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으로 무장하라
내가 나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자 나의 작고 귀여운 재산도 보호하는 방법은 '보험'이다. 이 서류의 나라이자 기록의 나라. 편지와 이메일의 나라. 다들 쓰고 적고 기록하는 것에 미쳐있는 게 분명하다.
이메일을 보낼 때도 내가 이전에 보낸 메시지를 첨부해서 ‘너가 답장을 아직도 안 해서 내가 또 이메일을 쓰네 호호' 하고 압박하기 완전 가능. 여하튼 이런 나라에서도 법 위에 있는 것처럼 구는 사람도 존재하고 천재지변도 일어난다.
예를 들어 집주인이 보증금을 안 돌려줄 때, 말도 안 되는 것을 트집 잡아서 돈을 오히려 더 내라고 할 때, 아플 때, 고장 났을 때, 도둑맞았을 때 등등등, 이 모든 계획하지 않았던 순간에 내가 들어 올릴 수 있는 작은 방패. 보험.
독일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꼭 가져야 하는 보험이자 유학생 신분으로 독일 살이를 시작한 사람이라서 가진 것은 건강보험. 그중에서도 '공보험'이다. 나는 tk - Techniker Krankenkasse -라는 건강보험을 가지고 있다. 이걸로 병원도 가고 웬만해서는 병원서 돈도 안내며 의사 처방전이 있는 약일 경우 개인 부담금이 무척 적다. (왜 몇 개의 공보험 중 tk였느냐 하고 묻는다면 학교에 처음 등록하러 갔을 때 관계자가 이 보험을 추천해 줬다.)
하지만 공공보험이니 만큼 2차 병원 예약 날짜 잡기는 하늘의 별 따기이다. 뭐랄까 최소한의 건강을 위한 안전장치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공보험도 비싸다. 학생일 적에도 비싸다고 생각했고 지금은 직장과 나눠내지만 역시 비싸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높아지는 이 보험을 나름대로 알뜰살뜰 사용하기 위해 최선을 다 하고 있다. 이 내용은 나중에 마저 이야기하자.
여튼 내 한 몸만 건사하면 되던 시절을 지나 지금은 책임질게 요조모조 좀 늘었다. 혼자 사는 보눙과 부동산과 계약한 집. 공보험으로 커버되지 않는 여러 가지 상황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달까.
우선 저번 글에서도 언급했듯 치과보험이 그렇다. 지금 나는 달에 20유로 정도 되는 보험금을 납부하는데 그 안에 나름 괜찮은 상품들이 들어있다. 예를 들면 1년 동안 200유로 상당의 전문치아청소 전액 환급, 치아미백, 충치 등등 이후 임플란트 80퍼센트 환급 같은 이야기가 들어있다. 사보험이나 공보험이나 나이가 들면 보험료도 같이 오르지만 그래도 브릿지를 걸어놓은 치아를 언젠가는 임플란트로 바꿔야 하기에 치과보험을 따로 들었다. 우리 보험에 가입해 줘서 고마워요~ 하면서 전동 칫솔도 선물로 보내주던데 장장 10년을 들어놓은 공보험에서는 이렇다 하는 선물 한번 받아본 적 없어 무척 설레고 좋았다. 이래서 사보험 사보험 하는 걸까(아니다)
그리고 모두가 추천하는 “Rechtsschutzversicherung-법률보험 즉 변호사보험”이 존재한다. 돈을 벌면 그것부터 들으라는 조언이 수도 없이 날아왔었다. 이름부터 생소한 변호사보험. 이것이 왜 필요하냐면 각종 분쟁이 생겼을 때의 평화적인 해결법의 마지막 단계이기 때문이며, 상대가 ’ 변호사 편지‘라는 카드를 꺼내 들면 이쪽 역시도 변호사로 대답해야 하기 때문이다. 변호사 편지의 힘은 생각보다 강하고 법 위에 있는 것처럼 뛰놀던 사람도 좀 잠담해지게 한다. 세입자와 외국인은 때로는 갑질의 피해자가 된다. 그러니 외국인이면서 세입자인 사람에게는 작은 방패인셈이다.
혹여 보험에 낼 돈은 따로 없지만 어딘가의 보눙- 기숙사가 아닌 스스로의 이름으로 계약을 맺은 집에 살고 있다면 최소한으로 세입자협회 회원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집주인과 문제가 생기거나 작은 다툼이 생기거나 등등의 경우에 최소한의 법률자문을 구할 수 있다. 변호사편지 한 장 써준다는 소리. 가입 후 1년이 지난 이후부터 효력이 발생하기 때문에 빠르게 가입하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가 많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Privathaftpflicht(개인책임보험).
내가 세입자로서 문제를 일으키거나 고의가 아니지만 물건이 고장 나거나, 넓게는 열쇠를 잃어버리는 것도 포함되는 사항이기도 하나(보험마다 보상의 범위가 상이하다) 내가 남의 물건을 망가뜨리거나, 배상해야 하는 모든 경우에 기초적으로 이 보험에서 나의 손을 잡아준다. 때로는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이 보험을 가지고 집 계약을 마무리하자고 동용하는 경우도 있다. 나의 고의로 인한 것은 당연히 커버되지 않지만. 실예로 내 친구가 이 보험의 혜택을 받았다. 기차에서 앞자리에 앉은 사람이 다 식은 라테를 친구 가방에 실수로 쏟는 사고가 벌어진 것. 그런데 나름 고가의 가방이고 운이 없게도 우유가 찐득하게 들어간 음료라서 '괜찮아'라는 이야기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상대는 자신에게 보험이 있으니 연락하라고 했고, 이후 보험과 함께 힘을 내어 친구의 가방을 새것으로 교체해 주었다. 이런 자잘한 상황까지 커버해 주는 보험이다 보니 꼭 필요한 것 중 하나가 된다.
보통 보험은 https://www.check24.de/ 여기 사이트에서 비교해 보고 필요한 것을 쏙쏙 골라서 신청할 수 있다. 가입이 편하고 관리도 편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것과 보험회사 자체에서 제공하는 것, 그리고 금액에 따른 책임 범위에 대한 상이한 내용이 있을 수도 있으니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확인하고 보험을 가입하는 것이 좋다.
나도 올해가 가기 전 위의 모든 보험 가입 절차를 마무리하는 것이 목표이다. 들어가서 보고 있으면 이것도 필요한 것 같고 저것도 필요한 거 같고 월급의 반을 보험비로 쓸 박정처럼 이것저것 찾아봤다가 다시 고민하고, 다시 고민하는 과정이 반복되고 있다. 그나마 결심하고 시작한 치과 보험이 좋은 시작을 열어주었으니 앞으로 다른 보험들은 조금 빠르게 결정할 수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