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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대문 Aug 31. 2021

독일에서 사랑니를 뽑으면 일어나는 일 #1

격렬하게 누워있는 두 개의 사랑니와의 전쟁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는 사랑니. 나는 그게 3개나 있었다. 이름하야 사랑니 부자.


하나는 위쪽에 원래 없던 큰 어금니 자리에 잘 자리를 잡아 똑바로 나서, 자기 역할을 잘하고 있단다. 다른 어금니들보다 좀 작지만 착실하게 음식을 씹는 데에 본일 역할을 다 하고 있다. 기특하기도 하지.


문제는 아래쪽에 누워있는 사랑니 두 개였다. 누워있는 사랑니라니. 자세부터 게으르기 짝이 없다.



한국에서도 두어 번 이놈들을 뽑을 시도를 했었다. 그러자 우리 동네 치과에서는 '아주 위험한 자리에 있는 사랑니'라면서 잘못 뽑으면 이렇게-저렇게 될 것 이라며 대학병원을 가랬다. 그래서 간 그곳에서는 불편하지 않으면 건드리지 말아라, 위험한 자리다.라는 똑같은 소견을 내었다. 그래서 내 게으른 사랑니는 나와 지금까지 동거동락하며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게 살았다.


나야 의사가 아니니 신체에 대해 나라에서 실시한 교육 이상을 받은 적이 없다. 그래서 사랑니가 턱 쪽으로 밀려 내려오면서 내 치아를 압박하고, 그게 통증이 될 거라는 생각은 해 본 적도 없었다. 그러나 밥을 먹을때 마다 ‘떡-떡’하는 소리가 턱에서 나기 시작하고 통증이 생겼다. 결국 통증은 외면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매일같이 욱신 거리던 턱을 부여잡고 간 병원에서 파란눈을 빛내는 의사는 단호하게 '지금' 뽑아야 합니다.라고 사형선고를 내렸다.


갑자기 겁이 나 뛰쳐나와버렸다. 오우 나 이렇게-저렇게 되면 어떡해. 게다가 위험한 자리라느니 하는 말은 한마디도 안 하는 의사의 실력에 의심이 갔다. 그래서 지금까지 잘 다니던 치과를 뒤로하고 물어물어 사람이 많고 큼직한 치과를 찾아갔다. 거기서도 단호한 대답이 돌아왔다. '뽑아야 합니다.'


아니, 위험하댔는데. 왜 위험하다는 말은 안 하는 건지 용기를 짜내어 물어보니, 자칫 잘못해서 일어날 그 부작용보다 안 뽑아서 생길 부작용이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크단다. 그러면서 '우리 병원이란 연계된 전문병원 정말 잘해, 그냥 뽑아'라고 날 설득했다. 그럼 뽑으면 이 욱신거리는 통증이 없어지는 건지 물으니, 음, 그건 뽑아봐야 알겠는데, 라는 다소 의사다운 답변이 돌아왔다. 음, 그것 참 신뢰가 가는 대답이로군.


고민은 짧았다. 코로나의 여파가 세게 와서 하릴없이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난 지금이 기회였다. 후하 하면서 뽑겠다고 결연한 눈으로 대답하자 의사는 아주'퍼펙트'한 결정이라며 옆에 서 있던 간호사에게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빨리'다음 약속을 잡아주라고 지시했다. 오, 생각보다 급한 상태였구나.


사랑니와의 전쟁계획은 다음과 같았다.


0. 사랑니 뽑을 결심을 한다.

1. 다니던 치과에 가서 다시 한번 의사와 상담을 한 뒤 사랑니 뽑는 전문 병원 소개서(위버바이중)를 받는다.

2. 전문병원에 소개장이 있다고 이야기하면서 의사를 만날 예약을 잡는다.

3. 의사를 만나고 내 엑스레이를 보면서 사랑니를 어떻게 뽑아야 하는지, 소요시간이나 치료 방법 등을 듣는다. 그리고 뽑을 날짜를 다시! 예약한다.

4. 사랑니를 뽑고 실밥 뽑을 날도 예약을 잡는다.

5. 실밥을 뽑고 자유를 얻는다.


0번부터 4번, 그러니까 실제적으로 사랑니를 뽑기까지 약 2개월-3개월이 소요되었다. 결연한 결심이 무색해지도록 진행이 더뎠다.

나는 공보험 (기본적인 모든 치료가 보장되는 나라의 보험)를 가지고 있다. 보험료를 매달 엄청 내는 대신 모든 기본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위급한 상황에서의 치료는 100% 커버된다.

그 보장 범위 안에 사랑니가 들어있다. 대신, 공보험 소지자의 자격으로 치과에 예약을 잡기까지는 영원과도 같은 시간이 필요하다.


즉, 환자는 공보험으로 커버되는 부분이 많아서 좋지만, 의사들에게는 시간 대비 돈을 벌 수 있는 환자는 아니다 보니 하루에 진료할 수 있는 공보험 환자 수를 제한해놓는다고 들었다. 의사도 살고 환자도 사는 방법으로 선택한 거겠지.


그래서 공보험으로 병원 약속을 잡으려면  통상 '오천 년을' 기다려야 한다. 이러니 기다리다 나아버린다는 말이 괜히 생긴말이 아니었다.

피부과 같은 곳은 기본이 3개월이다. 사보험으로 오는 환자가 많은 과 일수록 공보험 소지자는 더 뒤로 밀린다. 사보험은 당일에 가도 바로 약속을 잡아주는 경우도 왕왕 있다. 그래서 병원을 찾거나 약속을 잡을 때 반드시 그 병원이 공보험을 받는 병원인지 확인해야 한다.


만약 공보험을 안 받는 병원이라면 후에 치료비는 다 본인 부담이 되니까. 최악의 상황에는 보험비는 보험비대로, 진료비는 진료비대로 부담해야 한다.




여하튼 아래쪽에 격렬하게 누워있는 두 개의 사랑니를 제거하기로 했다. 독일 의사들이 골격도 두껍고 체격이 좋아서, 사랑니를 순풍 잘 뽑는다는 속설이 있어서 기대감을 가지고 전문병원에 갔는데, 나보다 머리 하나는 작고 날씬한 의사분이 나를 맞이했다.


어어 이게 아닌데. 싶었지만, 대기실에 까맣게 몰려있는 사람들을 보며 한번 믿어보기로 했다. 의사는 우선 영어가 편한지 친절하게 물어봤고 '나 독일어도 해. 뭐든 상관없어.'하고 말한 순간 반가움의 얼굴과 동시에 너무나 빠른 독일어가 펼쳐졌다.


전문용어를 그렇게 말하면 독일 사람들도 못 알아들을 텐데 싶을 정도였다. 의사가 빠르게 숨을 몰아쉬는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조금만 천천히 이야기해달라고 부탁했다. 의사는 눈을 똥그랗게 뜨며 '아아 그렇지! 알겠어!' 하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 설명하는 것은-"

까지는 아주 천천히 내 눈을 보며 이야기하더니 엑스레이 사진을 가리키는 순간, 아까와 변하지 않은 빠른 말로 설명을 계속했다. 직업병인가 보구나. 좋아요 선생님. 저도 할 수 있습니다. 온몸에 힘을 주고 집중해서 이해하기 시작했다. 간호사가 그 와중에 홀낏홀낏 나를 보며 이해하고 있는 게 맞는지 확인했다. 발가락의 신경까지 모아 알아들은 이야기는 사랑니가 꽤 커서 잘라서 뽑아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양쪽 다 뽑아야 할 텐데 한쪽씩 뽑을 건지, 아님 한꺼번에 두 개를 다 뽑을 건지 선택하라는 거였다.


매도 한 번에 맞는 게 낫지 싶어서 두 개 다! 한 번에!라고 말했더니 엄지손가락을 추겨 올리며 '좋은 생각이야'하는 칭찬을 돌려주었다. 간호사도 만족스러운 끄덕끄덕을 보내주었다.


수술 동의서에 사인을 하고 치아를 뽑을 날짜를 정하는데 약 한 달 뒤에 가능하단다. 오늘 뽑는 게 아니었어? 수술 동의서 싸인은 오늘 하고 수술은 다음에 받으라고?

"응"

심플한 대답. 그래. 혹시 더 빨리는 안되냐니까 그게 최선이라고 이야기하는 심드렁한 데스크 직원에게 한 달 뒤 날짜를 받았다.



내가 방문한 이 병원은 MKG라는 곳이었다. 의대에 진학  중인 친구에게 병원 다녀온 것을 이야기하며, 이게 뭐냐고 물으니 놀랄만한 대답이 돌아왔다.

의사들이 존경하는 의사. 모든 과정을 마친 후, 다시 한번 치대에 진학해서 그 과정을 끝낸 사람만이 받을 수 있는 칭호랬다. (내가 정확히 이해한 것이 맞기를..)


아주 알아주는 전문의를 소개받아 간 거였다. 그렇다면 이제 내가 할 일은 한 달 동안 최선을 다해 야무지게 먹는 것이었다. 사랑니 뽑기, 쉽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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