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좀 달려요
독일에서는 서비스를 기대하면 안 된다. 어 그니까 서비스가 있기는 한데 한국 같은 친절 더하기 친절의 느낌은 전혀 아니고, 돈 받은 만큼 혹은 조금 적게 보여준다. 상냥한 웃음이나 부드러운 말투는 팁을 기대하는 옵션일 뿐, 그저 자기가 해야 하는 일을 잘하는 것이 독일의 서비스 정신이다. 게다가 본인이 커버하는 분야가 아니면 정확하게 ‘나는 모른다’라고 알려주기도. 하지만 그들에게도 친절하고자 하는 욕구가 피에 장착되어 있으니 바로 ’친절은 열린 문‘
기본적으로 무뚝뚝하지만 또 친절도 하다. 인간의 여러 면을 솔직하게 가감 없이 내보이는 것이 독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진 특징 아닌 특징이랄까. 뭐 내가 경험한 세계는 사실 베를린 90퍼센트 거기에 소도시 10퍼센트이니 베를린의 특징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튼, 독일인이라 하면 어딜 가나 문을 잡아주려는 욕구가 상당하다.(다른 나라는 내가 평가할 만큼 적응해 본 적이 없으니 패쓰)
비엔나소시지처럼 줄줄이 들어가는 중인 문이야 앞사람이 잡아주고 뒷사람이 받고, 뒷사람이 잡아주고 그 뒷뒷 사람이 받는다. 연극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자연스럽게 손에서 손으로 이어지는 문 잡아주는 역사가 있다. 한국에는 강강술래가 있었다면 독일에는 문으로 돌고 도는 문화가 있었던 게 아닐까.
여하튼 이런 배려를 받으면 기쁘고, 나 또한 이 사회의 일원이 된 것 마냥 배려를 베푼다. 뒷사람을 보며 문을 잡아주고 눈을 맞추며 문을 건네고 갈 길을 간다. 이 얼마나 안전하고 아름다운 문화인가.
그런데 가끔 참 눈이 좋고 시간도 좀 있고 매너가 넘치는 분들이 있다. 문을 놓으려다 뒤를 봤는데 누군가 이쪽을 향해서 걸어오고 있는 것 같으면 그가 올 때까지 계속 문을 잡아주는 것이다.
나는 아직 문에 도달하려면 한 스무 걸음 정도는 더 걸어야 하는데, 저기 점처럼 보이는 문과 사람이 혼연일체가 되어 내가 도달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면 별도리가 있나, 아이구 어이구 하면서 열심히 걸어가는 수 밖에. 그렇게 가서 열린 문으로 들어가면 그렇게 뿌듯한 표정으로 비로소 갈 길을 간다. 뭐 말이라도 한마디 건네보려 기다리는 것도 아니고 순전한 호의로 문을 잡고 기다려 주다니. 그런데 이게 한두 번도 아니고 꽤나 여러 번 발생한다.
저번에는 발목이 삐어서 아주 찬찬히 걸어가며 하늘도 보고 땅도 보고 구경도 하면서 걸어가고 있는데 언제부터였을지 내가 가는 방향에 있는 거대한 쇼핑몰의 문을 영원히 잡고 있던 사람도 있었다. 그때는 정말 빨리 걸을 수 없어서 '놓고 그냥 가라'는 바디랭귀지를 열심히 보냈지만 웃으며 천천히 오라고 하는 바람에 발걸음을 열심히도 재촉했었다.
절뚝이면서도 속으로 '아 제발 그냥 가지' 싶었고, 그 사이에 다른 사람이 오묘한 표정으로 문을 잡고 있는 사람과 절뚝이는 나를 번갈아 보며 열린 문으로 지나갔지만 도어맨을 자처하 이는 요지부동이었다. 하이고 하이고 하며 땀을 뻘뻘 흘리며 도착하자 '하핫!' 하고 웃으며 갈 길 가는 사람. 아, 알 수 없는 이 독일의 친절.
게다가 동료와 함께 걷고 있으면 또 애매한 상황이 생기곤 한다. 이름하야 '내가 문 열어주기!' 미션. 너도 나도 나서서 먼저 문을 열어주고 그 문 안으로 상대를 먼저 들여보내는 배려를 베풀고 싶은 사람이 한가득이다. 그래서 의도치 않게 문 앞에서 설왕설래하는 상황이 자꾸만 발생하는 것이다. 내가 열게, 아잇 내가 열어줄게, 들어가, 아니야 먼저 들어가. 마치 계산대 앞에서 너가 돈을 내니 내가 돈을 내니 하는 사람들처럼 문 앞에서 아잇쿠 아잇쿠 하는 시트콤을 찍는 것이다. 왜 이렇게 문에 집착하는 것인지.
이런 문화에 녹아내린 버터 같은 삶을 살다가 한국에 왔을 때 눈앞에서 닫혀버리는 유리문 뒤로 약간 비명을 질렀다. 당연히 잡아주고 잡고 들어가려는 박자와 흐름을 타고 들어가려는 순간 잡히지 않은 문짝이 거대한 소리를 내며 눈앞으로 후웅- 하고 다가왔기 때문에. 외마디 비명이 들렸는가 바쁘게 길 가던 아저씨께서 다시 돌아와 문을 다시 열어주고는 '아이고 미안합니다.' 하고는 가셨다. 아닙니다, 제가 재빠르지 못한 탓인걸요,라는 말도 뱉기 전 또 호다닥 가시는 뒷모습에 괜스레 더 죄송했다.
그 문을 지나며 되돌아오셔서 사과하시는 것에 일차 당황했고, 문이 말도 못 하게 빠른 속도로 닫히는 것에 둘째로 당황했고, 닫힌문이 혼자 후우-후웅 거리며 앞뒤로 스윙을 탈 정도로 강하게 텐션을 받는 것에 마지막으로 당황했다. 이 정도면 크게 사고가 나겠다 싶은 마음이었으나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던가 3일 차부터는 문이 후웅-후웅 거리며 닫히든 말든 강인하게 치고 나가는 사람이 되었었다.
그러나 강강술래는 성공적으로 해내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박자감각이 피에 새겨져 있을 것이니 잡고 받는 , 문으로 돌고 도는 문화도 자리 잡으면 좋겠다. 무거운 유리문이 누군가에게는 무서운 무기처럼 보일 수도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