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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독일에서] 당신의 병가와 나

꾀병 아닌거 확실하지?

by 노란대문

한 문장에 굳이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 단어가 들어가 있다. 병가. 그래 당신의 병가. 독일에서 동료들은 참 자주 아프다. 자주 아프고 자주 병가를 낸다. 교묘하게 주말이 이어져 있는 날에는 아픈 사람이 더 많은 것만 같고 어째 느낌적으로 좀 그렇다. 마치 학교가라고 두들겨 깨우는 엄마의 손에 ' 아 나 배 아픈 거 같아'라고 말하는 그런 기분이랄까? 어려서나 나이 들어서나, 애나 어른이나 가야 하는 곳에 가기 싫은, 아니 아픈 그런 날이 있는 모양이다. 근데 진짜 아파서 안 오는 거 맞겠지? 처방전 없이 3일 동안 쉴 수 있어서 그래서 갑자기 아픈 게 아니겠지? 그치? 응? 막막 어린애들처럼 꾀병 뭐 그런 거 아닌 거 맞지?




나 어릴 적에는 그랬다. 개근상은 멋진 상이 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교사하는 친구 이야기 들어보면 우리의 옛날과 지금은 분위기가 좀 다른 거 같기도 하다. 아니 어쩌면 이게 추억 미화인 것 같기도 하고. 종종 아파도 학교에는 가야 한다. 이런 말씀하시는 어른들이 되게 많았던 것 같다. 그게 고대로 커서 '아파도 출근은 해야 한다'가 되어버렸지. 그래서 우스갯소리로 좀비가 나타나도 사람들이 어기적어기적 좀비를 밀쳐가며 출근할 것 같다고. 그런 이야기도 있었다. (사실 하나도 안 웃겨) 심지어 하늘에서 구멍이 뚫린 것 같은, 비가 와서 물이 사방에 넘친 대대적인 대홍수의 날에도 출근을 하던 낭만의 시대도 있었다.


그런 사회에서 자랐다. 아파도 안 아픈 척 힘내는 게 미덕인 곳. 열정을 위해서는 당장의 안식과 건강보다 몰입하는 힘을 더 높이 사던 시간들. 결과에 의해 과정도 미화되는 그런 시간들. 소위 '헝그리 정신'이라는 것은 유전자에 새겨지듯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슬금슬금 체화되었다. 잠은 무덤 가서 많이 자라. 뭐 그런 말도 들었던 거 같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해서 취업의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들어온 독일 사회. 파란 눈의 사람들이 한가득인 회사. 여기는 안 아픈 사람이 없는 날이 없다. 그런 날은 빵빠레라도 울려야 할 것처럼, 사이좋게 돌아가면서, 번호표라도 뽑아놓은 양 아프다. 하루만 아프거나 이틀만 아프거나 삼일을 아프기도 하다. 출근 시간이 되어도 자리에 없는 동료의 빈자리는 이내 병가처리로 넘어간다. 어디가 아팠는지 왜 아팠는지 궁금해하지도 물어보지도 않는다.


내가 갓 입사했을 때 그만 심한 감기에 걸렸었다. 그런데 캘록거리고 다니면 눈치가 보여서 기침약을 한 번에 먹을 수 있는 것보다 더 와아앙 털어먹고 출근을 했다. 몸 관리도 제대로 못하는 프로답지 못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 아픈 티 하나도 안 내고 숨어서 약을 먹었다. 그뿐이랴 혼자 집에 와서 끙끙 앓다가 해열제를 너무 많이 먹어서 눈앞이 빙글빙글 돌기도 했다. 그때 알았다. 왜 약에는 한 번에, 하루에 먹을 수 있는 최대 용량이 명시되어 있는지. 절대, 절대로 그 용량 이상을 먹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여하튼 그렇게 헝그리 정신으로 아픈 티 하나 안 내고 감기를 이겼다. 출근도 열심히 했다. 그런데 가만 보니 이놈 저놈 요놈 저놈. 동료들이 출근을 안 한다. 며칠 뒤에 말끔해진 얼굴로 나타났기에 어디가 아팠냐고 물어보니 '음, 그냥 몸이 좀 아프더라고. 감기 걸릴 거 같아서 쉬었어' 하며 대답하는 게 아닌가. 감기가 걸린 것도 아니고 걸릴 것만 같았던. 노스트라다무스야 뭐야. '너도 알지? 그 약간 별로인 느낌. 나는 그러면 무조건 쉬어야 해' 응응 맞아. 그럴 때는 쉬어야지. 하며 고개를 크게 끄덕이고는, 너가 나아졌다니 다행이다. 하면서 맞장구도 쳐줬지만 이거 완전 꾀병 아닌가 싶었다.


심지어 누구는 일하다가도 '어 나 약간 지금 별로인 거 같아' 하고는 병가를 내고는 집에 가는 것도 보았고, 한 달에 한 번씩 정해놓은 것처럼 병가를 쓰는 사람도 봤다. 두더지 잡기 게임처럼 요리조리 번호표 뽑은 것 마냥 출근하기, 병가 내기 두 개를 골라서 회사 생활을 하는 것 같아 홀로 자괴감에도 좀 빠졌다. 그냥 신경 안 쓰고 내 할 일만 하면 되는 거 아는데, 괜히 쟤는 나보다 더 쉬는 거 같은데 나는 진짜 열심히 했는데 월급은 똑같이 받는 거 같고. 나도 괜히 아파야 하나 싶고. 그날은 집에 가서 심각하게 스스로 이마를 짚어보며 '나 미열인 거 아닌가?' 하기도 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2년이 되어갔다. 여전히 청기백기 게임처럼 출근하기, 병가 하기 는 만연한 분위기였고. 어째 밤에는 아픈 것만 같다가도 오전에 되면 '아 병가 내기 애매한데.' 하며 주섬주섬 출근을 하는 K-외노자의 일상에 젖어들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새롭게 합류하게 된 동료가 있었다. 중견의 나이로 이직을 해왔다. 그 동료는 심적으로 압박을 받았는지 한동안 파리한 얼굴로 출근을 했다. 그러다가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켈록-켈록"

동료가 파리하게 질리다 못해 허옇게 된 얼굴로 이제는 기침까지 시작한 것이었다. 사람들이 처음에는 따뜻한 차를 추천한다, 기침에 좋은 사탕을 권한다 등등 친절한 모습을 보였다. 파리하고 수척한 얼굴로 고마워, 고마워하고 따뜻한 관심을 받던 동료는 어디서 배웠는지 '헝그리 정신'을 뽐내며 출근을 열심히 했다.

"켈록-커얼럭 퀘에 엘록"

이제는 뭔가 단전에서 올라오는 것 같은 기침 소리가 한층 강해졌다. 그러자 다른 동료들의 표정이 굳어가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노골적으로 "마스크라도 써야 하지 않아? 너 때문에 나까지 아프면 어떡해?"라고 말했다. 뒤에서는 "쟤 진짜 책임감 없다. 다 같이 아프자는 거야 뭐야." 하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그 동료는 꿋꿋하게 출근을 했고 파리한 얼굴로 자신의 일을 해내려고 애썼다. 하지만 컨디션이 별로여서 마무리가 항상 문제가 좀 있었다. 결국에는 셰프가 공개적으로 " 너가 아프면서 여기에 있는 건 하나도 도움이 안돼. 아프면 집에서 제대로 쉬고 좋은 컨디션으로 다시나 와. 아파하면서 일을 제대로 안 할 거면 여기 있을 필요가 없어"라고 하며 반 강제적으로 집으로 돌려보냈다.


아 물론 해고를 한건 아니고 병가를 내도록 강하게 회유했다. 그 동료는 3일을 쉬었고, 다시 돌아와서 켈록 거렸고, 다시 되돌려 보내져서 병원에 들렀다가 일주일을 더 쉰 후에야 정상 출근을 할 수 있었다. 아프면서 출근해서 바이러스 옮기지 마라는 분위기와 아파서 얼굴 찌푸리면서 일터에 앉아있지 말으라. 는 두 가지의 가치관이 나를 온통 뒤흔들었다. 아프면서 출근하는 게 오히려 책임감이 없는 태도라니. 그동안 병가 내는 사람들을 몰래 미워하던 마음에 균열이 일었다. 그렇구나.


남용하는 인간들은 어떤 술수를 쓰더라도 권리를 마구 남발할 것이다. 그렇지만 "나를 잘 살피고 직장에서 좋은 동료로 존재하기"가 독일이 바라는 좋은 직장인의 모습인 것 같았다. 책임감이라는 것이 어디를 기준으로 설계되어야 하는 것일까. 사실 아프지 않기 위해 일상에서 운동이 생활화되어 있는 동료들이 참 많다. 달리기 헬스장 식단 등등 다들 저마다의 방법으로 건강을 지키고 출근하면서는 광대를 끌어올려 밝게 인사를 건넨다.


존재하는 곳에서 건강하게 할 일 하기. 아프면 병가 내고 쉬기. 그동안 1차 병원에 찾아가면 '아프면 쉬어야 한다'는 말로 의사가 항상 나를 배웅했다. ' 나 요즘 약간 손이 아파' 하고 찾아가면 '한 일주일 쉬어볼래?' 하거나 '나 약간 위가 아파' 하면 '한 4일 쉬어야 할거 같아' 하며 병가 확인서를 집어 들던 모습. 다급하게 손사래를 치며 됐다 됐다 사양하는 나에게 '아프면 쉬어야 해'하고 배웅하던 얼굴.


나도 한 번은 발에 사마귀가 났다. 발바닥에 자리 잡은 것을 홀로 없애보려다가 더 탈이 나버렸다. 도무지 바닥을 디딜 수도 없어서 병가를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절뚝절뚝 병원을 향해 영원히 걸었고 의사에게 처방도 받았다. (그러나 의사 소견서 없이도 3일은 병가처리가 된다) 하루를 병가로 내고 싶었다. 피가 배어 나와서 이건 안 되겠다 싶었다.


할 말을 정리하고 크게 심호흡도 하면서 직장에 전화를 했다.

"네 사무실입니다-"

"저 내일 병가를 내려고요, 제가 발이 아파서.."

"네 알겠어요. 저한테 병명은 안 말해줘도 돼요. 내일 하루만 내나요? "

"어 우선 네."

"알겠어요. 연장해야 하면 알려주세요. 처리할게요 푹 쉬세요"


의사한테 다녀왔는데요. 소견서는 일주일을 받았는데요. 발바닥이 너무 안 좋아서요. 그런 구구절절한 것을 설명할 겨를도 없었다. 그냥 며칠 쉴 건지 그걸 빠르게 처리하고 싶어 했을 뿐이었다. 함께 프로젝트를 하는 동료에게도 병가를 내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려 연락을 했지만 되려 "됐어 됐어. 일주일 병가 내고 쉬도록 해. 괜히 애매하게 돌아다니지 말고 며칠 더 쉬어. 하루로는 아무것도 안돼." 하고 충고만 들었다.


그렇게 병가를 연장했고 삼일을 쉬었다. 아무도 나의 아픈 사유에 대해서 "공식적"으로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냥 개인적으로 궁금해하는 사람들만 있었을 뿐. 이렇게 쉽게, 이렇게 나를 믿어주다니. 내가 절뚝거리며 직장에 앉아있는다고 아무도 기뻐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이 더 피부로 다가왔다. '쉬었더니 다 나았니?'가 내 동료들이 제일 궁금한 포인트였다. "이제는 완전히 건강해?"


이제는 아프다고( 혹은 아플 예정이라서) 빠지는 동료들이 밉지가 않다. 바이러스 나에게 옮길 바에야 집에서 핫초코나 먹고 푹 쉬다 오면 좋겠다는 생각뿐. 다 나아서 말끔하게 웃는 얼굴로 만나는 게 제일이다. 체력이 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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