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에서 뭘 배웠어!
아 오늘도 역시나, 저 반질한 뒷통수를 실수인 척 떠밀어볼까.
어제도 역시나였고, 그제도 마찬가지였다. 여기 혹시 나만 모르는 그런 핫스팟이야? 어디 등록된 건가?
혹쉬- 구글 지도에 다들 별표, 하트로 '바로 여기'라고 등록해 놓은 그런 장소일지도 모른다. 도무지 손님이 끊이지 않는 그 이유가 참 궁금하기도 해서 하루는 가만히 들여다 본 적도 있다. 이 근처에 도착하는 순간 너도 나도 알림이 오게 뭔가를 심어 둔 걸까?
알 수 없는 모종의 이유들로 모두가 발걸음 하는 여기는 바로.
우리 집 모퉁이.
모퉁이돌이라는 말을 참 좋아한다. 그 돌을 중심으로 튼튼한 집이 만들어지고, 주축대가 되고 뭐 그런다고 했다. 그리고 꼬부랑 언어를 쓰는 많은 사람들도 그 모퉁이돌을 참 사랑한다. 사람뿐이랴, 개도 사랑한다.
오늘의 주제가 짐작되는가? 그렇다면 당신도 '아악- 내 눈'좀 해본 경험이 있는 문명인일 테지. 당신이 '아악 내 눈-'의 가해자가 아니었다 굳게 믿으며 오늘의 에세이 출발.
그래 여기는 골목길, 그리고 우리 집 돌담이다. 정확히는 내가 세 들어 사는 공간이 있는 '집주인의 집'의 모퉁이(내 집 마련의 꿈은 이방인도 마찬가지). 뒤로는 작은 공원이 있고. 큰길을 벗어나면 빛이 잘 없는 이 절약정신 투철한 이들의 도시계획에 따라 해가지면 조금 어두캄캄도 하다. 하지만 아주 쪼그만 골목도 아니다.
그러니까 다시 한번 정리하자면 딱히 가려지는 곳도 아니요, 옆으로는 큰길이 쌩쌩- 사람이 와글와글인 길이다. 그냥 골목-이라고 쓰기도 민망한 꽤나 넓은 도로가 오른쪽으로 붙어있는! 멀쩡한 도로라고! 차도, 사람도, 자전거도 지나다니는, 심지어 한 번에 다 지나다닐 수도 있는 곳이라고. 큰 건물도 두 개나 떡 하니 서 있는. 그런 길인데.
그런데 이놈이고 저놈이고, 해가 떠있건 말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거기서 바치춤을 추켜올린다. 집으로 가려고 그곳을 지나칠 때마다 일주일에 서너 놈 정도를 본다. 내리는 중이거나, 올리는 중이거나, 할 일(?)을 하는 중인. 진짜 너무 신기했다. 왜 남의 집 앞에다 저러고 있지? 우리 집 돌담 무너지라고 삭히는(?) 건가?
한 번은 집을 나서면서 신나게 볼일 보는 거대한 멍멍이도 봤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면서는 사람을 봤지. 돌담이 얼마만큼의 본디 제 역할이 아닌 고난을 받으면 무너지는지 논문을 쓰는 사람이 있는 걸까? 여기를 어디에 등록해 놓은 걸까.
또 한 번은 아이고 급하다 급해- 하며 후다닥 달려가는 이도 있었다. 나를 마구 앞질러 뛰어가길래- 어 옆 건물 회사에 늦은 사람인가? 했더니 웬걸, 모퉁이에 도달하자 보이는 멀끔한 뒤통수! 잘 빼입은 양복 뒤태를 선보이며 바쁘게 일을 처리하던 그를 보며 집으로 들어가야 했다.
그래, 여기는 모든 화장실이 유로니까, 50센트, 1유로가 아까울 수도 있지.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양심과 도덕성을 내버리는 행위라고 믿어 의심치 않지만, 그게 도덕의 유무에 들어가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 비록 다른 이들의 눈에는 마킹하는 개와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여도, 스스로 인간이라는 자각이 있으니 그 정도는 넘길 수 있는 강인한 마음의 소유자일지도.
그곳에 머물다 가는 이들은 인종도, 나이도 천차만별이다. 하우스마이스터(건물 관리인)에게 건의해서 저기다 거울을 붙여보자고 할까 하다가- 손님이 더 늘을지도 모른다는 결론에 다다러 그냥 관뒀다. 달에 한 번씩 그가 이런저런 때 빼고 광내는 약품을 가져다 청소하는 것을 보면, 아아 그냥 저기는 모두의 화장실인 모양인가 싶기도 하다. 왜냐면 진짜 화장실 청소하는 세제로 그 모퉁이 돌을 닦기 때문에.
더운 날은 찌릿한 향이, 추운 날은 모양 그대로의 보존이 이루어지는 우리 집 모퉁이. 나만 빼고 모두가 아는 - 냄새로 남기는 중요한 기밀정보가 있는 게 아니라면 정말 다들 그만둬 줬으면 좋겠다. 야외뿐이랴, 기차역도, 지하철 역도, 트람역도, 사람이 뜸하다 싶은 곳은 어디나 강한 흔적이 남아 있으니, 이것도 독일의 문화인가 싶고.
성급한 일반화를 정말 지양하고, 세계를 이분화하는 것도 문명인으로써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오늘 지나오면서 맡은 찌릿한 향은 뉴런을 마비할 정도였다. 아아, 유치원에서 제일 먼저 가르칠 것은 독일어 알파벳이 아닌 화장실 가리기일 텐데. 아니,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한 번씩 다시 되짚어줘야 하는 것은 아닐까. 아비투어(독일의 수능)의 첫 문제는 '야외는 우리의 화장실인가요?'라는 문제를 서술형으로 대답하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이도저도 안되면, 복슬거리는 귀여움이라도 있는 강아지 유치원에 가서 어떻게 하면 매너 있는 배변활동을 하는지 배우던가. 개도 이렇게는 안 할 텐데. 가끔 보이는 깔끔 떠는 옆집 개는 산책을 나갈 때 그 모퉁이 돌은 질색팔색 하면서 멀리 돌아가는걸 몇 번이나 봤다. 아 이 옆집 누렁이만도 못한 사람들.
아니 증맬 왜그래, 선진국이라면서.
독일, 여기는 화장실을 못 가리는 자와 유치원에서 배운 바를 잊지 않는 문명인이 사는 나라. 대혼돈의 멀티버스.