있었다니. 온갖 컴퓨터와 소프트웨어와 씨름하는 것이 일상 중 하나인 친구의 도움을 받아 걷어낼 것은 걷어내고 필요한 것만 추려서 사과농장의 속임수에서 겨우 빠져나왔다. 설명만 읽어보면 모니터도 사과농장, 마우스도 사과농장, 키보드부터 이것저것 온갖 사과의 아이콘을 단 것들을 구매해야만 할거 같았다. 하지만 꼭 필요한 것들을 제외하고는 가성비와 실력으로 무장한 것들로 속속히 집을 채웠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새로 장만한 "로지텍 웨이브 키보드"이다.


사실 여기까지 읽어보면 뭐 그냥 "Mac mini" 사는 김에 이것저것 다 샀다는 말 아닌가? 이게 칼럼의 주제가 돼? 싶을 거다. 사실 맞다. 블랙프라이데이를 맞이해서 이것저것 샀다는 말이 맞기는 한데,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은 '독일어 자판'을 샀다는 것이다.


읽는 것, 기록하는 것을 즐겨하는 사람이 나라를 옮겨서 잔뿌리를 내린다는 것에는 의미가 생긴다. 언어의 부재가 가져오는 빈 공간이 그러하다. 기록에서 정체성을 가지는 사람은 익숙함과 유창함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익숙함은 시간이 채워주지만 유창함의 그릇은 쉽게 채워지지 않는다. 시간으로도 노력으로도 그것이 찰랑이게 되는 데에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시간과 인내로 오롯이 채워지지 않는 그런 공간이 있다.


그래서 한국어자판이 새겨진 키보드는 항상 나와 함께했다. 쓰는 것을 즐기면서도 한국어 자판을 종종 보고 싶었고 그 글자에서 느끼는 위안이 있었다. 하지만 익숙함의 그릇은 이제 찰랑일 정도로 들어찼다. 그 말은 독일어에서 사용하는 몇 개의 특수 문자들이 익숙하게 사용되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독일어로 글 쓸 일이 늘어났다. 이제 영어키보드는 삭제되고 한국어와 독일어만 오고 간다. 익숙하고 유창한 한국어는 보지 않아도 사용할 수 있지만 이제 독일어는 여전히 손이 더듬거린다. 쓰고 지우고 더듬거리며 찾고 지우고. 보지 않아도 익숙해지는 듯하면서도 자꾸 삐걱거린다.


그래서 독일어 키보드 앞에서 망부석처럼 고민했다. 한국어가 기록되지 않은 첫 키보드. 이걸 구매하면 무언가 끊어지는 느낌이라서. 언어를 잃는 것도 아니면서 그런 맘이 들어 괜히 서성거리다 판매원에게 발각되어 요놈저놈의 설명만 무지하게 들어야 했다. 아빠가 없이 컴퓨터를 고르면서도 그래서 몇 년을 서성거렸다. 멀리서 구경만 하고 가까이 가는 것도 괜히 좀 그랬다. 내가 이렇게 어른이 되었다는 게 어색했다. 너가 필요하면 얼른 사라고 할 거를 알면서도 괜히 의견을 물어보는 척도 좀 했다. 혼자 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한국어 키보드를 만지작거리는 마음처럼.


오늘 그렇게 독일어 자판을 사 왔다. 독일어는 영어랑 배열이 달라서 한국어 타자 칠 때 이상하면 어떡하지? 하는 괜한 생각도 좀 하면서. 언제까지 환불할 수 있냐는 의미 없는 질문도 좀 해가면서 겨우겨우 하나를 사 왔다. 그렇게 연결한 키보드는 쌩쌩 돌아갔고 나는 이제 한국어가 새겨지지 않은 키보드로 이전보다 더 빠르게 글을 쓴다. 괜히 겁을 내어 단단한 길도 시간을 걸려 내디뎠다.


눈에 훤히 보이니 독일어 자판도 이제 삐끗거리지가 않는다. 토독토독 독일어를 써 내려가며 생각했다. 유창함의 그릇이 조금씩 모이는 걸까.


서성이던 발걸음이 길었던 만큼 적응은 배로 빨랐다. 아무것도 끊어지지 않았고 아무것도 잃지 않았다. 그냥 독일에 사는 어른이 되었을 뿐.

keyword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