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렁니로 살게 될까 봐
어릴 적에는 가기 싫어서 울고불고했던 치과. 하얀 방과 내 입안을 휘젓는 이상한 감각들 그리고 소름기치는 치아 갈리는 소리. 그 냄새, 조명. 모든 것이 싫은 그 공간에 이제는 자발적으로 간다. 울고불고하는 것은 영수증을 본 내 마음과 지갑뿐. 그렇게 미룰수록 돈이 더 드는 입 안의 작은 세계를 위해서 꾸준하게 치과를 가야 한다. 그리고 치과 보험도 하나 만들었다는 이야기.
나와 독일 치과의 인연은 독일에 도착한 첫해 부터 시작되었다. 그때는 학교가 뭐라고, 학교 행사가 뭐라고, 교수님이 뭐라고. 입안에 잇몸이 퉁퉁 부어가는데도 학교에 아프다고 얘기할 엄두를 못 냈다. 이제 막 시작한 학교생활이 그렇게도 소중해서 피가 철철 나기 시작해 치과에 찾아갔을 때는 이미 '치아가 사망하셨습니다'라는 절망적인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어릴 적 그렇게도 칫솔질을 시키려던 부모님과 그것을 싫어싫어 하면서 도망 다녀 이미 씌워져 있던 금니 안쪽으로 뿌리까지 완전히 썩어버린 것. 당시 크리스마스를 낀 독일 휴가의 위엄과 신년맞이 하는 독일의 엉금엉금 일하기 문화에 무지했던지라 '학교가 쉴 때 치료를 받아겠다'라는 순진한 생각을 했었다.
그때 만난 의사 선생님은 지금, 당장, 롸잇나우. 치아를 뽑아야 한다고 선언했고, 나를 설득시키는데 30분을 사용했다. 그렇게 발치 전문 병원으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이송되었다. 그 병원에서 발치 번문 병원으로 직접 전화해서 약속시간까지 다 잡아주고 나에게 시간과 일정을 인지시키는 것까지 담당해 줬다. 아마 심각했던 상황이었나 보다.
그렇게 발치전문 병원에 가서 무려 어금니를 발치하고, 지금이라면 선택하지 않았을 '브리지'(아까운 내 생니가 갈려버리는 시술인지 나중에 알았다.)까지 걸었다. 그 모든 상황이 TK에서 담당해 주는 기본 치과 보험에 좀 포함이 되었고 치과 의사의 권한으로 '이 환자에게 이런저런 시술이 더 필요함'이라는 문구와 함께 보험비를 좀 더 받을 수 있도록 아주 애써주셨었다. 유학생을 위한 호의였다. 그러나 내가 담당해야 하는 금액도 꽤나 높았어서 당시에 어이구어이고 곡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 이후로는 '사랑니를 뽑으면 일어나는 일'로 매복사랑니도 두 개나 발치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자 이제는 건강 유료결제를 해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 그렇게 치과와 한층 더 가까워지기 위한 발걸음을 떼었다. 정확히는 내 통장과 협의를 봤다.
아, 그전에 독일에서도 [치석 제거]는 아주 권장되는 사항이다. 매해 한 번은 꼭 하라- 고 보험회사에서도 아주 강권하며 일 년에 한 번 공보험에서 60퍼센트 정도 비용은 환급해 준다.
공보험에서 모든 금액이 커버되는 Zahnreinigung(기본 치석제거)는 앞니와 아랫니 두 개 (도합 네개정도)의 치아를 가볍게 봐주는 것이다. 그러나 꼭 받아야 하는 것은 Professionelle Zahnreinigung(전문적인 치아청소)이다.
담당하는 사람이 따로 정해져 있는 전문 치아 청소는 회당 약 45-60 분정도의 시간이 소요되고 병원마다 금액이 상이하다. 보통 90-140유로 사이로 청구되는 것 같다.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정말-정말- 정말 오래 걸릴 수도 있기 때문에 (하루에 병원애서 담당할 수 있는 환자의 숫자가 정해져 있다) 원하는 달, 원하는 날짜에 받으려면 서둘러서 예약해야 한다. 혹은 공보험 권장사항인 일 년에 두 번 치과 가서 치아 검진받기(Untersuchung)를 하면서 그 자리에서 예약할 수도 있다.
전화로 예약하면서 가격을 물어봐도 괜찮고, 정기검진 받으면서 의사에게 물어봐도 괜찮다. 종종 우리는 좀 비싸 왜냐면 '전문적인 장비'가 있거든- 하면서 열성적으로 홍보하는 의사도 있다. 다만 전문치아 청소는 의사가 하는 게 아니고 보통 세상에서 제일 피곤해 보이는 다른 분이 담당하므로 쉽게 영업에 넘어가면 안 된다.
이번에 이사를 온 후, 항상 하던 전문치아청소를 하려고 병원을 찾아봤다. 회사 동료들에게 병원을 추천 해달래도 여기저기 너무 산발되는 터라 집 과 가깝고 꽤나 좋은 건물에 입주한 치과를 찾아갔다. 의사를 만나 치아 검진을 받으며 이 동네에 뭐 하러 왔는지, 도시는 맘에 드는지, 그전에는 어디에서 살았었는지 등등 치아 분만 아니라 인적사항도 조사당한 뒤 전문 치아청소를 위해 다른 방으로 안내되었다. 아, 의사는 너무나도 친절하고 전문적이며 밝고 쾌활했지만 130유로라는 꽤나 비싼 비용을 지불받은 치아청소 담당자는 무척 실망스러웠다.
여기서 하나, 독일에서의 치아청소는 아주, 아주 거칠다. 한국에서도 한번 받아봤었는데 잔잔한 클래식 사이로 조심조심 움직이는 손, 그리고 '약간 아플 수도 있어요, 피가 조금 나지만 괜찮아요.' 등등의 안내, 그리고 30분 정도의 빠른 시간 안에 끝나는 프로페셔널함. 이런 것과는 결이 다르다.
꽤나 원시적이고 직관적인 기구들이 입 안으로 들어오고 끙끙 애쓰는 소리도 들리며, 나도 치아 청소를 담당하는 분도 60분이 지날 즈음에는 아주 진이 빠져버린다. 피철철 엔딩은 매년 있었던 일이고. 병원이 달라져도, 사람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수순이었다.
게다가 이번에 처음 간 병원은 치석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은 것이 유관으로도 보이는데 더 이상은 자기가 할 수가 없다면서 다음에 다시 치석제거를 받으라는! 아주 책임감 넘치는 발언을 하는 것이 아닌가. 다크써클이 턱끝까지 내려온 이를 붙들고 돈 받은 만큼 책임을 져 달라고 떼쓸 수도 없는 노릇이니 데스크에 가서 다시 물었다.
"여기는 원래 치석제거를 다 안 하나요? 다음에 다시 오라던데"
"아, 다음에 다시 와서 또 받으라는 이야기예요. 다음 약속시간은 언제로 잡아줄까요? 6개월 뒤?"
아니, 그게 아니라 지금까지 무수히 치석제거를 받았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하는 항변은 어깨 들썩으로 묻혀버렸다. 허탈한 마음으로 다신 안 오려고요. 하면서 인사를 하고 나오는 수밖에.
그렇게 올해, 다시 치석제거의 나날이 돌아왔다 작년에 온전히 제거되지 못한 치석이 아주 눈에 거슬리는 상황이 되었으므로 온갖 치과를 다 조사하고 전화를 해보면서 좋은 병원을 찾아보려 애썼다.
그렇게 발견한, 홈페이지도 겨우 모양새만 나 있는 동네 치과를 찾아냈다. 의사 하나 간호사 둘. 데스크만 담당하는 직원은 따로 없는 작고 친절한 치과. 리뷰도 10개가 간신히 넘지만 다들 칭찬이 일색이었다. 크고 번쩍거리는 치과에 가서 아주 슬픈 경험을 했으니 이번에는 소박하지만 내실이 단단해 보이는 치과를 선택하기로 결심해 봤다.
"전문치아 청소를 예약하고 싶어서 연락했어요"
곧이어 밝고! 친절한! 목소리가 넘어왔다.
"오 아무리 빨라도 이번 달 말이에요. 어때요?"
하지만 그날은 내가 시간이 안 되고 이렇게 저렇게 날짜를 조율하며 6주 뒤에 만나기로 약속이 잡혔다. 그분은 6주 뒤가 되려면 영원 같은 시간이 지나야 하지만 까먹지 말고 찾아오기를 바라요!라는 유쾌한 인사로 마무리를 했다.
그렇게 찾아간 치과는 '우리는 에어컨이 있는 최신식 치과입니다'라는 귀여운 문구가 적혀있는, 집 사이에 있는 작은 병원이었다. 갑자기 들이닥친 동양인에게 환자와 간호사의 시선이 몰렸지만 익숙하게 보험카드를 척 꺼내며 "오늘 10:30 예약했어요." 하자 다들 이유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함박웃음을 지어줬다.
처음 간 병원이니 지병과 먹는 약에 대해서 작성해야 하는 프로토콜까지 작성하고 대기실에 있기를 잠시 곧장 불려 나갔다. 그 와중에 우리 91유로의 비용이 발생해 알고 있지? 하는 친절한 안내도 다시 한번 받고 싸인도 했다.
무뚝뚝한 의사분이 들어와서 치아를 하나하나 살피며 아픈지 브리지는 괜찮은지 연신 두드려보고 찔러보고 만져보고 잡아당겨보며 정기 검진을 해주고는 '치아청소파이팅' 하라며 서둘러 사라졌다.
그렇게 약간의 음악이 깔리고 갈색머리를 한 친절한 치아청소 담당자와 마주 앉았다.
"언제 마지막으로 치아를 청소했어?"
"작년, 그런데 치석을 완벽하게 제거해 주지 않더라고. 그리고는 6개월 뒤에 다시 오래서 여기를 새로 찾았어."
"오 세상에. 말도 안 돼."
그렇게 점점 기울어져 넘어가는 의자에 앉아 짧은 수다를 떨었다.
"자, 이제 시작할게. 내가 청소를 할테니 가능하면 조금 자도록 해."
하는 농담을 던지며 윙크가 날아왔다. 아 이 버터 같은 소중한 사람. 한석봉의 어머니 처럼 내가 떡을 썰고 너는 글을 쓰고. 그 분은 위잉위잉 청소를 하고 나는 입이 찢어져라 벌리기. 완벽한 분업이었다. 게다가 더 크게 아아- 벌리기 위해서 턱 맛사지 까지 하는 내 열정을 보고 그분은 좀 웃었다.
그렇게 60분의 시간 동안 가글을 하고 다시 눕고 다시 가글을 하고 설명을 듣고 어떤 기계가 왜 내 입에 들어올 건지 설명을 또 듣고! 또 눕고 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그리고는 완전한 만족!!!
너무 좋아서 모두가 알았으면 좋겠는데 한편으로는 이 밝고 건강하며 친절한 분을 나만 알고 싶은 그런 마음이 들게 하는 첫 치과였다. 10년 넘는 독일 생활동안 처음 느껴보는 소중한 치과. 이번에는 대 성공이었다. 게다가 91유로의 전문치아 청소 비용은 새로운 '치과 보험'이 담당해서 전액 환급을 받았다는 이야기.
글이 길어지는 것 같아 다음 에세이에 치과보험을 비롯한 이야기를 마저 풀어야겠다. 지금도 반짝반짝 하나의 티끌도 없이 청소된 치아로 열성적으로 이를 빛내며 웃고 있다. 이렇게 개인의 실력에 따라서 가격도 결과도 달라지기 마련이니 치과는 열성적으로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